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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이어 2025년 1분기 극장가에선 <서브스턴스> <더 폴: 디렉터스 컷>을 위시한 해외 아트하우스영화, 재개봉작의 관객몰이가 주를 이루는 모양새다. 한국영화의 경우 설 연휴를 지나며 <히트맨2> <검은 수녀들>이 손익분기점을 넘었다는 보도가 이어졌지만 그 밖의 작품은 괄목할 만한 반등을 보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주류 한국영화계의 침체기가 지속되는 반면 해외 아트하우스영화, 재개봉작이 화제성을 견인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감지한 듯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겨냥한 ‘2025 아카데미 기획전’(씨네Q 신도림점, 롯데시네마 등)이 다수 극장에서 프리미어 상영을 계획하고 있다. 신작 상업영화를 주로 트는 멀티플렉스에서도 왕가위 감독 걸작선(메가박스), 티모테 샬라메 배우 기획전(롯데시네마) 등 지난해 다양한 특별전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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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부 타기팅을 시도한 특별전들이 관객의 니즈를 완전히 충족시키진 못했다는 인상이다. 이는 근래 두드러지는 마이크로시네마의 활동과도 연결지어볼 수 있다. 마이크로시네마는 제도권 밖에서 소규모로 상영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영화관을 대여해 진행되기도 하지만 극장 밖의 공간들, 가령 대학 강의실과 개인 작업실, 지하 공간, 전시장 등 여러 곳에서 자체 기획을 통해 선별된 영화를 상영한다. 이러한 마이크로시네마가 갑작스레 등장한 것은 아니다. “동국대학교를 기반으로 운영된 차차 시네마테크”와 같이 “기존 시네마테크, 아트하우스영화관에서 자주 상영하지는 않지만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한 비내러티브영화들을 소개”(일환 로트링겐 대표)해온 시네클럽 및 비디오테크가 현재의 마이크로시네마에 미친 영향이 존재함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근 몇년 새 여러 마이크로시네마가 출범한 현상과 해당 마이크로시네마들이 지니는 특징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씨네21>은 총 6곳의 마이크로시네마를 취재했다. 기성 영화교육 외부의 시네필들이 중심에 선 로트링겐, 마산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마산영화구락부, 영화·문학·미술 분야의 교류를 시도하는 소리그림, 상영회와 더불어 인스타그램 기반의 웹진을 운영하는 시네마토그래프, 대전 청년 창작자들이 주도하는 INK, 일본의 자주영화를 소개하는 자주영화상영회가 이에 해당한다. 해당 마이크로시네마 관계자들에게 제도권 밖에서 상영회를 열게 된 이유를 묻고 각각의 마이크로시네마가 삼고 있는 지향점, 앞으로의 가능성 등에 관해 살펴보았다.
영화를 발굴하고 담론을 활성화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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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시네마 관계자들은 연구자, 비평가, 창작자, 시네필 등 다양한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다. 그럼에도 이들 사이에는 희소성 있는 예술 문화를 제도권에 의지하지 않고 향유하는 것에 익숙한 세대라는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엔 당연하게도 인터넷을 통해 해외·고전 영화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졌다는 배경이 작용한다. 일환 로트링겐 대표는 비공개 영화 토렌트 사이트인 “카라가르가의 출범 이후, 몇몇 스캔되지 않은 필름영화를 제외한 (실질적으로) 모든 영화를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볼 수 있게 되었고” 컴퓨터로 영화를 발굴하고 해외 정보를 탐색하는 것이 익숙한 이들에 의해 “호명되는 영화의 범위와 깊이가 확장되었다”고 말한다. 로트링겐 또한 “레터박스,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서 영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과 접촉해 친분을 쌓게 된” 이들이 모여 출범한 집단이다. 이는 현재 커뮤니티를 이루는 여러 젊은 시네필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배경일 것이다.
다수의 마이크로시네마는 정형화된 제작, 배급, 개봉이 고착화된 상황에 대한 반동으로 시작됐다. 김준희 마산영화구락부 대표는 극장에서 상영 가능한 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의 기준이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다는 데에 불만을 느꼈고 극장에서 밀려난 작품을 자체적으로 상영하기 시작했다. “제도권 밖에 있기에 신속하게 시도해볼 수 있었다”는 것이 김준희 대표의 설명이다. 배은열 INK 집행위원 역시 주류 영화제에서 트는 영화들이 한정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고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는 데에서 더이상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와 같은 반응은 마산영화구락부와 INK가 상영회와 더불어 각각 무학산영화제, 필름 인 대덕(F.I.D) 영화제를 시작하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
관계자들이 집에서 혼자 영화를 보는 대신 마이크로시네마를 기획한 데에는 대체로 사명감이나 개혁과 같은 엄중한 목표가 작용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개인의 갈급함과 궁금증”(김지환 소리그림 대표),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재밌는 영화를 공유”(신은경 자주영화상영회 기획자)하고 싶다는 의지가 바탕이 됐다. 신은경 기획자는 “오즈 야스지로, 구로사와 기요시, 소마이 신지 감독 등 한국에서 한정된 감독의 작품이 반복해 상영된다는 인상”을 받았다. 때문에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일본영화를 소개하고 싶”던 차에 2023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모리타 요시미쓰 회고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해당 기획전의 상영작과 함께 보면 좋을 작품을 선별해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모리타 요시미쓰 8mm 영화 상영회’를 열었고 “‘지나가다 우연히 들렀는데 50여년 전의 일본영화가 상영되고 있어 신기했다’는 한 학생 관객의 피드백을 받았다”. 그에 힘입어 지난해에는 릿쿄대학교의 동아리 ‘패러디어스 유니티’의 영화를 상영하는 특별전을 열었다. “베테랑 감독들이 학창 시절 제작한 영화다 보니 엉성한 측면이 있는데, 관객들이 ‘나도 찍을 수 있겠는데’ . ‘나도 저런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감상을 들려주었다.”(신은경) 재밌는 영화를 공유하고자 한 개인의 시도가 다수의 관객에게 새로운 감흥, 욕구를 안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목할 만한 영화감독이나 그의 영화에 관한 담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이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담당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윤영 시네마토그래프 대표의 목표 또한 특기할 만하다. 현재 시네마토그래프는 마티아스 피녜이로 극장전과 같은 오프라인 상영 외에도 인스타그램을 기반으로 한 웹진을 발행하며 온라인에서의 비평적 논의의 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들이 축적된다면 한동안 실효성을 찾기 어려웠던 새로운 영화 문화(운동)의 태동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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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마이크로시네마의 특징을 좀더 면밀히 들여다보자. 소리그림은 언급한 6개의 마이크로시네마 중 유일하게 오프라인 공간을 소유하고 있다. 이곳을 “영화뿐만 아니라 문학과 미술의 융합공간”(김지환)으로 운영하기 위해 소리그림은 (비)극장전, 카프카 100주기 특별전 등의 영화 관련 기획에 한정하지 않고 강보원 시인·문학평론가, 류한길 음악가 등의 워크숍을 통해 타 장르간의 교류를 지속적으로 꾀한다. 한편 창작 기반의 운영진이 주를 이루는 마이크로시네마들은 상영회와 영화제를 동시 운영한다. 앞서 언급했던 마산영화구락부의 무학산영화제, INK의 필름 인 대덕 영화제 외에도 로트링겐 역시 ‘ABBFF 병영영화제’를 개최한다. 2024년 치러진 제1회 ABBFF 병영영화제는 총 16명의 영화 예술가들이 참여했으며 이틀 동안 8개국 21편의 영화가 상영됐다. ABBFF 병영영화제는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거나 기존에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작품, 그리고 로트링겐 구성원의 영화를 만나볼 수 있는 행사”(일환)인데, 이는 제도권의 시야 밖에 있는 “영화와 영화 집단을 포착해 상영”(김준희)하는 무학산영화제, 필름 인 대덕 영화제와도 결을 같이한다.
이처럼 근래 활발히 활동하는 마이크로시네마는 접근성이 낮은 영화들을 상영할 뿐만 아니라 토크 행사, 워크숍 등을 바탕으로 감독과 그의 작품에 대한 담론을 활성시킨다. 또한 “디지털 세대이기에 제공 가능한 자료와 정보들”(일환)을 제공하며 온오프라인 공간을 아우르고 나아가 영화 외 분야와의 교류를 적극 시도한다. 이러한 마이크로시네마를 기반으로 집결된 시네필, 관객들의 상호작용이 어떤 궤적을 그릴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작은 규모에서 오는 이점 있지만 지속가능성은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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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자들은 마이크로시네마의 가능성과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가능성 측면에선 작은 규모에서 오는 이점이 꼽혔다. “예산, 행정적인 이유로 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의 기획전, 각종 영화제의 프로그래밍에는 일부 영화가 호명되지 않고 중복된 기획을 하는 등의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마이크로시네마는 다른 곳에서 기획전을 열기엔 커리어와 대중의 반응이 미미하다고 판단했을 감독과 작품을 소개”(김준희)할 수 있다. 시의를 즉각 반영한 기획을 빠르게 내놓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언급됐다. 더불어 현 한국영화계가 맞이한 위기의 돌파구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룡의 멸종기가 반복되는 것처럼 한국영화계에도 일종의 멸종기가 도래했다. 공룡들이 새로 진화해 살아남은 것처럼 생존을 위한 진화가 반드시 규모를 키우는 식으로 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아카데미와 산업 시스템 바깥의 플랫폼인 마이크로시네마만이 획득할 수 있는 기질이 있을 것이다.”(배은열)
반면 마이크로시네마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우려도 제기됐다. “마이크로시네마는 과거의 영화를 소환해 사람들에게 새롭게 소개한다는 점에서 현재의 재개봉 문화와 비슷하지만, 상대적으로 영리적 목적이 덜하다는 특징”(이윤영)을 지닌다. 이윤영 대표는 “현 상황만 놓고 보자면 비제도권에서의 상영은 유지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사비로는 상영회를 계속 이어나갈 수 없는데 관련 지원이 부족한 데다 자칫 단골 장사로 빠진다면 확장성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특정 집단을 좇는 팬들이 생기면서 그외 사람들에겐 주목받지 못하는 경향을 의미하는데 이윤영 대표는 이를 조금씩 체감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시네마토그래프에선 현재 수입·배급을 열심히 준비해 안정성을 도모해보려 한다.”(이윤영) 비슷한 이유로 소리그림도 영리를 추구한다. “해외와 한국의 마이크로시네마 시스템의 차이는 후원 문화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는 후원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소리그림은 내부의 콘텐츠로 계속 관객을 모객하면서 지원 관련 정책을 살피고 있다. 다른 기관과 협력하며 소리그림 공간이 지닌 물리적 한계도 해결할 계획이다.”(김지환) 특정 평론가의 취향이나 평가, 특정 감독을 향한 숭배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신은경 기획자는 “자주영화가 잘 알려지지 않은 감독들을 다루거나 상영이 덜 된 작품들이 많다보니 신비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경계하고 싶다. 더불어 일본의 유명 평론가들의 평을 그대로 반영해 한국에서 해당 일본영화를 관람하는 방향도 지양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마이크로시네마가 시네필과 같은 특정 소수의 문화로 남아선 안된다는 의견도 중복됐다. 아직 역사가 오래지 않은 마이크로시네마들이 짧게 활동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제도권 밖에서 한국영화 문화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