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캔디’라고 불렀나? 자분자분 단물을 내며 씹히는 연한 껌보다, 입 안에 들어가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터지는 그 이상한 사탕의 재미에 한참 빠졌던 때 있었다. 차태현을 만나고 돌아서는 길은 늘 이 ‘톡톡캔디’ 10통쯤을 한번에 까먹은 것 같은 기분이다. “아유∼ 학생 역할도 금방 약발 떨어져요. 이런 거 얼마나 더 해먹겠어요, 더 늙기 전에 어여어여 해야지.” 뜬금없는 솔직함으로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다가 “맞어, 왜 그 영화제목이 생각이 안 났지? 허헝엉엉 바보야 바보….” 구시렁구시렁 혼잣말을 하다가 “요즘엔 기본 나보다 다섯살은 어린애들하고 영화를 찍으니 내가 철이 들 리가 있나, 철이 안 들어….” 자조적인 말을 툭툭 내뱉기도 한다. 준비했던 질문들을 잠시 저리로 미루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기로 한다. 정신없고 재밌다, 그리고 시끄럽다. 소음이라고? 저걸 뭔 맛으로 먹나, 어른들이 한참 신기한 듯 쳐다보기도 했던 그 불량식품이 다시 돌아왔다는 소리다.
“<엽기적인 그녀> 끝나고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왔어요. 학연타고 지연타고 엄마연, 아빠연타고 사방으로 이 영화 해라, 저 영화 해라, 돈은 얼마든지 줄게, 하는데…. 아예 시나리오도 안 나온 상태거나, 있어도 죄다 내가 싫어하는 코미디였거든요. 어떤 코미디 싫어하냐구요? 욕하고 때리는 코미디, 등장인물이 조폭두목, 깡패1, 깡패2… 뭐 이런 코미디 싫어요. 안 그래도 드라마에서 맡은 역도 죄다 양아치, 사채업자 이랬는데 영화까지 그렇게 가고 싶지 않았거든요.”
<엽기적인 그녀> 이후 쏟아져들어온 시나리오 중 그의 최종선택을 받은 <연애소설>은 톡 쏘는 콜라보다는 맛 맑은 우유 같은 멜로다. 으레 차태현에게 기대하게 마련인 코미디가 전반에 깔린 영화도 아니다. “내 눈이 정말 대중적이거든요. 나는 <엽기적인 그녀> 시나리오 반전도 눈치 못챘다고. 그래서 연장전 읽으면서 와∼ 죽는다 그랬지. <연애소설> 시나리오 보면서도 반전에 ‘헉’했다구요. 그래서 조금 닭살스러울 부분도 있지만 선택하게 된 거구요.” 게다가 이번엔 ‘엽기적인 그녀’를 한명이 아니라 두명이나 모셔야 했다. 이은주와 손예진 사이, 사랑과 우정을 오가는 아슬아슬한 삼각관계에 빠진 복많은 남자 지환을 연기한 그는 혼자가는 영화보다는 함께 가는 영화가 좋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연기하면서 경쟁하고 그런다던데, 저는 그런 거 안 해요. 같이 하는 사람 잘되면 기분 좋잖아요. 전 여사에 이 여사에 손 여사까지… 나는 남 서포트 해주는 게 좋더라. 그렇다고 내가 죽는 건 아니거든요.” 아무리 맞추고 섞이더라도 자기 색깔을 결코 잃지 않는 연기, 그것이 이 배우가 사는 법이다.
“애매한 나이죠. 아주 어린 역은 할 수 있는데 조금이라도 나이가 있고 무게가 들어가는 역을 하기엔 힘이 달리거든요. 하지만 지금 무리해서 욕심내고 그러진 않으려구요. 그때그때 할 수 있는 역할이 따로 있으니까. 사실, 나는 아직도 연기의 기술적인 면을 모르겠어요. 배에 힘을 줘서 복식호흡을 하라고 하는데 내가 연기할 때 배에 힘을 주는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자연스러운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할 줄 아는 것도 그것밖에 없어요. 삶 자체에 ‘관리’란 게 없으니까. 너무 변화가 없는 게 아니냐구요? 나이가 들면 변하기 싫어도 변하겠죠. 마흔되면 불륜연기도 할 테고…. 불륜도 한 가지겠어요. 멋있는 불륜, 치사한 불륜, 별의별 불륜에 별의별 부부들이 다 있겠죠….”
스무살 무렵 방송사 탤런트시험에 합격하면서 들어선 배우의 길도 벌써 8년이나 걸어왔다. 일일극, 연속극에 단역과 조역으로 출연하며 “28살이나 29살쯤 주연하는 게 당연한 줄 알았던” 시절, “요즘 아이들과 달리 별로 바쁘지 않았던 탓”에 그는 정말 보람찬 학교생활을 했다. “솔직히 학교에서 뭘 배우겠어요. 나란 놈이 어떤 놈인지를 배우는 거지. 아마추어 동기들 앞에서 연기를 할라치면 진짜 망신이었어요. 명색이 탤런트인데 ‘너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그랬을 거라구요. 그런데 그거 안 피하고 일부러 부딪히고 깨지면서 얻은 게 많았어요.” 그렇게 힘들게 한 단계씩 밟아오면서도, 스물넷의 스타덤은 본인이 생각하기엔 너무 일찍 다가온 것이었다. 하여 드라마주연에, CF에, 가수에, 흥행대박 영화까지, 지난 4년간 찾아온 기회와 행운들에 대해 그는 들떠 있지도 애써 겸손을 떨지도 않는다. “하루이틀 할 건가요. 평생 할 일인데…. 그저 나이가 들면 더 좋은 연기가 나오겠죠. 배우란 직업이 그래서 좋은 것 같애. 다른 사람은 놀면 그냥 노는 거지만 배우에겐 1년을 쉬든 2년을 외국에서 살든 그 경험들이 다 연기로 가거든요. 사는 게 배우는 거예요. 사는 게 연기공부라구요.”
올해 나이 스물일곱. 부유하는 듯한 그의 연기가, 그의 삶이, 그의 향기가 한순간에 고급 쿠키 같은 품새로 변할 거라는 기대 따윈 애초부터 버리는 게 좋을 것 같다. 대신 차태현은 언제라도 손바닥에 뿌려주면 입에 넣지 않고는 못 배길 불량식품의 무시무시한 유혹으로 우리 옆을 오랫동안 지킬 것이다. ‘톡톡캔디’, 딱 그만큼만 불건전하게, 딱 그만큼만 발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