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시아 3개국 합작영화 <쓰리> 한국 제작사 봄 대표 오정완
2002-08-21
글 :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사진 : 오계옥
˝모난 영화, 뚝심있는 영화가 좋다˝

영화사 봄은 직원들이나 내놓는 영화의 분위기가, 서울의 강북보다는 강남의 그것에 가깝다. 사무실도 강남구 청담동에 있다. 세련되고 쿨해 보인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쓰리> 제작발표회 겸 해서 열었던 봄 주최의 파티는 살사댄스 파티였다. 대표 오정완(38)씨의 외모나 취향도 마찬가지다. 그러고보니 그와 비슷한 또래의 심재명씨가 대표로 있는 명필름은 강북의 분위기다. 사무실도 대학로에 있다.

이재용, 김지운 등 봄에서 영화를 찍었고 다음 영화도 봄에서 준비중인 두 감독도 사람이나 영화의 스타일이 세련됐다. 오씨까지 포함해 ‘멋쟁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나는 상업영화만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부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해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오씨의 모습도 쿨하다. “명성뿐 아니라 경제적 성취도 따라줘야 다음 세대들이 영화일에 더 야심차게 달려들지 않을까요.”

그러나 좀더 들여다보면 오씨에겐 흔히 ‘386세대’라고 말하는, 그 연배 세대의 냄새가 남아 있다. 10년 전 젊은이들이 충무로로 몰려와 내놓은 기획영화의 효시 <결혼이야기>부터 줄곧 그들과 함께 영화계 개혁에 동참해온 그로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상업성 있다고 보기 힘든 <눈물> 같은 영화를 제작했고, 이번에는 아시아 3국 합작이라는 실험의 명분에 이끌려 <쓰리>를 만들었다. 그래도 <정사>가 성공했고 <반칙왕>이 대박을 터뜨렸음을 감안하면 타율이 꽤 높은 편이다. 얼마 전 봄 직원들끼리 모여 “우리는 상업영화를 한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다졌다고 했다. 봄의 네 번째 영화 <쓰리> 개봉을 앞두고 오씨를 만났다.

-진가신이 <쓰리>라는 프로젝트를 주도했는데, 진가신을 알게 된 계기는.

=4년 전쯤 홍콩의 한 파티장에서 만났다. 피터 챈이라고 해서 내가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았다가, 헤어지고 나서 그가 <첨밀밀>의 진가신 감독임을 알았다. 그뒤 여기저기서 만나며 친구처럼 지냈다. 2년 전 홍콩에서 한국의 PPP 같은 프로모션 행사인 HAF가 열렸을 때, 나도 갔고 논지 니미부트르도 왔다. 논지는 진가신과 <잔다라> 합작건을 논의중이었다. 그 행사에서 진가신이 어플로즈픽처스를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이 영화사의 주된 사업의 하나가 범아시아 프로젝트였다. 그와 관련해 <엑시덴탈 스파이>를 연출했던 테디 챈 감독이 아시아 합작 옴니버스영화 아이템을 제안했다. 이게 진전이 돼 논지와 테디, 김지운 셋으로 영화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테디가 다른 장편영화 때문에 감독을 못하겠다고 했다. 당시까진 이 프로젝트에 프로듀서였던 진가신이 어플로즈픽처스가 제안한 아이템이어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을 때, 내가 당신이 감독하라고 협박하다시피 했고 진가신이 맡았다.

-3국이 투자 배분은 어떤 식으로 했나.

=처음에는 어플로즈픽처스가 전부 파이낸싱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각국의 국내 시장 개척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각자 국내 배급선을 찾았고 투자선도 별도로 구하기로 했다. 김지운 감독의 <메모리즈>는 CJ엔터테인먼트가 7억원 전액을 댔다. 단편을 안 해봐서 그 돈이면 될 걸로 생각했는데 어림도 없었다. 결국 김 감독과 나는 한푼도 못 받은 상태다.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김혜수씨도 차비 정도만 받았다. 홍경표, 정구호 같은 일급 스탭들도 아주 싸게 받았다. 대학영화 찍듯 찍은 거다. 이건 홍콩쪽도 비슷하다고 들었다. 진가신도 단편을 안 해봐서 제작비를 우리하고 비슷하게 잡았다가, 결국 자기와 여명이 개런티를 못 받은 상태라고 했다. 타이는 사정이 좋다. 제작비가 싸게 들고 극장들이 우호적이다. 실제로 흥행도 잘되고 있고. 타이는 이 영화 마케팅 비용을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같은 수준으로 집행했다고 들었다. 그게 3억원 정도다. 우리는 마케팅 비용을 적게 잡았는데도 6억원이 들어간다. 거기에 프린트 비용 합치면 9억원 가까이 된다. 제작비 7억원짜리 영화가 16억원짜리가 됐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이다. 이건 우리 영화판의 큰 문제다. 영화사들이 담합해서 광고크기를 줄이든가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잘 안 되겠지만.

-이익배분은.

=각국의 이익을 각자 챙기는 식이다. 제3국에 팔아 수익이 생기면 각국의 투자비에 비례해서 나누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타이에서 대박 터지고 있어도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홍콩에서는 8월15일 개봉하는데, 흥행 전망이 좋다고 진가신이 말하더라. 잘못하면 우리가 꼴찌할 것 같다. 전국 40만명이 손익분기점인데, 영화의 질과 관계없이 옴니버스영화라서 극장들이 반겨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이 프로젝트에 이익보다, 아시아 영화 합작의 새로운 실험이라는 의미와 명분을 보고 참여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흥행이 됐으면 좋겠다. 돈욕심보다 의미있는 일을 했을 때 손해본다면 다음에 누가 그런 시도를 할까.

-영화에서 아쉬운 게 있다면.

=기자회견 때 왜 좀더 구체적인 컨셉으로 세 에피소드를 묶지 않았냐는 질문이 나오더라. 맞는 말이지만 더 구체적인 컨셉을 욕심냈다면 이 영화는 나오지도 못했을 거다. 김지운, 논지, 진가신, 이 머리 큰 감독들의 영화를 한데 묶는다는 게 생각보다 매우 어려웠다. 한 프로듀서가 담당했다면 몰라도. 지금은 만들어진 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낀다. 진가신한테 그랬다. <쓰리> 속편을 만들자고. 이번에는 컨셉을 일치시켜서. 사실 이 영화는 의미에 더 비중을 뒀다. 그래서 상업적인 가치를 가지고 김 감독을 종용하지 않았다.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의미를 그대로 살린 거다. 처음에 얘기했던 ‘공포’라는 원래 취지를 가장 잘 살려낸 것도 김 감독이다.

-김지운 감독의 다음 장편 <장화, 홍련>을 마술피리와 공동제작하게 된 계기는.

=<쓰리> 하면서 김 감독과 다음 프로젝트를 얘기하던 게 있었다. 그게 대작이어서 준비가 오래 갈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술피리의 오기민 프로듀서가 “<장화홍련전>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고딕호러”를 만들자고 김 감독에게 제안한 게 여기까지 왔다. 메인 프로듀서는 오기민이고 우리는 주로 마케팅을 맡을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공포영화를 안 좋아하고 잘 모른다. 오기민 프로듀서는 <여고괴담>부터 공포물에 전문가이고. 그런데 <메모리즈>를 보면서 김 감독이 독특한 감각을 가진 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서스펜스 감각을 뽑아낸 공포영화는 한국에는 없었던 것 같다.

-가을 개봉하는 <H>(이종혁 감독), 조만간 촬영에 들어갈 (이수연 감독)과 <스캔들-이조시대 남녀상열지사>(이재용 감독)은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는가.

=<H>는 캐스팅을 1년 반 끌다가 늦어진 건데, 상업영화로서 시나리오가 훌륭했다. 한국영화에 스릴러가 많지 않다. 스릴러시장을 두들겨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최근에는 공포영화가 많이 나오면서 공포물과 스릴러가 혼동돼 스릴러의 참신함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그 시장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눈물> 마치고 나서 1년간 휴지기에 가까웠다. 회사 사정도 어려웠고. 그때 내부적으로 정리하는 자리를 가졌다. 우선 큰 시장, 해외를 항상 염두에 두고 가자. 그리고 우리는 상업영화를 하는 사람들이다. 돈 되는 영화를 하자. 잘 만든 상업영화가 뭐냐. 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움이 있다면 그게 상업적 포인트다. 그걸 잘 만드는 거다. 과 <스캔들…>은 그런 생각에서 나왔다. 은 호러라는 장르적 장치가 있으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다중적 코드가 잘 배치돼 있다. 공포판 라고 할까. <스캔들…>은 이전부터 있던 징크스에 도전하는 거다. 내가 충무로 들어왔을 때, 한국영화는 동물, 사극, 스포츠 세개가 망하는 징크스가 있다고 말들 하곤 했다. 이 영화는 사극이다.

-김 감독은 아까 얘기했고, 제작자로서 이재용 감독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장점이 있다면.

=이 감독은 미장센이 좋고 그림으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또 균형감각이 빼어나다. 영화의 이야기와, 자신이 말할 것, 말하고 싶은 것을 분명히 안다. 연설하지 않고 이야기 속에서 풀어낼 줄 안다. 불만이 있다면 주변 사람들에 대해 너무 배려가 많다. 현장에 가면 워낙 조용조용하게 말해서 누가 감독인지 모를 정도다. <정사> 때도 사람들이 내가 감독 같다고 했다. 그는 차분하고 천천히 간다. 성질 급한 나와는 부딪칠 때가 많다. 그게 서로에게 보완이 되는 면도 있고. 김지운이든 이재용이든 둘 다 열려 있다. 제작자나 프로듀서와는 어차피 평행선이라고 생각하는 감독들이 있는데, 둘은 아니다. 프로듀서를 존중해준다. 귀가 열려 있어서, 나처럼 나도 어떤 역할을 한다는 느낌이 들 때 흥이 나는 프로듀서에게는 함께 일하는 게 즐거움을 주는 감독들이다.

-영화사 봄만의 스타일이나 이미지가 있다면.

=그런 거 없다. 나는 돈 되는 영화만 한다. 공포영화 안 좋아하지만 우리 라인업에 많다. 돈이 되고, 잘 만들어지면 한다. 내 취향은 큰 의미가 없다. 물론 있을 거다. 같은 장르라도 어떤 시나리오는 택하고 어떤 시나리오는 버리니까 거기에 반영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거다. 아마 ‘잘 만든 영화’에 대한 집착 같은 게 있을 거다. 솔직하게 말하면 모가 난 영화, 뚝심있는 영화가 좋다. 나는 대박영화를 기획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영화가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실제로 실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대박이 터지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있다. 그건 행운일 뿐이다. 대박을 기획한다는 건 무모한 일이다.

-흥행전망을 아주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와 <집으로…>의 대박을 자신있게 점쳤다.

=내 영화 빼고 남의 건 잘 맞춘다. 그건 직관이다. 아직도 영화판에서는 직관이 중요하다. 직관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흥행을 잘 맞추는 건 남의 영화가 잘되는 데 대한 배타적인 질시 같은 게 덜해서일지 모른다. 나는 그런 교만함이 있다. 나도 다음에 잘 만들지 뭐, 하는. 그 직관도 조금 떨어져서 지금은 셋 중 둘 정도 흥행을 맞춘다. 그게 셋 중 하나가 되면 떠나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영화판에 오래도록 남고 싶고. 감각이 떨어지면 방향을 바꿔서 감각있는 사람을 발굴하고 내 곁에 두는 쪽으로 가야 할 것 같다. 아직까지는 독선적이기도 한데, 앞으로 그런 훈련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세대는 선배들이 도태돼 가는 걸 무수히 봐왔다. 홍콩 같으면 그렇지가 않은데. 우리는 젊은 세대들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보는 풍토가 있다.

-젊을 때 윗세대들 몰아내고서, 이제는 장기집권하려고.

=그렇지. (웃음) 전에 선배들하고 부닥칠 때는 우리 세대와 선배 세대 사이에 접점이 너무 없어서 답답했다. 우리가 그렇게 되지 않을까 불안하기도 하고. 우리 세대가 애매한 세대이지 않은가. 이것저것 만든다고 하다가 어느덧 주류가 돼 있고. 후배들에게 귀기울이고 접점을 넓혀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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