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쓰리>의 김혜수, 새 연기인생의 출발
2002-08-27
글 : 김영희 (한겨레 기자)

옆에서 언제라도 ‘까르르’ 웃음을 터뜨릴 것 같고 도무지 감춰진 모습이 없어 보이는 배우. 좀 고약하게 말하자면 너무 친근해 별로 궁금할 게 없는 배우. 적어도 지금까지 김혜수는 그랬다. 1986년 17살에 데뷔해 지금까지 방송드라마 출연은 셀 수도 없고 영화 출연작만도 종이 한 장 가득 채울 정도인 데도 그는 한결같이 밝은, 당당한, 섹시한 이미지다. “연예인으로선 그래요. 정말 많이 노출되어 살아왔죠. 하지만 ‘연기자’로선 그 누구보다 보여지지 못한 면이 많지 않나요” 지난 24일 시내의 한 극장 앞 카페에서 만난 김혜수는 마치 새로운 연기인생을 출발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그만큼 1~2년 동안 많이 배우고, 깊어진 느낌이었다. “사실 연기경력에 비해 영화라는 매체에 적응하는 시간은 내게 없었던 것 같아요. 텔레비전 보다 영화의 연기가 더 규격화된 것 같다는 비판도 그래서 맞는 말이고요.” 그는 지난주말 개봉한 한국·타이·홍콩의 옴니버스 영화 <쓰리>의 한편인 <메모리즈>(감독 김지운)에 출연했다. 기억을 잃고 낯선 신도시를 헤매는 호러영화의 주인공이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커다란 눈에 물기를 머금은 채 돌아다니다 마지막 장면에선 충격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 김혜수는 사진 속 장면을 제외하곤 단 한번도 웃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영화보다 연기를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는 건 더 적었던 것 같아요. 다만 영화에서 요구하는 내 분위기를 끌어내 그걸 촬영 내내 유지하려고 했어요. 그런 방법이 더 적합했던 영화 같고요.” 화려한 그의 이미지와 김지운 감독의 만남, 그것도 단편영화라는 점에서 주변에선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촬영기간은 정말 “재미있고 진지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처음엔 <쓰리>가 어떤 프로젝트인지도 몰랐어요. 다만 <조용한 가족>의 시나리오를 처음 보고 이런 생각을 하는 김 감독은 어떤 사람일까, 늘 호기심이 있었죠. 개봉 안 하면 어때, 그런 생각이었어요.” 학교 다닐때 단편영화의 스탭을 하면서 느꼈던 열정을 기억해내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그때 코엔 형제의 영화가 보여주는 편집의 매력에 푹 빠지기도 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앞으론 이제까지 전형적 이미지를 다시 반복하는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촬영중인 은 “작품은 새로운 시도인데, 내 역은 한정되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이 고민했고 그 안에서 다른 모습을 찾으려 노력했다고 말한다. 인터뷰 도중 문득 10년전 그가 출연했던 단막극 <누군가를 사랑하려는 이유>가 떠올랐다.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는 드라마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사랑하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떠나보내는 지독히도 쓸쓸한 얼굴이었다. 이미 그때부터 그는 항상 다른 얼굴을 가슴에 품고 있었던 것 아닐까. 이제 새 작품마다 차례로 그의 다른 모습을 꺼내놓을 김혜수를 기대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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