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사람을 생각하면 슬픈 귀가 열린다, 라고 내가 좋아하는 시인 김정환은 자신의 책 첫머리에 썼다. <닥터 지바고>, 라는 영화제목을 떠올리면 나는 내 흑백 사진이 든 앨범의 첫장을 여는 듯하다, 라고 내가 쓴다면 아마도 과장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만큼 내게 다층적인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영화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닥터 지바고>라는 영화의 제목을 처음 들은 것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이었다.
영화광이었던 어머니가 아버지와 함께 극장엘 다녀와서 했던 말이 기억나니까. 그때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 영화 정말 굉장해, 참 잘됐어.” 재미있는 것말고 잘됐다는 게 뭔지는 몰랐지만, 닥터라는 말이 의사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던 나는 어린 마음에도 그 영화가 “에로틱”할 거라는 근거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의사놀이라고 불렀던 성적인 장난하고 닥터하고가 연관되어서 그랬을 것이며 어머니가 우리는 데리고 가지 않고 아버지와 단둘이만 영화를 보고 와서도 그랬을 것이며 영화에 대한 평을 전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평소하는 다르게 들떠 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나서 앨범을 한장 더 넘기면 열여섯살 겨울이 된다. 그때 나는 친구와 그 영화를 보러 갔다. 에로틱한 영화를 보러 간다는 근거없는 설렘을 나는 그때까지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영화는 에로틱한 것과는 관계가 없이 내가 좋아하던 슬픈 사랑영화였다. 영화가 끝난 뒤 목도리를 칭칭 여미고 스카라극장 앞의 눈쌓인 길을 친구와 하염없이 걸었던 생각이 난다. 그날은 왜 그렇게 춥던지, 하지만 그 추위 때문에 보도에 쌓인 눈 때문에 나는 내가 러시아의 처녀라도 된 것 같았고, 이보다 더 추운 데 가서 덜덜 떨어도 좋으니 이담에 커서 저런 사랑을 한번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집에 돌아온 나는 긴긴 일기를 썼다.
그러고나서 나는 스물다섯이 된다. 러시아혁명사를 배웠고 날마다 핏대를 올리며 술집을 시끄럽게 하던 시절이었다. 우연히 TV에서 나는 다시 <닥터 지바고>와 만났다. 나는 그때 <닥터 지바고>라는 영화가 러시아혁명을 놀랍도록 잘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눈을 빛냈다. 아아, 저게 ‘피의 일요일’ 사건이구나, 아하 저게 1905년 혁명이구나, 아아 저게 러시아 내전이구나…. 나는 지바고 같은 우유부단한 회색분자는 절대로 사랑하지 않을 거야…. 저 남자가 역사를 알아, 혁명을 알아? 그리고 나는 회색분자가 되지 않기 위해 공장으로 떠났다. 그리고 오년 뒤 이혼녀가 된 나는 이젠 이유도 모르겠지만 그 영화를 또 본다. 나에게는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의 감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다만 그 남자, 지바고보다 더 끈질기게 나오는 그 뚱뚱한 남자 말이다. 이름이 뭔지 무슨무슨 스키나 무슨무슨 코프로 끝나는 사람이겠지만 어쨌든 라라와 어머니를 동시에 데리고 놀고 나중에까지 살아남아 또 라라를 데리고 가는 그 남자, 그 남자만 보인 것이다. 그 남자가 하는 말이 어쩌면 그렇게 똑똑하고 그 남자가 하는 말이 어떻게 그렇게 얄밉도록 현실적인지 하는 것 말이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라라에게 총을 들게 한 그 말,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여자는 두 종류로 나뉘지. 하나는 남자에게 고분고분 따르며 사는 여자고 하나는 남자에게 반항하지만 결국은 남자 없이는 살지 못하는 그런 창녀들이지. 그런데 너는 후자에 속해, 라든가, 혁명을 하던 라라의 약혼자를 숨겨줄 때 그를 의심하는 젊은 라라 부부에게 하던 말 “내가 왜 너희를 도와주냐고?… 그건 이런 이유야. 혹시라도 너희가 이길까봐”라든가, 라든가. 나는 그때 회색이든 보라든 어쨌든 영악하게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오년이 흐른다. 어떤 술자리에서 어떤 남자가 나보고 꼭 <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라라를 닮으셨습니다, 했을 때 갑자기 술맛이 싹 가시면서 기분이 몹시 나빠지고 만 것이다. 그래? 그렇다면 너는 지바고라도 되겠다는 말이냐? 어림없지, 나는 차라리 지바고를 떠나 파리로 가는 본부인을 닮았으면 닮았지, 그 넓은 대륙을 떠돌면서 기껏 남자와의 사랑에 모든 걸 거는 그런 여자는 되고 싶지 않아…. 한마디로 그 여자는 한 일이 없잖아, 싶어졌던 것이고, 말을 꺼낸 남자는 영문도 모르고 그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나에게 박대를 당했다. 한마디로 그는 타이밍을 잘못 잡은 것이다. 이십년 전에만 그 말을 했어도 좋았을 텐데….
얼마 전에 또 <닥터 지바고>를 보았다. 이번에도 왜인지는 모른다. 아마도 켜놓은 TV에서 흘러나왔으니까 보았을 것이다. 내 나이 서른아홉, 이번에 나는 그 영화를 보다가 소파에서 잠들고 말았다. 나는 과연 올바른 인생길을 가고 있는 걸까. <닥터 지바고>와 내 인생을 생각해보니 슬픈 귀가 닫히고 문득 심란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