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이 다 아는 배우 오선희(정혜인)는 요즘 그 사실이 원망스럽다. 떠들썩한 이혼소송으로 심신이 지쳐 도피하듯 고향 완도를 찾는다. 그동안 한번도 방문하지 않아 자신을 받아주지 않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고향은 너른 품으로 그를 안아준다. 조건 없는 환대의 중심에는 첫사랑이자 동네 오빠였던 동필(최다니엘)이 있다. 전혀 다른 궤적을 살다가 재회한 둘은 서로의 생채기를 보듬으며 햇볕이 드는 자리로 움직인다. <써니데이>의 배우 최다니엘과 정혜인은 인사하자마자 칭찬과 농담을 쉼 없이 주고받으며 밝은 빛을 뿜어냈다. 그들이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이어가는 공간에는 영화가 머금은 온기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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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스함이 넘실대는 시나리오가 아니었을까 싶다. 어떻게 읽었나.
최다니엘 공감이 많이 갔다.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살아가는 동필의 삶을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의 기준에서 그리지 않더라. 꿈과 무관한 삶이 보통이고 현재의 그 삶을 충실히 살아가면 된다는 영화의 태도가 내 가치관과 맞아떨어졌다.
정혜인 센 역할, 액션영화를 주로 해왔지만 실은 감성적이고 내면의 변화를 들여다보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써니데이>는 그런 내 취향에 딱 맞는 작품이었다. 로맨스를 해보고 싶다는 갈망이 크던 차에 <써니데이>가 들어와 더 끌리기도 했고. 선희는 일적으로는 성공했어도 사랑에는 허기를 느끼는 인물이다. 그가 부족함을 채우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 끝점에서 새출발한다는 내용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 영화의 톤이 밝아서 그렇지 사실 두 인물 모두 어두운 터널 안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다. 선희는 타인의 시선을 피해 숨고 싶어 하고, 동필은 생전에 부모님을 잘 살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부모님의 묘 옆에서 텐트 생활 중이다. 맡은 역할이 각자에게 어떻게 다가왔나.
정혜인 선희와 똑같은 어려움을 겪어본 적은 없으나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그의 마음이 이해됐다. 이룬 걸 다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선택과 진심으로 좋아한 사람에게 다시 마음을 여는 과정을 ‘나라도 그랬을 거야’라고 공감하며 따라갔다. 사랑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이 닮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최다니엘 부모님 묘를 지키는 동필이 내게 익숙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동필의 선택은 부모님이 그만큼 엄청난 자리를 차지하는 존재라는 의미일 텐데 그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묘를 돌보는 풍습을 지키려고 한다는 점에서 그가 완도라는 고향을 포함한 옛것을 존중하는 캐릭터라는 해석을 더할 수도 있었다. 동필을 상상하면서 말없는 아버지의 등을 자주 떠올렸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인생의 우여곡절을 어디 가서 풀지 않고 혼자 다 안고 가시지 않나. 그렇게 마음속에 많은 사연을 가진 묵묵한 인물로 동필을 표현하고 싶었다.
정혜인 흐린 날이 있어야 맑은 날이 더 빛나고 밤이 지나야 아침이 온다는 말이 있지 않나. 선희와 동필도 그들 각자에게 주어진 고통을 견뎌냈기 때문에 용기를 내고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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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도에서 올로케이션으로 진행했다고. 세트 촬영이 주인 작품을 촬영할 때와는 체감이 달랐을 것 같다.
최다니엘 서울 분량 조금 빼고는 완도에서 반, 거기서 배 타고 한 시간쯤 들어가면 있는 청산도에서 반을 찍었다. 촬영하는 한달 동안 섬에서 살았다.
정혜인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 바람이 강하게 불면 배가 뜰 수가 없어 들어올 방법이 없었다. (웃음) MBTI F형이라 날씨, 장소, 감정 하나하나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청산도로 가족여행을 간 적 있어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평화로운 절경 속에서 감정 연기가 얼마나 잘될까 하고 설레며 섬에 들어갔는데 현실은 달랐다. 바로 앞에 강풍기가 틀어져 있는 것처럼 강한 바람이 불어 휘청거릴 정도였고 눈은 건조해 자꾸 눈물이 났다.
최다니엘 그래서 혜인이의 감정 연기가 정말 좋았어. 눈만 뜨면 눈물이 나니까! (좌중 폭소) 나는 마침 다른 스케줄이 없는 시기이기도 했고 이참에 스태프들하고 추억도 쌓고 싶어서 완도 생활을 자처했다. 그곳 날씨가 변덕이 심했는데 눈과 비, 겨울과 밤, 흐린 날씨까지 야외가 주는 감각을 워낙 좋아해 힘든 줄 몰랐다. 그래도 화창하면 모두가 편하니까 촬영 잡힌 날은 날이 좋길 기원했다.
- 재회한 두 남녀의 감정선을 어떻게 가져갈지 고민이 컸을 것 같다. 너무 깊지도 가볍지도 않은 중간 지점의 미묘함을 살려야 했다.
최다니엘 동필스럽게 접근하면 둘 사이의 감정도 잘 살 거라고 생각했다. 선희를 다시 만났을 때 동필은 선희에게 고향에 온 이유를 캐묻지 않는다. 선희가 말할 준비가 될 때까지, 설사 끝까지 말하지 않더라도 그와 같은 상대의 결정을 존중하는 게 동필다움이다. 부모님을 지키던 그 모습 그대로 선희 곁에 있으면서 동필의 따뜻하고 사려 깊은 면모를 드러내 보이고 싶었다.
정혜인 그런 동필의 배려에 선희의 마음이 풀린 건지도 모르겠다. 나도 다니엘 배우와 비슷하게 접근했다. 사랑이 고픈 상태에서 첫사랑과 재회했지만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건 적확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당장의 감정보다는 어린 시절 동필과 함께하면서 느꼈던 순수한 행복에 집중하면서 한 발짝 거리를 두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차츰차츰 표현의 크기를 키우려고 했다.
최다니엘 우리 둘 다 스며드는 관계를 원한 게 아닐까? 어떤 불순물이나 조미료가 들어가 있지 않고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되는 사이 말이다. 시간은 꽤 오래 걸리겠지만. 그런 관계를 원했기 때문에 선희에게 ‘커피 마시자, 밥 먹자!’ 이런 애드리브 한번을 안 넣었다.
정혜인 그랬으면 선희는 다시 서울로 갔을걸! (웃음)
- 두 배우도 서로에게 스며든 것 같다. 호흡이 척척인데.
정혜인 선희가 동필을 만나면 기운을 차리곤 하는데 실제로도 그랬다. 감정으로 이끌어가는 캐릭터는 처음이라 부담이 컸다. 어떻게 하면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잔뜩 안고 오빠랑 얘기하다 보면 자연히 ‘그래, 할 수 있어!’ 상태가 되어서 신기했다. 상대 배우의 스타일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 결이 잘 맞는 분을 만나야 한다. 그런 면에서 <써니데이>는 행운이었다. 연기도 현장도 물 흐르는 듯이 진행된다는 느낌이었고, 이 모든 게 다 최다니엘 배우 덕분이다.
최다니엘 내가 더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는걸. 정혜인 배우와는 드라마 <저글러스>에서 만난 적 있는데 그땐 붙는 신이 거의 없어서 인사만 하던 사이였다. 이번에 <써니데이>를 함께 찍으면서 진득하게 얘기하고 호흡도 맞춰보니 멋있고 터프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굉장히 사랑스러운 면이 있었다. 긴장하지 않았을 때의 모습이 특히 매력적인데 그게 선희 캐릭터가 가진 매력과 일치했다. 그래서 혜인이의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이런 모습이 작품에서 최대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게 내 목표이기도 했다. 영화에 혜인이 팬들도 모르고 있을 혜인이의 사랑스러운 얼굴이 가득 담겼다.
정혜인 선희는 빙산의 일각이야…. 더 사랑스러운 캐릭터, 더 많은 로맨스 이야기를 하고 싶다!
최다니엘 워워, 흥분했어. 지금. (웃음)- 최다니엘 배우가 하고 싶은 작품이나 캐릭터는 무엇인지도 궁금한데.
최다니엘 나도 몇년 전부터 로맨스, 멜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야 상황을 다각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겼고 이해의 폭도 조금 넓어져서 용기가 생겼다.
- 상황은 전혀 다르지만 동필과 선희의 마지막이 <헤어질 결심>의 엔딩처럼 바다에서 끝난다. 두 배우 모두 그런 어른들의 멜로라면 어떨까.
정혜인, 최다니엘 그렇다면 정말 좋겠다!
- 당장 만날 수 있는 두 배우의 올해 계획은.
정혜인 뮤지컬 한편 올릴 것 같고, 예능 <골 때리는 그녀>는 올해도 계속 간다. 그동안은 내게 맞지 않는 캐릭터나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두려움에 거절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써니데이>를 통해 편안하게 접근하는 법을 배우고 나서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이제는 설령 악역이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즐기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다니엘 여행 예능과 준비 중인 작품이 있다. 감사하게도 요새 예능에서 계속 불러주신다. 웃음과 기쁨이 절실한 시대에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책임감을 느낀다. <써니데이>가 그랬듯 남녀노소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자주 찾아뵙겠다.
최다니엘, 정혜인이 말하는 ‘써니데이’ 만드는 법
정혜인 “확실한 방법은 역시 운동이다. 헬스 말고 바깥에서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는 운동이 내게 잘 맞고 효과도 좋다. 운동하는 동안은 나를 골치 아프게 했던 고민이 싹 사라진다. 그리고 언제나 사랑.”
최다니엘 “정면 돌파. 스트레스는 그때그때 해소하려는 편이다. 그 편이 기복 없이 건강한 생활을 꾸리는 데에 도움이 된다. 힘든 순간에서조차 재미 요소를 찾으려고 한다. 그걸 버팀목 삼아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