[INTERVIEW]
[인터뷰] 사랑이 공포의 대상을 무찌를 수 있다,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김민하 감독
2024-11-14
글 : 이유채
사진 : 오계옥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시작으로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가오슝영화제, 자카르타 필름위크까지. 김민하 감독은 첫 장편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로 각국 영화제를 순회한 뒤 막 돌아온 참이었다. 핸드폰 사진첩에 가득 쌓인 추억을 공유하는 그의 표정에서는 희색이 감돌았다. 그는 해외 영화제에서 여고생들이 수능 답을 얻기 위해 귀신과 숨바꼭질에 도전한다는 한국 호러 코미디가 세계 관객에게 용기에 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했다. 폭소가 끊이지 않는 극장의 풍경도 목격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더 많은 사람을 즐겁게 만들겠다고, 영화의 유속에 맞춰 더 멀리까지 가보겠다고.

- 중학생 때 <주온>을 보고 놀라 한약을 지어 먹었다는 일화를 들었다. 그런 어린 시절을 거쳐 첫 장편으로 호러영화를 만들었다.

그때 약뿐만 아니라 침도 맞고 목사님께 기도도 받았다. (웃음) 호러영화를 선택한 건 신인감독이 그렇게들 데뷔한다는 관례를 따른 거였다. 작정하고 6개월간 호러만 파다가 단편 <빨간 마스크 KF94>(2022)를, 심신 정화용으로 <버거송 챌린지>(2023)를 만들었다. 두 작품 모두에 내가 좋아하는 코미디가 스며들어 있다.

-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은 어떻게 구상했나. 구급차에 실려가는 한 학생의 모습을 본 경험이 시작이었던 걸로 알고 있다.

2022년 8월에 <빨간 마스크 KF94>로 정동진독립영화제에 갔다. 땡그랑동전상을 받았고, 전율감에 새벽 4시 반이 되어서도 잠이 오질 않았다. 그래서 모래사장에 앉아 끄적이기 시작했다. 여고생들 이야기(<빨간 마스크 KF94>)로 사랑받았으니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에는 학생들이 입시를 위해 귀신과 싸워 이기는 내용을 써내려갔다. 가제는 <방송반의 여름방학>. 그 순간에도 방학 설정이면 학교에 사람이 없어 제작비를 아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초의 시작점이라면 앞서 언급한 일이 맞다. 2021년 주변에서 ‘쿵’ 소리를 들었다. 알고 보니 학업 스트레스가 심했던 학생이 추락하면서 난 소리였다. 무서웠을 텐데 외마디 비명도 없이 단지 ‘쿵’ 소리만 들렸다는 게 너무 슬펐고 마음에 남았다. 그때부터 어떤 하고 싶은 말이 내 안에서 생긴 것 같다.

- 고3인 영화감독 지망생 지연(김도연)과 배우 지망생 은별(손주연), 촬영 담당 현정(강신희) 그리고 지원사격으로 합류한 종교 동아리 2학년 민주(정하담)까지 아메바 소녀들의 개성이 고루 뚜렷하다. 이중 감독 지망생 지연을 가장 먼저 만들었을 것 같다.

그렇다. 나 역시 지연처럼 고3 때 영화감독을 꿈꿨다. ‘영화할 건데 왜 학교 성적이 좋아야 하는 거지?’라는 반항 섞인 의문을 품은 채로 말이다. “감독이 되려면 한 등급이라도 더 올려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게 더 중요하다”라는 선생님의 대사도 그래서 넣었다. ‘일단 나만 믿고 따라와’를 외치던 그 시절의 배짱 있던 내 모습도 지연에 녹아 있다. 감독 캐릭터에 맞춰 배우(은별), 촬영(현정)을 붙였고 이 트라이앵글 조합이면 어떻게든 되겠다 싶었다. 민주는 극 중 역할처럼 3분의 1 지점에서 딱 치고 들어오기 좋은 캐릭터를 고민하다가 만들었다. 시나리오 쓸 때 한스밴드의 <호기심>을 줄곧 들었는데 소녀들에게서 딱 이런 분위기가 났으면 했다.

- 지연이 영화 지식에 해박한 데서 생겨나는 재미가 있다. 시네필적인 특징은 어떻게 살리게 됐나.

소녀들 앞에 붙은 ‘아메바’에서 답변을 시작할 수 있겠다. 아메바라는 표현이 한마디로 너희 다 똑같이 공부 못하는 애들이라는 뜻이지 않나. 그런데 이 단세포를 현미경으로 보면 다 다르고 은근히 귀엽다. 소녀들도 그렇다. 학력 중심 사회에서는 이 친구들을 다 똑같은 8등급으로 보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 모두 진지한 꿈이 있고 특별한 구석이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다. 이런 얘길 하고 싶어서 대표적으로 지연이가 영화에 진심이라는 걸 강조했다.

- 영화의 오프닝은 1998년, 아메바 소녀들의 선배들이 귀신과 숨바꼭질하는 모습을 담은 오래된 비디오테이프 영상이다. 이 시대의 화질은 어떻게 살렸으며 왜 선배들에서 이야기를 열고 싶었나.

처음부터 괴담이 봉인된 비디오테이프가 있고 그걸 누군가가 발견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프닝에 관한 고민은 하지 않았다. 오래된 비디오테이프라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일부러 2005년쯤 나온 카메라를 구해 120P 수준의 저화질 느낌이 나도록 찍었다. 후반작업할 때 화질을 더 낮췄던 기억도 난다.

- 후반부에 민주는 캡틴 마블 같은 모습의 초능력자로 변신한다. 지나친 건 아닐까 싶지는 않았나.

민주가 각성했다는 게 확실히 드러났으면 해서 CG 감독님께 캡틴 마블을 보여드렸다. 변신 부분부터는 누가 따라오든 말든 직진한다는 느낌으로 가고 싶었다. 직전에 석가모니와 마리아 캐릭터를 등장시켜 한 차례 과감한 시도를 한 만큼 더 센 게 나와줘야 할 타이밍이었다. 민주는 여러 의미가 담긴 인물이다. 코미디를 만드는 데 있어 중요한 건 그 시대의 슬픔을 담는 것이라고 생각해 민주 캐릭터에 왕따 이슈를 넣었다. 그러면서도 자극적이지 않도록 뿅망치나 요술봉 같은 소품을 사용했다. 언니들을 퇴장시키고 민주만 남긴 건 다음 세대로 배턴이 잘 넘어갔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은 의도에서였다. 그전에 민주는 언니들에게 묵주도 받고 염주도 받았다. 그 안엔 민주가 보호받았으면 하는 언니들의 사랑이 담겼고 그 사랑 덕분에 민주는 혼자서도 공포의 대상을 무찌를 수 있었다.

- 반면 귀신은 고전적으로 소복 입은 귀신을 택했다.

크리처로 가면 제작비 감당이 안되니까. (웃음) 무엇보다 내가 여전히 공포영화를 힘들어하기 때문에 극장 밖을 나서도 관객을 따라다니는 무서운 귀신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홈페이지에 적힌 감독 소개가 인상적이다. ‘대학 첫 워크숍에서 시나리오가 통과되지 못한 충격으로 히말라야에 올랐다.’ 자초지종을 들려준다면.

연극영화과에 입학 후 첫 워크숍에서 나만 통과를 못했다. 인생 전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만큼 큰 사건이었다. 한창 치기 어린 20대 초반일 때라 대자연에 가면 깨달음을 얻을 것같아 히말라야로 향했다. 그곳에서 한달간 있으면서 삶의 의미? 당연히 못 찾았다. 그래도 얻은 게 있다. 영화 만들기에 조급함을 느끼지 말고 긴 인생을 살아갈 정신력과 체력을 기르자는 마음가짐. 이후에 뉴욕에서 뮤지컬을 보고 뮤지컬 연출에 호기심이 생겨 공연기획사 신시컴퍼니에 들어갔다. 연출팀에 있으면서 <빌리 엘리어트> <마틸다> 같은 굵직한 작품을 쉬지 않고 했다. 그렇게 3년간 일하다가 퇴사했고 곧 코로나19가 터졌다. 그때 다시 내 영화 작업을 시작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 첫 장편을 끝낸 지금 구상 중인 다음 챕터는 무엇인가.

<아메바 소녀들> 시리즈화. 2편은 이미 캐스팅 단계다. 입시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여고생의 호러 코미디라는 컨셉을 유지하면서 3편, 4편, 5편을 이어나가고 싶다. 장기 시리즈의 꿈이 실현되려면 일단 1편이 잘돼야 한다. 관객들의 지지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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