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발굴하는 비평, SNS를 만나다, 이윤영 시네마토그래프 대표
2025-02-21
글 : 김소미
사진 : 최성열

“최근 시네클럽이 많이 생기고 개인 상영을 하는 단체가 늘어나는 것이 한국 영화 문화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윤영 시네마토그래프 대표) 대안적 영화 문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마이크로시네마의 움직임 가운데 인스타그램에 기반한 웹진 ‘시네마토그래프’(Cinematograph.)가 독특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시네마토그래프를 이끄는 이윤영 대표는 21살의 야심찬 멀티플레이어다. 그를 먼저 이렇게 칭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비평가이자 프로그래머, 웹진 시네마토그래프의 기획과 브랜딩을 총괄하는 마케터이자 필진들을 관리하는 편집자로서 다각의 정체성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보형, 오다 가오리, 마티아스 피녜이로까지 주목할 만한 감독들의 기획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이윤영은 <너는 나를 불태워>를 시작으로 수입·배급업으로의 확장을 통해 시네마토그래프의 지속 가능성도 꿈꾼다.

- 온라인에서 진행한 1회 시네마토그래프 감독전에서 서보형 감독의 영화를 상영한 것을 시작으로 오다 가오리, 마티아스 피녜이로 등 소위 아트하우스 시장에서도 주류로 다뤄지지 않는 감독들을 호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어떤 기조로 감독전의 주인공을 선정해왔나.

작업의 훌륭함에 비해 한국에서 비평적 담론이 잘 이뤄지지 않은 작가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벗어날 탈 脫>을 보고 이 작품이 디졸브를 활용하는 방식이랄지, 비디오아트적인 특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이 국내 개봉까지 성공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놀랐다. 오다 가오리는 왕빙을 처음 봤을 때의 감흥과도 비슷했다. <아라가네>에서는 광산 근로자들의 공동체를 감각적으로 포착했고, <세노테>에서는 더 나아가 과거의 영혼들과 영들을 카메라로 잡아낸 점 등이 그랬다. 마티아스 피녜이로의 <로잘린> <도둑 맞은 남자>를 보면서는 기존에 존재하는 텍스트를 영화로 옮기되 단순히 소설을 이미지화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안에서 재배열하는 작업을 하는 작가성에 매료됐다.

- 지난해 11월 열린 오다 가오리전은 에무시네마, 2월14일부터 18일까지 열리는 마티아스 피녜이로 기획전은 아트하우스 모모에 자리를 잡았다.

첫 오프라인 기획전인 오다 가오리전은 영화관도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단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마음부터 먹었다. 양인모 전 에무시네마 프로그래머를 우연히 소개받은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상영 비용과 항공권, 숙박 등 감독 초청 경비는 모두 사비로 진행했다. 비록 약 몇십만 수준의 적자가 났지만, 오다 가오리에 대한 담론이 활성화되는 걸 보며 보람을 느꼈다. 피녜이로전을 준비하면서는 좋은 영화를 큰 스크린으로 본다는 경험에 대한 관객들의 확실한 요구가 있다고 판단했다. 마스터클래스와 GV를 확대한 것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언급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 시네마토그래프 활동의 개인적인 출발점은 무엇이었나.

유튜브 채널에서 해외 예술영화, 고전을 배포하는 활동을 했다. 지금 보면 흑역사지만 그때의 동기는 좋은 영화를 많은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창구를 만드는 것이었다. 계정이 2~3번 터지면서 멘털도 함께 무너졌지만. (웃음) 이를 계기로 보다 공식적인 형태인 인스타그램 웹진 개설로 나아갈 수 있었다.

- 불법 공유, 저작권 침해 문제 등 낙인을 마주했던 영화 해적질이 역설적으로 시네필리아의 대안적 영화 문화의 씨앗이 되어 새로운 형태의 문화실천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한민수의 <영화도둑일기> 같은 책이 이를 잘 다루고 있는데, 시네마토그래프 운영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바라보나.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시네필들이 겪어온 목마름을 체감한다. 기본적으로 정보량이 방대하고 만들어지는 영화도 훨씬 많아졌다. 개봉이나 영화제를 통하지 않고도 ‘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필연적으로 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 또한 토렌트나 러시아 사이트에서 숱한 영화들을 찾아봤다. 시네마토그래프를 운영하면서도 마찬가지다.

- 그 밖에 틈새의 영화들을 발굴하는 주요 경로는.

EXiS 서울제실험영화페스티벌이나 부산국제영화제의 비주류 섹션을 눈여겨본다. 화제작보다는 인기 없는 영화들을 찾아보려 한다.

- 지원제도, 영화제, 배급·홍보마케팅 과정을 통과하며 시장에 안착하는 영화들의 정형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활동의 동력일까. 시네마토그래프가 찾고 싶은 돌파구와 타깃층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

한마디로 파격성의 부재에 답답함을 느낀다. 지금은 한편의 영화에 대한 호평의 흐름이 형성되면 다들 그쪽으로만 몰려가는 경향이 너무나 강하다. 영화 자체보다 영화를 둘러싼 현상에 대한 분석이 필요한 시점 아닌가. 특히 평론가의 아이돌화 현상을 경계한다. 특정 평론가가 좋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가 소비하고 좋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시네마토그래프의 타깃층은 확실히 젊은 시네필이다. 예술영화를 ‘사유의 매체’로 인식하면서 이런 경험을 더 확장하고자 하는 이들, 문화예술 전반에 안목을 키워가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 웹진 시네마토그래프의 근거지는 인스타그램이다. 텍스트 친화적이지 않은 플랫폼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반드시 첫 시작은 인스타그램이어야 한다고 직감했다. 기존에 발빠르게 인스타그램 플랫폼에 특화된 웹진들이 있는데 대체로 휘발성 강한 이미지 나열이나 리스트 추천 등 콘텐츠 위주라고 봤다. 장문의 비평 텍스트를 인스타그램에 집중하는 웹진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 지난해 개설해 피드의 기획과 구성, 필진 관리, 실질적인 제작과 업로드까지 모두 혼자 하고 있다. 현재 팔로워 1만명을 앞두고 있는데 SNS 관리에 어떻게 접근하나.

지난해 3월에 계정을 처음 개설해 여름부터 활동을 본격화했다. 첫 이미지가 무조건 시선을 끌도록 하는 데 주력한다. 텍스트와 함께 사진과 각주를 적극적으로 삽입한다. 상시 모집 중인 필진은 웹진의 다양성을 고려해 내 취향과는 맞지 않는 비평을 쓰는 사람들도 섭외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60여명 정도가 지원했고 현재는 18명 정도가 정기적으로 활동 중이다. 모두 카카오톡 채팅방에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 21살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공부 중이거나 생업으로 삼은 것이 있나.

올해 대학 문화콘텐츠학과에 입학할 예정이다. 당분간은 지금처럼 1인 활동을 지속할 생각이다. 누군가는 분업이 효율적이라고 하겠지만, 자신의 청사진이 뚜렷하다면 혼자서 꾸려나가는 방식에도 큰 장점이 있다. 누구보다 각 분야에 전방위적으로 깊게 관여할 수 있다.

- 자금은 어떻게 조달하나. 현재 준비 중인 새로운 기획전이 있는지.

수익 확보를 위해 영화 수입, 배급을 시작했다. 시작은 피녜이로의 <너는 나를 불태워>이고 배급은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도 영화제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영화들, 상업성이 떨어져 주목받지 못하는 영화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싶다. 여름 이후로 멕시코 감독인 카를로스 레이가다스 기획전을 열기 위해 준비 중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침묵의 빛>을 보고 처음 알게 됐다. 지금까지 그의 작품 5편 중 4편을 봤는데 과격한 화면비율 등 자신만의 비전이 일관되게 확립된 작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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