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숙의 오빠를 유혹해 그의 아이를 임신한 몸으로 앙숙의 가족이 사는 집에 들어간다. 일일연속극의 로그라인 같은 이 문장은 휴먼 코미디 영화 <자기만의 방> 속 경빈의 궤적이다. 김리예는 “다른 배우가 경빈을 연기하면 후회가 남을 것 같아” 열심히 오디션에 임했고, 오세호 감독은 경빈 역의 물망에 오른 몇 배우 중 “한 시퀀스를 디렉션에 맞춰 대여섯개의 감정으로 변주해내”는 김리예의 간절함을 읽어 영화 경험이 없는 신인배우를 작품에 전격 발탁했다. “경빈처럼 안 해도 될 말은 하지 않는 편이지만 팩트를 짚어줘야 하는 상황에선 필요한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김리예는 알게 모르게 캐릭터에 스스로를 많이 투사했다. “나와 경빈이 닮았다는 생각하며 연기하진 않았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 경빈의 대사 톤이 내 현실 말투와 똑같더라. 함께 영화를 본 동생마저 ‘언니 평소 말하듯 연기했네’라고 할 정도다. 그만큼 첫 영화의 첫 배역이 내 안으로 성큼 다가왔다.”
16살에 모델로 데뷔한 김리예는 20살이 되기 직전 찾은 연기학원에서 자기만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웹드라마 <연애혁명>으로 데뷔하기 전부터 “못해서 포기하는 건 죽기보다 싫었던” 김리예는 매일매일 자신을 던져가며 연기자의 소양을 쌓았다. “음문석 배우가 나의 연기 선생님이었다. 어느 날 선생님이 나와 수강생 언니에게 욕 연기로 스파링을 붙였다. 평소에 욕을 거의 안 해서 당연히 졌다. 그런데도 진 게 너무 분했다. 그날 밤 포털사이트에서 수많은 욕설을 검색해 밤새 달달 외웠다. 그리고 다음날 ‘선생님이 시키신 거 해왔어요’라며 선생님 앞에서 울면서 욕을 읊었다. (웃음)” 훗날 <우리들의 블루스> 속 등장인물들처럼 공동체에 어우러지며 덤덤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는 배역을 꿈꾸는 이 신인배우는 다음 작품을 찍을 때면 무조건 전작에 비해 성장해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스스로 돌아보고 단련할 줄 아는 사람만이 지닌 단단함이 그 안에 자리하고 있다.
filmography
영화 2024 <자기만의 방> 드라마 2022 <어쩌다 마주친, 그대> 2020 <연애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