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봉준호, “<살인의 추억>은 말하자면 ‘농촌스릴러’라고 할까”
2002-09-13
글 : 김영희 (한겨레 기자)

화성 연쇄살인사건 7번째 피해자 발생’과 ‘서울 올림픽 D-10일’. 이런 기사가 한 지면에 실리던 때가 있었다. 정권이 경찰 대부분을 시위진압 현장에 투입할 때, 같은 대한민국 하늘 아래서 화성주민들은 언제 자신이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절망하고 있었다.

“그런 신문을 보다보니 기분이 묘했다. 이게 부조리 아닌가.”

봉준호 감독은 말했다. 최근 제작발표회를 가진 <살인의 추억>은 우리 기억 속에 몇몇 뉴스 화면으로만 정지된 채 남아있는 화성연쇄살인사건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렇다면 스릴러 하지만 <플란더스의 개>(2000)에서 참을 수 없는 진지함에서도 엉뚱한 웃음을 보여줬던 봉 감독이라면 <양들의 침묵>이나 <세븐> 같은 매끈한 스릴러를 상상하긴 힘들다.

그가 카메라를 갖다댈 사람들은 화성사건에 투입된 형사들이다. 송강호씨가 맡을 토박이 형사 박두만은 사건이 나면 동네 양아치부터 집합시켜 윽박지른 뒤 ‘감’으로 수사하는 인물. 첫 장면부터 사건현장에 경운기를 타고 출동한다. 김상경씨가 맡은 형사 서태윤은 서울에서 자청해서 내려와 과학적 수사가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 믿는 인물이다. 끝이 안보이는 수사에 질려버린 형사들, 잡힐 듯 빠져나가는 범인의 그림자, 무능하다는 질타 속에서 그들은 말그대로 미쳐버릴 것 같은 상황이었을 게다.

봉 감독은 “끔찍하고 잔인했던 사건이 반복되며 밖의 사람들에게 살인은 무감각해진 것 같다. 다시 그 분노와 슬픔을 되살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웃음이 있다면 “아주 사실적으로 찍다 보면 그 상황이 너무 부조리해 웃음이 나오는 것, 바로 그거다”라고 했다. 사건이 안 풀리자 형사들은 점쟁이를 찾아가기도 하고 경찰서 정문을 옮겨보기도 한다. 제대로 현장보존 같은 것도 이뤄지지 않던 80년대말에 실제 있었던 일들이다.

장르 봉 감독은 우스개 반으로 ‘농촌 스릴러’라는 이름을 붙였다. “농촌의 투박함과 도시적이고 세련된 이미지의 스릴러가 한 프레임 안에서 충돌하는 그런 영화가 될 것 같다.”

화성사건을 소재로 한 김광림의 연극 <날 보러 와요>를 바탕으로 했지만, 아직 범인이 잡히지 않은 실제사건을 영화화한다는 결정은 쉽지 않았을 게다. “계속 고민했다. 유족들에게 부끄러운 영화가 되어서는 안 되는데….” 첫 시나리오가 나오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조사과정에서 모은 자료가 워낙 방대해 따로 요약자료집까지 만들었다. 김상경씨는 시나리오와 자료집을 받은 바로 다음날 아침 전화를 걸어와 “이런 범인이 아직 활개를 치고 다니다니, 너무 화가난다. 분하다”며 출연을 자청했다고 한다. 봉 감독은 김씨가 “폭주기관차처럼 수사를 향해 돌진하는” 서태윤의 캐릭터 그대로였다고 말했다.

현재 10% 정도 촬영을 진행한 <살인의 추억>은 내년초께 개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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