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함께 있어도 외로운 이유는? <가위손>
2002-08-28

만약에라고 생각해보자.

만약에 당신 앞에 두개의 상자가 놓여 있다고 치자. 한 상자는 열려 있다. 이 안에는 만원짜리 한장이 들어 있다. 닫혀 있는 다른 상자에는 1억원이 들어 있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두 상자는 국내의 한 컴퓨터 회사에서 새로운 슈퍼 컴퓨터를 테스트하기 위해서 놓여진 것이다. 이 컴퓨터는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미리 예측하는 컴퓨터이다. 이 컴퓨터는 99.9% 정확하다. 당신은 이 두 상자 중 하나를 집든가 아니면 두 상자를 다 집어야 한다. 컴퓨터는 회사의 손실을 막기 위해 당신의 선택을 미리 예측하여 상자의 내용물을 정했다. 컴퓨터는 999명의 선택을 이미 맞혔다. 당신이 1000번째….

위는 뉴콤의 패러독스(역설)이다. 열려 있는 상자를 선택하면 만원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러는 순간 닫혀 있는 상자에는 1억원이 들어 있을 것이다. 닫혀 있는 상자를 선택하면 그 상자는 이미 비어 있고 만원마저 잃게 된다. 두 상자를 모두 선택한다면 한 상자에는 만원이, 또 다른 상자는 비어 있을 것이다. 당신이 이 테스트에서 1억원 이상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은 0.1%이다. 자,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까.

역설은 영화의 근본적인 드라마 구조다. 이러한 생각을 내게 심어준 영화는 팀 버튼의 90년작 <가위손>이다.

만약에라고 생각해보자.

만약에 우리 동네 산꼭대기에 있는 성 안에 늙은 발명가가 인간을 만들다가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다고 하자. 그리고 그 완성되지 않은 인간이 하루는 동네로 내려와 옆집 사람의 딸과 사랑을 한다고 하자. 만약에 말이다.

에드워드는 미완성의 인간이다. 그의 미완성은 가위로 만들어진 손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이 외로움은 그에게 세상을 접하게 하고 사랑을 만나게 한다. 하지만 사랑은 그에게 또다시 외로움을 안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서 느끼는 매력은 시각적인 스타일링과 상상을 초월하는 캐릭터이다. 내가 이 영화에서 느끼는 매력은 감독이 내리는 운명에 대한 역설적인 해석이다. 운명이 정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운명은 만들어지는 것이라 생각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결과가 같다고 해도 느끼는 것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에드워드와 킴의 사랑은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다. 에드워드가 킴을 안을 때 우리는 사랑의 따뜻함을 느끼지만 이별을 예측한다. 그들이 사랑한다면 이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역설적인 운명의 실체다. 에드워드가 짐을 죽이게 된 뒤 말을 잊지 못하는 킴에게 에드워드가 차분히 말한다. Good Bye. 그는 비록 미완성의 인간일지 몰라도 누구보다도 더 인간적인 운명을 받아들인다. 인간이 아닌 물체에는 운명이 없다. 그것은 오직 인간만이 운명을 선택하고 또 운명에 복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답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질문을 ‘수사의문’(rhetorical question)이라 한다. 패러독스는 수사적인 의문이다. 답이 없다는 것보다 답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한 영화가 끝났을 때 여러 가지 의문이 남는다면 그것은 그 영화가 드라마의 근본적인 구조에 충실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에드워드가 킴과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가슴아파하지만 왜 같이 할 수 없는지는 묻지 않는다. 그건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또는 그들이 만들어낸 운명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적 제일 좋아하던 TV프로그램은 <은하철도999>였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우주를 떠도는 철이를 보면 어린 나로서도 안쓰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늘은 철이가 조금이라도 영생에 다가갔으면 하는 생각으로 TV 앞을 떠나지 못했던 것이 기억난다. <가위손>을 처음 극장에서 보았을 때 어린 시절 TV에서 보던 철이 생각이 났다. 에드워드와 철이는 많이 닮았다. 물론 철이에게도 패러독스는 존재한다. 철이가 영원한 삶을 얻으러 가는 길은 너무나 멀기 때문에 철이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이미 영원한 삶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설적일지 몰라도 이러한 인물들에게 나는 끌리고 또 그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모든 관객은 영화의 주인공들과의 교감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에드워드이고 싶고 철이고 싶다.

뉴콤의 역설에서 어떠한 선택을 하던 잘못된 선택이다, 만약에 당신이 얻지 못한 것을 생각한다면….

하지만 당신이 얻을 것만 생각한다면 어떠한 선택도 옳은 선택이다. 적어도 당신은 상자 하나는 거저 얻을 수 있다.

글: 황기석/ 촬영감독·<친구> <와니와 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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