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시각예술 기반의 무형적 커뮤니티, 소리그림
2025-02-21
글 : 이우빈
사진 : 백종헌
2월8일 소리그림에서 진행된 ‘(비)극장전’ <밤 산책> 상영회 현장.

‘무빙이미지 상영회와 워크숍을 열고, 시각예술 기반의 창작자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무형의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곳’ 혹은 ‘Formless community for moving images’ . 공간 ‘소리그림’에 대한 정의는 미묘하다. 열평 남짓한 공간에 펼쳐져 있는 상영 공간과 30석 정도의 객석은 전통적인 마이크로시네마의 형태를 띠고 있는 듯하지만, 책장 너머 마련돼 있는 구성원들의 (반)개방형 작업실은 공간의 정체성을 흥미롭게 융합한다. 상영회와 토크 행사, 워크숍 위주로 운영하는 공간이면서 그 범주가 영화뿐 아니라 문학과 시각예술 전반에 걸쳐 있다는 점도 종래의 시네클럽이나 마이크로시네마와는 분명히 다른 지점이다.

이를테면 소리그림은 에른스트 루비치의 무성영화를 틀고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 감독의 상영회 및 강연 ‘올리베이라의 방: 소리 들린 그림’을 열어 여러 시네필의 욕구를 채우면서, (비)극장전 기획을 통해 홍다예, 이원영, 최승우 감독 등 지금의 우리가 놓치고 있는 제도권 바깥의 영화들을 살뜰히 소개하고도 있다. 한편으로는 시각예술 작가인 업체(eobchae), 윤지원, 이주연, 최희현 작가 등을 초청해 스크리닝 행사를 열고, 출판사와 협업해 김유림 시인, 김리윤, 민병훈 작가의 북토크를 주최하는 공간이자 새로운 개념의 문화예술 플랫폼이 되기도 한다. 혹은 이 모든 요소를 한 덩어리로 뭉친 카프카 100주기 특별전 ‘Kafkaesque’를 통해 카프카에 대한 각종 창작물과 담론을 펼치는, 말 그대로 ‘공간’이다. 다른 곳에선 쉬이 찾아볼수 없는 다양한 범주의 워크숍 역시 소리그림의 특질이다. 유운성 영화평론가의 영화비평 워크숍 ‘무엇을 보고 어떻게 들을 것인가?’ , 신은실 영화평론가의 ‘소수의 영화를 위하여: 여성감독들의 급진적 실천’ 등 베테랑급의 강연진이 분포한 형태부터, ‘카프카가 기록한 소리들-소리 채집 워크숍’이나 ‘필름의 복원부터 영사까지’ 등의 흥미로운 접근을 통해 “기성 아카데미에서 잘 다뤄지지 않은 수업”(김지환 소리그림 대표)을 공략하고 있다.

김예솔비, 손구용, 김지환, 강예은, 김병규(왼쪽부터).

소리그림의 비정형적이고 유동적인 정체성은 “구성원들의 취향 모음”(김지환)으로 가장 근접하게 설명된다. 동시대 시네필이라면 한번쯤 기웃거렸을 SNS의 영화 계정 ‘영화속거울’을 운영하며 <눈 내리는 기차> 등으로 실험영화 위주의 작업을 이어가는 김지환 대표를 비롯해 <밤 산책> <공원에서>로 최근 국내외 영화제에서 주목받고 있는 손구용 감독, 전주국제영화제 등에서 상영한 <나선의 연대기>를 연출하고 시각예술 전반에 대한 글을 집필 중인 김예솔비 영화평론가가 주축으로 활동 중이다. 그리고 <차가운 새들의 세계> 등을 만든 강예은 감독, <늦은 산책>을 비롯한 영화 연출과 글쓰기를 병행하는 김병규 영화평론가, <나주에 대하여> 등을 쓴 김화진 소설가가 구성원으로 합류해 공간 운영 및 각자의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소리그림의 소개글처럼 유동적이고 비정형적이되 분명한 색채를 가진 유기체적 공간이 구성될 수 있는 이유다.

소리그림은 오는 2월 말부터 3월까지 30여편의 동시대 실험영화와 다큐멘터리에 대한 대대적 상영회를 예정하고 있다. 영화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그 경계가 날이 갈수록 흐릿해지는 지금 소리그림은 어떠한 확언이나 규명 대신 적극적인 실천과 작업을 통해 자기만의 방을 꾸려가고 있다. 그 방의 문은 을지로4가 인근 어느 빌딩 4층에 언제나 열려 있다.

항해 중인 작은 배 - 김지환 소리그림 대표

- 소리그림을 운영하게 된 배경은.

개인적인 갈급함과 궁금증이 컸다. 영화 문화나 사회적인 활동에 기여해야 한다는 거창한 목표까진 없었다. 영화만을 위한 대안공간, 문학만을 위한 대안공간, 혹은 미술만을 위한 공간들은 있는데 이것들을 융합하는 식의 공간은 드물었던 것 같다. 2023년에 손구용 감독과 마이크로시네마를 운영해보자는 얘기가 나왔고, 이왕이면 창작자들과 함께하는 작업실로 구성하면 좋겠단 방향성이 잡혔다.

- 공간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아직 바다를 항해하는 작은 배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어떤 방향으로 갈지는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어쩌면 끝없이 찾아 나가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 영화 및 무빙이미지 상영이 주요 활동이지만 북토크나 그외 분야의 워크숍도 꾸준히 열고 있다. 북미 마이크로시네마인 라이트 인더스트리나 스펙터클의 철학과 디자인, 정체성 일부를 참고하되 전부 따라가려고 하지는 않았다. 시네필을 위한 공간이면서 시네필이 아닌 사람들까지 포용하는 공간이자 너른 매개로 꾸리려 한다.

- 언급한 해외의 마이크로시네마 문화가 지금껏 한국에 정착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현실적인 문화 차이가 큰 이유인 것 같다. 이 정도 규모의 공간을 운영하려면 사실 후원 체계가 중점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엔 이런 지반에서 어떻게 하면 공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우리의 주된 고민거리이자 최종 목표이기도 하다. 지금의 구성원들과 최소 3년은 함께하면서 재밌는 행적을 남기되, 우리와 교집합이 있는 다른 기관이나 공간들과 협업하고 운영의 범주를 키우면서 현실적인 측면도 챙기려 한다.

- 워크숍 행사를 꾸준히 여는 것도 지속가능성의 활로 중 하나일지.

물론 그렇기도 했다. 동시에 이 공간이 스크리닝과 대화를 통한 담론의 장이면서 교육의 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당장 우리 구성원들이 듣고 싶고 모시고 싶은 강연자들을 찾는 일에 흥미가 컸고, 비단 영화가 아닐지라도 우리의 활동 영역을 더 키울 수 있는 방식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은 영화라는 범주 안에서도 색다른 시도가 가능했다. 예를 들면 기존 한국의 영화 관련 아카데미엔 아무래도 연출, 연기나 촬영 위주의 커리큘럼이 많지 않나. 대신 우리는 <김군> <에스퍼의 빛>을 제작한 고유희 프로듀서를 초청해 영화의 제작 측면을 강조했었다.

- 공간 운영에 대해 외부의 피드백을 참고하기도 하나.

우리 생각보다 훨씬 확장해서 공간을 분석해주는 비평가나 연구자들의 시선이 흥미로우면서도, 우리가 원래 생각한 방향성과 다르게 봐주는 면들도 있어서 흥미롭다. 그래서 오히려 역으로 아이디어를 얻어올 때도 있다. (웃음) 관객들이 오면 어떻게 이곳을 알고 왔는지, 평소에 어떤 것에 흥미가 있는지, 오늘 행사는 어땠는지 꼼꼼히 물어보는 편이다. 체감상으론 최근 무성영화 관련 기획전을 열었을 때 반응이 좋았고 우리의 정체성도 잘 느껴지는 기획이었던 터라 좋은 질료로 삼으려 한다. 주변에서나 내부에서나 공간이 꽤 잘 운영된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하지만, 여전히 아주 작은 곳이고 더 많은 분을 끌어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어려운 말이겠으나 재밌으면서도 힘이 빠지지 않게 계속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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