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야성의 부르짖음, “친구야!” <친구>의 유오성
2001-03-27
글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야성(野性), 94년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유오성(36)은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들짐승 같았다. 그리고 <비트> <간첩 리철진> <주유소 습격사건>까지, 예의 그의 얼굴은 빛보다는 어둠의 농도를 따라 얼굴선을 드러냈고 그 예사롭지 않은 눈이 조명과 정면으로 충돌할 때면 우리는 스크린 너머 잠시 아찔한 기운을 느꼈다. 그는 어둡고, 강하고, 거칠고, 그리고 외로워보였다. “사시미칼을 주로 이용한다. 찌르고 나면 90도로 날을 돌려준다. 그리고 아래에서부터 위로 쳐올린다. 자기가 칼을 맞았다는 것을 최대한 느끼게 해줘야 된다.”

가전제품사용설명처럼 담담하게 살인강의를 해내는 <친구>의 부산건달 준석 역시 어쩌면 전작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캐릭터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준석은 어둠의 이미지 속에서 짠내나는 외로움을 부끄럼 없이 드러낸다. 약에 찌든 퀭한 얼굴로 연신 희고 마른침을 뱉는 마약중독자.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면서도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를 향해 농담을 건네던 친구. 어느 날 불쑥 나타나 청춘의 중심부를 향해 질주할 오토바이 한대만 툭 하니 던져주고 사라졌던 <비트>의 태수처럼 민에게나 상택에게 그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친구였고, 피를 나눈 대체형제였으며, 풀지 않으면 넘어갈 수 없는 청춘의 숙제였다.

어린시절부터 서른 넘은 장년의 궤도를 따라가는 영화의 순서와 다르게 <친구>의 촬영은 거꾸로 진행되었다. “촬영초반엔 많이 곤두서 있었어요. NG도 많이 났었고.” 바닷물에서 방금 꺼낸 듯 염도 높은 부산사투리며, 끊이지 않는 욕지거리를 ‘리얼’하게 표현해내기 위해서는 “시나리오에 방점까지 찍어가며” 연습해야 했고, “하루 일과는 기억나는데 어떻게 연기를 했는지는 기억 안 날” 정도로 촉수는 오로지 OK사인에 쏠려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극의 재미를 한껏 담고 있는 학창 시절 촬영부터는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이를 딱 반으로 접은 18살의 준석. 레스킬렌(실리콘이 아니라 했다)을 볼에 집어넣어가면서까지 만든 제법 통통한 얼굴에 교복을 삐딱하게 입은 그는 첫 등장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을 풍긴다. “다 늙은 놈들이 까까머리에 교복입고…, 어휴 혼자서면 못했죠. 동건씨, 태화씨, 운택이 한꺼번에 다 그러고 나오니까 우리는 고등학생이다, 그런 식의 집단최면이 걸린 거죠, 뭐.”

그러고보면 유오성이 등장한 영화는 전작에서 상업적으로 혹은 비평적으로 쓴잔을 마셔야 했던 감독들의 작품이었다. “물론 그래서 나한테까지 차례가 돌아온 거겠지만, 이번이 마지막이고 끝인, 절실한 사람들과 작품을 한 건 행운이었죠.” 특히 곽경택 감독은 ‘친구 팔아먹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 속에도 자전적인 영화 <친구>를 완성시켰다. 유오성은 촬영 전 실제 준석의 모델이자 현재 복역중인 곽 감독의 친구를 만났다. “키는 작지만 미남형에 단단한 체구를 가진 사람이었어요.” 처음에 시나리오를 읽고 상택과 준석이 면회소의 투명한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손바닥을 강하게 맞대는 장면에 ‘이거 오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유오성은 “두 사람, 만나니까 정말 그렇게 하더라구요. 밝은 척 목소리를 내는데 거의 울먹거리면서 제대로 말도 못하고…”. 물론 그때 준석이 미련없이 돌아서서 사형장으로 걸어갔더라면 영화적으로 더없이 ‘쿨’했겠지만 “그런 식으로 친구를 포장하는 작업을 할 수 없었던” 감독의 마음을 잘 알기에 군말없이 그러자고 했다. “늘 객관적이 되려고 해요. 배우가 한 사람의 인물에 너무 주관적으로 빠져든다는 건 환각이지 연기가 아니거든요. 연기는 거리두기가 필요한 작업입니다. 그래야 오버하지 않지요.”

유오성은 마지막으로 “경제적인 생산자들이 문화적으로는 전혀 누리지 못하고 사는 것이 안타깝다”며 <친구>가 각박한 그들의 발걸음을 영화관으로 돌리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희망 한 자락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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