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기훈(이정재)이 깨어났다. <오징어 게임> 시즌1 게임의 최종 승자로 456억원의 상금을 수령한 기훈은 죽음의 게임을 아예 끝낼 목적으로 게임에 다시 참가한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운 게임 룰이 생겼다. 이 룰은 5~6개의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각 게임의 생존자들끼리 다음 게임의 진행 여부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찬반 투표를 도입한다는 내용이다. 겉으로 보기엔 민주적 투표 절차에 따른 공정한 룰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번외 게임이다. 게임을 이어가고 싶어 하는 참가자들은 반대표를 던질 사람들을 협박하고 심지어 목숨을 끊어놓아 투표 참여를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친절하게 살인도구에 쓰일 포크도 나눠준다.
딱 한명의 선택을 두고 투표의 향방이 팽팽하게 갈리는 장면을 보면서 누군가는 정치 이념의 왜곡된 갈등이 선거철마다 펼쳐지는 51 대 49 선거 국면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물론 가상의 게임 속행 여부를 두고 대립하는 갈등 양상과 현실의 복잡미묘한 갈등을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다. 그럼에도 절반 가까이에 해당하는 반대표 유권자들과 함께 연을 맺고 비즈니스를 하며 살아가야 하는 시청자들은 일단 참가자들의 투표 장면을 보는 것이 괴롭다. 하필 드라마의 공개 시점이 계엄과 탄핵 정국 뉴스를 보던 때였으니 이건 거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할 만한 묘사다.
누가 시킨 적도 없는데 스스로 이 게임을 끝장내겠다며 목숨 걸고 재참가한 기훈은 이 투표 때문에 홀로 고군분투한다. 기훈에게 주어진 숙제는 게임을 이어가려는 절반의 사람들을 설득해 속행 반대표를 던지게 하는 것이다. 기훈이 스스로 지난 시즌 게임의 최종 승자라고 정체를 밝혔는데도 몇몇 사람들은 그의 말을 가짜 뉴스 취급한다. 역시나 현실 뉴스가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그럼에도 기훈이 꾹 참고 입을 가린 채 비말 안전 자세로 얼음을 외치는 이유는 하나다. 그의 뜻에 반하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까지 더해 모두의 목숨을 살리고 이 게임을 끝내기 위해서다.기훈이 참가자 설득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명확해 보인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상금을 벌기 위해 스스로 자원했기 때문이다. 빈털터리로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게임장에 도착한 사람들이 룰에 대해 이견을 말할 때도 네모 가면을 쓴 핑크 병정은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삶의 벼랑 끝에 선” 참가자들이 “모두 자발적으로 어떤 강압도 없이 이 게임에 자원했다”라고 몇번을 강조한다. 틀린 말은 아닌데 맞는 말도 아닌 것 같은 의심이 드는 것은 왜일까? 모든 게임 참가자들이 이 게임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믿게 만드는 것, 거기에 이 무시무시한 데스 게임의 속성과 함정이 숨겨져 있다.
황동혁 감독은 친절하게도 이런 의문에 답변과 부연설명까지 더해주는 에피소드를 <오징어 게임> 시즌2의 첫화에 배치했다. 시즌2의 1화 ‘빵과 복권’에서 참가자를 모집하는 딱지남(공유)은 지하철역에서 모집자를 구하다가 난데없이 빵과 복권을 한 아름 사들고서 공원에 간다. 딱지남은 당장 먹을 것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들을 찾아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기회를 준다. 그는 빵 대신 복권을 선택한 사람들 앞에서 보란 듯이 빵을 짓밟는다. 우리는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점을 제시할 수 있다. 혹시 딱지남이 빵과 복권을 들고 여의도 증권가나 신사동 도산공원을 찾아가지는 않았을까. 당연하게도 그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말인즉슨 딱지남에게서 무언가를 선택할 기회를 제공받은 사람들은 모두 특정 기준에 의해 선별된 사람들이란 뜻이다. 딱지남과 마주친 사람 중에 뺨을 수차례 내주고도 기어이 딱지치기 한번을 이겨 돈을 타간 사람들, 혹은 빵 대신 복권을 선택한 공원의 노숙자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어려움과 무너진 마음을 딱지남에게 공략당한다. ‘빵과 복권’ 에피소드는 오징어 게임이 시스템 밖으로 내몰린 참가자들 스스로 자의에 의해 게임을 선택했다고 믿게끔 만드는 게임 설계자들의 기만 행위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시켜준다. 빵조차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룰, 시스템의 강요로 내몰린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반강제적인 룰이야말로 이 게임의 진정한 룰이다.
다시 기훈이 오징어 게임에 재참가한 이유로 돌아가보자. 기훈은 이 잔혹한 게임 세계관에서 유일하게 자유의지를 갖고 뛰어든 인물로 보인다. 그는 어마어마한 상금을 손에 쥐고도 스스로 게임을 멈추겠다며 재참가를 선택했다. 게임의 주최자인 오일남(오영수)의 강요도 없었고 심지어 프런트맨(이병헌)은 재참가 의지를 밝힌 그를 뜯어말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기훈은 앞서 언급한 이유로 사람들을 쉽게 설득하지 못한다. 참가자들은 거대한 돼지 저금통에 쌓이는 상금 액수에 눈이 먼다. 게임의 설계자들은 참가자들끼리 죽이게 만들 목적의 ‘스페셜 게임’이란 꼼수를 준비한다. 그제야 게임의 무자비한 속성을 깨달은 사람들이 하나둘 기훈의 편에 서지만 역부족이다. 기훈의 작전이 성공하려면, 아니 성공 가능성이라도 확보하려면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
이쯤 되면 모두가 살아서 나가길 바랐던 기훈의 애초의 목표는 무산된 거나 다름없다. 기훈의 반란 행위가 동료의 죽음을 전제로 하는 데스 게임과 근본적으로 차가 없다는 것도 지적할 수 있다. 오직 머릿수만 카운트되는 게임장에서 참가자들의 진정한 ‘자발적 참여’가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을 살린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 시즌2는 위기에 직면한 기훈을 통해 이런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그릇된 선택을 강요당했음을 스스로 깨달은 사람들,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선의가 모여 게임 시스템이 붕괴되는 방법은 없을까. 이 잔혹한 게임장에서 진정한 인간의 자유의지가 발현된 순간은 결국 게임의 룰을 깨려 시도했던 때였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까. 그건 너무 비관적인 결말이 아닐까.
기훈의 목표, 오징어 게임을 끝내겠다는 결의를 무력화할 목적으로 기능하는 캐릭터를 추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들에게선 공통점마저 발견된다. 기훈과는 전혀 다른 목적을 갖고 오징어 게임에 자발적으로 참가한 오일남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기훈과의 내기에서 자신이 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죽는다. 기훈과 러시안룰렛을 하던 딱지남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존재가 게임 설계자들이 의도한 경마장의 말 신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끝내 외면한 채 죽어버린다. 자신이 죽을 걸 뻔히 알면서도 게임 룰을 공정하게 적용한 결과는 죽음이다. 참가자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착각하게 만든 다음, 결국 죽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오징어 게임 룰의 본질은 딱지남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직은 파악 불가능한 모종의 이유로 게임장에 스스로 뛰어든 프런트맨도 결국은 오일남과 같은 부류일 것이다. 그는 기훈이 게임의 재참가를 원한다고 말했을 때, 그리고 눈앞에서 친구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을 때 기훈에게 “영웅놀이한다”며 두 차례 조롱한 전적이 있다. 그는 죽기를 각오한 사람들의 선의와 자유의지를 눈앞에서 체험하듯 목도하지만 끝내 변화하지 못한 채로 시즌2가 종결된다.
어쨌거나 게임 시스템을 무력화할 수 있는 수단은 오일남과 딱지남, 프런트맨이 애써 외면하려 했던 그 진실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게임을 끝낼 목적으로 반대표를 던진 과반수의 사람들, 성기훈들의 자유의지야말로 이 게임을 멈추게 할 유일한 수단임을, 이 게임의 설계자들이 만든 시스템이 뜻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존재임을 말이다. 그 자유의지가 들불처럼 번져 부역하던 핑크 솔저들에게도 옮겨붙는다면, 아직은 승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