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 윈슬렛의 맥박은 1분에 120번 뛴다. 그의 가까운 친구들은 감정이 매우 고양된 상태나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를 뜻하는 은어로 ‘윈슬렛’(winslet)을 즐겨 사용한다고 한다. ‘너 오늘 참 윈슬렛하구나’ 이러면, 기분이 매우 좋아보인다거나 기운이 넘친다는 뜻. 케이트 윈슬렛의 생체리듬과 감성지수가 남다르다는 증거는 더 있다. <타이타닉>의 제임스 카메론은 케이트 윈슬렛이 슬픈 장면을 찍고 나면 감정을 수습하지 못해 몇 시간을 더 울었다고 증언하고, <센스, 센서빌리티>의 리안은 케이트 윈슬렛의 가슴속에 꿈틀대는 소용돌이를 잠재우기 위해 태극권과 시집을 권했다고 전한다. “저 애는 자기 감정을 속일 줄 몰라요. 열정 때문에 품위를 잃곤 하죠.” <센스, 센서빌리티>에서 절제된 감정과 정돈된 행동의 화신인 에마 톰슨(센스)이 자기와 반대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좌충우돌하는 여동생 케이트 윈슬렛(센서빌리티)에게 던진 대사는 픽션이 아니라 ‘실제상황’이기도 하다. 그 대책없는 순수와 열정과 솔직함과 생기발랄함의 결정체가 바로 케이트 윈슬렛이다.
헬레나 본헴카터처럼 시대극의 단골배우로 자리매김하긴 했지만, 케이트 윈슬렛의 입지는 조금 다르다. 코르셋과 페티코트로 몸매의 굴곡을 강조한 빅토리안 드레스가 어울리지만, 보수적인 사회 관습에 순종하는 태도는 좀체로 어울리지 않는 아이러니. 고집스럽고 자유분방한, 시대를 ‘앞서간’ 여성이 케이트 윈슬렛이다. 자신의 사랑을 찾아나서는 <센스, 센서빌리티>의 당돌한 여성 마리앤, 사촌과 금지된 사랑에 빠져 비운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쥬드>의 수, 부유한 정혼자를 외면하고 비천한 신분의 낯선 남자를 운명의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타이타닉>의 로즈는, 서로 닮아 있다. <퀼스>에서 마르키스 드 사드가 말년을 보낸 정신병원의 세탁부 마들렌도 마찬가지다. 마들렌은 육체적 쾌락과 가학의 욕망을 풀어낸 사드의 소설을 지지하고 출판을 도울 뿐 아니라, 사드의 뮤즈로, 원장 쿨미어 신부의 연인으로, 그들 삶의 유일한 ‘빛’이 되는 캐릭터. 야생화처럼 활기차고 아름답던 그가 사라지고 나서, 사드도 쿨미어도 이성을 잃고 파멸하는 설정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걸 보면, “내가 작품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작품이 나를 선택했다”는 그의 말이 정답처럼 느껴진다.
케이트 윈슬렛은 <타이타닉>이 성공한 뒤에, 뭐든 골라 가질 수 있는 스타의 특권, 그 나태와 탐욕이 가장 두려웠다고 고백한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 <애나 앤드 킹>을 마다하고, <히데우스 킨키> <홀리 스모크> 같은 인디영화로 달려간 것은 그런 이유. 얼마 전 로버트 해리스의 소설을 영화화한 <이니그마>의 촬영을 마쳤고, 에밀 졸라의 원작으로 프로듀서까지 겸하게 될 <테레즈 라퀸>, 짐 셰리던의 <이스트 할렘>에 출연 대기중이다. <히데우스 킨키>의 조감독과 결혼해 지난 가을 엄마가 된 그녀는, 여전히 “나에게 달려들고 할퀴어대는 역할”을 찾아 뛰어다니고 있다. 홍조어린 얼굴로, 가쁜 숨을 토해내면서.
외모 | 한때 몸매에 대한 불만이 내 머리의 95% 이상 들어차 있었다. 에마 톰슨이 “점심을 거르고 살을 빼면서 이 일을 하겠다니, 너무 화가 난다”면서 <미의 신화>라는 책을 선물한 뒤로, 사이즈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할리우드라는 판타지의 세계에 어울리는 판타스틱한 미모의 배우들이 늘어가지만, 관객이 사랑하는 건 배우의 영혼 속에 깃든진실함이라는 걸 안다. 난 디카페인에 무설탕에 저지방 음료를 주문하는 말라깽이 여자들 사이에서 이렇게 주문한다. 설탕 추가, 크림 추가, 무조건 더블로.
스타덤 | 스타라고 거드름을 피웠다간, 식구들한테 몰매맞을 게 뻔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과 나라는 인간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기회가 늘어난 건 사실이고 복된 일이다. 하지만 일거수일투족 주목을 받는다는 건, 당황스럽고 적응 안 된다. 사생활을 박탈당한다고 생각하면 유쾌하지 않다. 하지만 내가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다면 만사 OK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