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뉴스]
<와호장룡> 1억 고지 점령
2001-03-27
해외 톱

미국 박스오피스 1억달러 돌파, 외국어영화 중 최초

<와호장룡>이 외국어영화로는 최초로 미국 박스오피스 1억달러를 돌파했다. 지난 12월8일 뉴욕 16개 스크린으로 조촐하게 출발한 <와호장룡>은 몇 차례의 확대 개봉을 거쳐 3월 셋째주까지 통산 1억3백만달러의 매표 수익을 올렸다. 이는 지난 97년 외국어영화로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인생은 아름다워>의 5760만달러를 훨씬 웃도는 수치. <와호장룡>은 오스카 10개부문에 노미네이트돼 <글래디에이터>와 함께 주요 부문 수상작으로 점쳐지고 있어, 호기심이 동한 미국 관객들의 발길을 더욱 재촉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대중이 <와호장룡>을 주목하게 된 것은, 지난 연말 <타임> 등 유력 언론에서 ‘2000년 최고의 영화’로 앞다퉈 <와호장룡>의 손을 들어준 데다가, 2월13일 오스카 수상후보 발표에서 <와호장룡>이 <글래디에이터>에 이어 두 번째 최다 부문 지명작으로 화제를 모으면서부터. 당시 미국 언론은 <와호장룡>이 오스카 사상 최다 부문에 오른 외국어영화, 최우수 작품상 후보에 오른 최초의 중국영화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실제로 노미네이션 발표 즈음 6천만달러였던 매표 수익은 불과 5주 만에 1억달러로 뛰어올랐다. 특히 최우수 작품상 후보에 오른 덕에, 외국어영화가 단 한번도 소개된 적이 없는 작은 마을의 극장에도 <와호장룡>이 상영됐을 정도.

<와호장룡>의 배급 규모는 3천개의 스크린에서 와이드 릴리스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비하면, 1800개 이하로 열악한 편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간 관객의 호응은 매우 뜨겁다. <와호장룡>은 영국 아마존과 인터넷무비데이타베이스가 공동으로 주최해 1만명이 참여한 오스카 수상 예측 인터넷 설문 조사에서 최우수 작품상 부문에 가장 높은 지지를 얻었다. 감독 부문의 리안(43%)도 <글래디에이터>의 리들리 스콧 감독(26%)을 가볍게 따돌렸다.

잉마르 베리만, 페데리코 펠리니, 구로사와 아키라의 시대가 지나고, 폭력과 섹스 등 성인관객에게 어필하는 할리우드영화가 양산되면서, 외국영화는 지난 30여년간 미국 극장가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69년 스웨덴의 세미 포르노그라피 <나는 궁금하다>(I Am Curious(Yellow))가 2000만달러(지금의 9500만달러에 상응)의 수익을 올린 바 있지만, 그뒤의 히트작은 2100만달러를 벌어들인 <달콤쌉싸름한 초콜렛>(92년)과 <일 포스티노>(94년) 정도.

미라맥스와 소니 등 외국영화 제작과 배급에 참여했던 스튜디오들은 이번 <와호장룡>의 선전에 크게 고무돼 있다. 그들은 “외국영화의 할리우드 진출 교두보를 마련해줬다”는 의미를 부여한다. <와호장룡>의 프로듀서 겸 작가인 제임스 샤무스는 미국 관객의 자막 기피증이 사라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미국 대중이 할리우드에 전하는 메시지는 자명하다. 좋은 영화라면, 관객은 그것이 화성말이든 중국어든 독일어든 개의치 않고 극장으로 달려간다는 사실이다.” <와호장룡>이 화면을 보면서 자막을 쓰고 읽는 데 익숙한 컴퓨터 세대들, 특히 소년 관객을 매혹시킨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도 있다. 영화사학자 레너드 몰틴은 “단 한번도 자막영화를 보지 않았던 수백만의 미국 관객들이 극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자막영화를 보러가는 것이, 두 번째부터는 더 수월해질 것”이라며, 외국어영화의 자막이 더이상 흥행에 장벽이 되진 않으리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비치고 있다.

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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