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비평] 반복된 질문 끝에 남은 것, <별들에게 물어봐>
2025-02-19
글 : 조현나

‘국가간 우주의 희귀자원을 놓고 국정원들이 벌이는 전쟁 얘기나 또 하나의 지구 찾는 판타지가 아닌, 우주에서 사람 사는 얘기’를 그리겠다는 것이 <별들에게 물어봐>의 기획 의도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다수의 SF영화, 시리즈를 상기할 때 한국에서 처음 시도된 ‘우주정거장에서의 생활기’라는 설정은 신선한 시도를 기대케 한다. 우주정거장에서의 무중력상태나 우주인들의 일상에 관한 묘사가 보다 정교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별들에게 물어봐>가 단조롭게 느껴진다. 단순히 우주인의 행보만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상 관제 센터의 전문가들과 우주인을 지켜보는 지구인들까지 극의 등장인물 모두 궁극적으로 하나의 질문에 귀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주와 글라스의 세계

산부인과 의사인 공룡(이민호)이 우주선에 오른 목적은 하나다. MZ그룹 며느리의 난자와 사망한 장손의 정자를 수정시켜 돌아오는 것. 성공한다면 공룡은 MZ그룹의 유일한 직계자이자 자신의 연인 고은(한지은)과의 결혼을 허락받을 수 있다. 지구에선 머리가 찌그러지는 유전적 결함을 지녔던 정자가 무중력상태의 우주에선 본형태로 복원돼 난자와의 수정을 꾀할 수 있다는 설정은 꽤 흥미롭다. 더불어 허가받지 않은 난자와 정자를 비밀리에 반입해 수정시켜야 한다는 과제, 이를 이뤄낼 시 주인공의 사랑 또한 성사된다는 설정은 적절한 서스펜스를 안기는 동시에 로맨스물의 문법에도 충실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론 고은을 사랑한 적이 없다는 공룡의 고백 뒤로 그의 마음이 우주정거장의 커맨더 이브(공효진)에게로 향하면서 상황이 반전된다. 고은과의 결혼을 원치 않으니 공룡에겐 시험관시술을 성공해야 할 필요가 사라졌다. 시청자로서도 주인공의 사랑과 무관해진 재벌가의 대 잇기를 굳이 궁금해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공룡은 주치의로서 약속을 지키겠다는 명목으로 시험관시술을 여러 차례 시도한다. 우주인이자 고은의 옛 애인인 강수(오정세)는 여전히 고은을 사랑하기에 그의 결혼을 지켜만 볼 수 없어 결국 난자, 정자를 가로채 수정을 시도한다. 그런 둘의 경쟁을 간절하게 바라보는 건 MZ그룹 사람들뿐이다. 이 간극이 문제의 시발점이다.

<별들에게 물어봐> 1화 초반부, 뉴스 앵커는 이브와 공룡을 태운 탐사선 익스페디션 3기가 “치매와 난임, 난치병 등 몇 가지 난제를 실험 키트에 담아 우주정거장으로 간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우주정거장의 우주인들은 초파리 연구 과학자, 식물과 쥐 실험을 담당하는 박사 등 다양한 연구 목적을 가졌으며 각자 실험을 진행하는 모습도 짧게 등장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연구자들의 염원은 초파리와 쥐의 섹스로 귀결된다. 실험체들이 임신과 출산에 성공해야 향후 우주에서의 인간의 생존 가능성도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번식’이라는 주제는 한 재벌가의 정자와 난자에서 초파리, 쥐에 이르기까지 주체만 달리하며 반복적으로 제시된다. 특히 시험관시술의 성공 여부가 강조된 나머지 공룡과 강수 외의 연구자들까지 이를 돕는 기능적 역할로 전락하고 공룡과 이브의 로맨스는 자연스레 주변부로 밀려난다. 이후 두 사람은 좌초된 우주선에서 생존을 위해 체온을 나눠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몸의 접촉을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장치다. 로맨스가 충분히 그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후반부에 암시되는 공룡과 이브의 섹스는 사랑의 결실이라기보다는 앞서 되풀이된 번식이란 주제를 그대로 답습한다는 인상을 남긴다. 이것이 <별들에게 물어봐> 9화까지, 우주정거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반대로 지구의 상황은 어떨까. 우주인들의 행태에 집중하는 지구인은 크게 세 그룹으로 정리할 수 있다. 지상 관제 센터의 전문가들과 공룡의 세 어머니, 그리고 MZ그룹 관계자들이다. 수백 킬로미터의 거리감으로 인해 이들이 주로 TV, 모니터 등의 스크린을 통해 우주정거장의 상황을 지켜보는 모습이 반복해 묘사된다. 그래서인지 우주정거장은 일종의 무대이며 지구인들은 관객, 지상 관제 센터는 하나의 거대한 극장으로 대치돼 보이곤 한다. 우주인을 바라보는 세 그룹의 감상은 제각각이다. 공룡의 어머니들은 그가 무사 귀환하길 기도하고 지상 관제 센터의 동료들은 우주인들이 프로젝트를 완수하길 바란다. MZ그룹은 당연하게도 수정의 성공 여부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여러 등장인물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얽힌 채 개별 궤도로 뻗어나가는 듯 보이지만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지점은 같다. 초파리, 쥐, (정자와 난자로 대체된) 인간의 ‘번식이 성공했는가’라는 질문이다. 물론 그 중심엔 시험관시술이 있다. 여기서도 비슷한 문제가 거듭된다. 시청자들은 우주정거장의 광경을 1차로 목격한 뒤 스크린으로 투과된 우주정거장의 정태, 이를 살피는 전문가, 어머니, MZ그룹 관계자들의 감상을 2차, 3차로 마주한다. 무대와 관객 반응을 번갈아 비추는 동일한 구성의 시퀀스가 반복 상영되면서 최종적으로 관객에게 닿는 건 수많은 변주로 인해 힘을 잃은, 열화된 이미지와 감정들의 총합이다. 아쉽게도 그 희미함에 시선이 붙들린 이는 많지 않다. 우주만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무대가 몇이나 될까. <별들에게 물어봐>는 기껏 우주인들을 우주로 쏘아올린 뒤 현미경을 통해서만 바라볼 수 있는 글라스 속의 세포에 그들의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가장 광활한 무대 위에서 택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입지를 고른 셈이다.

익숙한 맛, 혹은 애매한 맛

근 몇년간 한국 시리즈물에서 공통적으로 감지되는 특성은 사건이 병렬적으로 나열된다는 것이다. 변호사, 의사, 형사, 헤드헌터 등 주인공의 직종에 따라 사건의 성격은 달라질지언정 한 회차, 길어야 두 회차 안에 일의 발단부터 결말까지 담아내는 속도감 있는 구성이 자주 보인다. 그 과정에서 인물의 성장과 깊어지는 관계도 함께 묘사된다. 아마도 긴 호흡의 서사를 부담스러워하는 시청자들을 위해 빠르게 시야를 환기하려는 목적일 것이다. 이러한 구성이 정답이라는 건 아니다. 다만 새 화두를 끊임없이 던지는 작품과 ‘번식’이란 주제를 맴도는 <별들에게 물어봐>를 비교할 때 후자가 지향하는 타깃층, 해당 타깃층에게 익숙한 서사의 전개, 선호하는 장르적 매력, 이미지의 전달 방식 등에 관한 분석과 방향성이 명확히 설정됐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별들에게 물어봐>는 500억원에 이르는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스타 작가, PD, 배우가 투입된, 다수 시청자의 구미를 당길 만한 기획 상품이다. 하지만 최근까지의 전개로 판단컨대 공룡과 이브의 감정선은 몰입을 자아내기엔 빈약했으며 우주인의 생활기가 독창적이거나 차별성 있게 그려지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SF 장르 팬에게는 이 모든 게 SF의 외피를 입은 멜로에 불과하고 로맨스 장르 팬들에게는 우주인의 과업 달성에 편중된 서사로 다가오게 됐다.

공룡은 마침내 정자와 난자 수정에 성공했고 10화에 이르러 우주인들은 지구에 당도했다. 이제야 인물들의 관계와 처한 상황에 제대로 된 변화의 기미가 엿보인다. ‘한국 최초 우주 드라마’를 표방한 작품에서 우주를 떠난 뒤에야 비로소 멈춘 톱니바퀴가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는 건, 애정을 갖고 본 입장에서 씁쓸함이 남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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