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김현성
2002-08-28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성냥팔이 소녀의 운명,이 손안에 있소이다!˝

김현성의 얼굴을 기억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출연한 영화는 단 두편, 그나마 본 사람도 얼마 없는 <세친구>와 <스물넷>, 그나마 영화 내내 얼굴을 또렷이 비춘 순간도 길지 않았다. 친구 따라 들른 서울예대 어귀에서 연출부에 찍혀 <세친구>에 캐스팅된 행운의 인디로커였으니 서운했을 법도 한데, 김현성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하 <성소>)까지 영화 세편에서 주연을 했는데, 사람들이 전혀 몰라보니까 오히려 재미있어요”. 어느덧 100억원짜리 블록버스터 주연으로서의 풍모를 익힌 걸까. 그러나 안으로만 숨어들 것처럼 심약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나름의 풍상을 겪은 김현성은 짧은 순간 환희나 비웃음에 연연해하지 않을 듯한 고집이 있어 보인다. <성소> 촬영 때문에 갔던 타이에서 사입은 선명한 붉은색 셔츠와 참 오래간만에 머리카락이 자랄 틈을 가져 마음대로 만져봤다는 꼿꼿이 솟아오른 갈색머리. “록공연이 그런 거니까, 강하고 극단적인 캐릭터도 얼마든지 연기할 수 있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이 시종일관 주연배우는 “이제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단단히 못을 박고 만다.

김현성이 <성소>에서 연기한 인물은 자장면 배달부이면서 게임 ‘성소’에 뛰어들어 무기 ‘전설의 고등어’를 손에 들고 파워를 높여가는 ‘주’. 제대 뒤 <스물넷>에 출연하면서 소개를 받아 “검은 롱코트에 청바지, 워커 차림으로 나타난, 내가 좋아하는 에어로스미스의 스티븐 타일러같이 생겨 너무 멋있었던” 장선우 감독을 처음 만났다. 원래 제안받은 역은 전설 속의 뮤지션 가준오였지만, 장선우 감독이 결정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어, ‘주’네.” 그 한마디에 <세친구> 첫 촬영장에서 도망갔다가 감독에게 붙잡혀 영화를 찍으면서도 절대 배우를 꿈꾸지 않았던, 부산영화제에서 본 단편영화들에 혹해 뒤늦게 서울예대에 입학한 김현성이 1년을 부산에서 바치고 말았다.

김현성은 모두가 어렵다고 하는 <성소>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대사도 없이 감독의 단상을 선문답처럼 나열한 시나리오. 하지만 “‘주’가 게임캐릭터처럼 파워업되면 느닷없이 변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자 실마리는 풀리기 시작했다. 굳이 시키는 것은 없으면서도 잘 못하면 혼내주던 장선우 감독도 김현성의 해석에 동의, 아침 인사 뒤 곧바로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촬영이 진행됐다. 그렇다고 김현성이 타고난 해석의 천재는 아니다. 중학교 졸업하고 1년 놀면서 “이런 식으로 살면 되겠나”라는 생각에 시작했던 음악, 서울예대에서 단편영화를 만들며 “이렇게 연기하면 안 되겠구나” 얻었던 깨달음, 군대에서 열심히 읽은 책들, 그간의 공부를 실험하며 깨지기도 많이 했던 <스물넷>의 경험이 김현성 안에 빈틈없이 들어차 있다. 한때는 방구석만 좋아했던 김현성. 그는 이제 혼자 집에 있으면 불안해질 정도로 활동적인 인간이 돼버렸다. 한없이 연장되던 <성소> 촬영 도중 처음엔 쉬는 날 한숨만 쉬다가, 그 다음엔 술만 마시다가, 운전면허와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따고만 부지런한 청년이다. 김현성을 하늘 높이 매달아놓고 스탭들은 밑에서 회의에 열중하던, 힘들고도 재미있었던 촬영이 끝난 뒤, 그는 지금 다른 역을 찾아 휴식중이다. 그 다른 인물이 누가 됐든 좋다. 주연이어도 좋고 조연이어도 좋다. 김현성은 지금 어디든 뛰쳐나가고 싶어 몸이 달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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