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만년소녀, <친구> 배우 김보경
2001-04-03
글 : 최수임
사진 : 정진환

<친구>를 보고 나서 많은 이들은 물었다. <연극이 끝난 후>를 부른 그 여자배우가 누구냐고. 그룹 ‘레인보우’의 싱어로 80년대식 멋들어진 무대매너를 뽐내고, 동생뻘인 상택에게 짜릿한 첫키스를 선사하며, 마약쟁이 남자 준석의 욕지거리에 탄식 같은 욕 한마디로 화답하던 <친구>의 홍일점 진숙. <씨네21> 근처 작은 지하 커피숍에서 한 시간남짓 가졌던 그녀와의 인터뷰는 웃고 울고 불안해하고 기뻐하는 그녀 덕에 매우 드라마틱한 것이었다. 캐스팅되던 이야기를 하며 신나하다가 영화에는 없는, 진숙이 준석을 면회가는 장면을 재연하며 왈칵 눈물을 맺고, 다시 또 어느새 시작한 학창 시절 친구 얘기에 금세 그리움에 젖어드는….

김보경은 영락없는 배우였고, 매우 섬세한 감수성의 만년 소녀였다. “저는 고등학교 때 이후로 정신적으로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요.” 된장음식과 소주를 좋아하는 스물다섯이면서 여전히 십대적 희로애락을 간직하고 있는 그를 만나고 난 뒤, 그래서 여전히 남은 의문은, 그녀의 매력이 어디까지인가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50번도 안 봤어요!” 김보경이 <친구> 진숙에 캐스팅된 것은 그 자신의 표현대로 오디션을 ‘50번도 채 안 봤을’ 때였다. ‘화이트’ 등 CF에서는 주연을 해봤지만, “성실하게 사는 것이 인생목표”인 그가 “성실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백수”, 단역배우로 지내던 무렵, 100번까지 오디션을 보리라 하던 참이었다. <친구> 오디션에 ‘키 큰 여자’ 배역으로 응모한 그녀를 곽 감독은 “386세대가 좋아하는 촌스러운 얼굴”이라며 단박에 진숙으로 점찍었다. 감독의 선택에 영화사 사람들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그녀는 “할 일이 생겨 좋아” 하며 ‘성실하게’ 진숙의 대사를 신별로 분석해 워드로 쳐갔다. 고향이 부산인 탓에 사투리를 구사하는 능력도 높이 쳐졌고, 성형 수술을 안 한 자연스러운 얼굴도 진숙의 필요조건을 만족시켰지만, 무엇보다 그가 가져간 ‘캐릭터 분석 문건’이 감독의 분석과 일치한 덕에 그녀는 50번도 채 오디션을 안 보고 주연을 따내게 됐다.

“목에 파스 붙일까요, 감독님?” 영화에서 진숙과 그 친구들이 보여주는 패션은 대부분 그녀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한쪽 눈을 완전히 가린 단발머리나 레인보우 단원들이 목에 두른 손수건 모두 그녀가 기억해낸 학교 때 친구의 모습에서 나왔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불량학생이 아니었다고. 부산진여고 시절 이미 극단 활동을 하던 그녀는 선생님들에게 예쁨을 많이 받았고, “공부는 못했”지만 어렵지 않게 서울예대 연극과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예체능계 애들은 수업 끝나면 어디가서 놀아, 하고 문과 애들이 묻곤 했죠. 그럼 저는 집에 가서 놀아, 하고 답했어요. 그치만 집에만 있었던 건 아니에요. 제가 고민이 좀 많았거든요. 부산역 분수대 앞 벤치에 앉아 인생 고민을 하고 암자에도 많이 갔었죠. 한번은 선생님이 수업 듣기 싫은 사람은 나가도 좋다고 해서 운동장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어요. 비가 오기 시작했고, 친구 한명이 와서 우산을 씌워줬죠. 아름다운 장면이에요.” ‘친구’와 ‘동무’를 구분하는 그녀는, 요즘 친구 한명이 덜 친한 친구를 부르는 말인 동무가 되어간다며 안타까워했다. 영화 <친구>는 그에게 썩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던 셈. <친구>의 개봉을 앞둔 그는 요즘 드라마 <학교>의 새로운 주인공인 무용 전공의 예고 2년생 김유리를 연기하고 있다. 단발머리의 진숙과는 또다른, 발랄한 유리를 위해 그는 이날 감쪽같이 긴 머리를 붙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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