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트리플 X>개봉 앞두고 내한한 빈 디젤
2002-09-18
글 : 박은영
할리우드의 폭주기관차

방금 전에 일본에서 날아왔다는 빈 디젤은 여독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밝고 활기찬 얼굴로 나타났다. 허락된 인터뷰 시간은 20분.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느긋하게 커피를 따르는 빈 디젤은 “원하는 건 뭐든 말하라”(Your wish is my command)며 음료를 권하고, 기자의 이름이 영어로 왜 그렇게 표기되는지를 물어왔다. 셔츠 밖으로 터져나올 기세인 근육질 몸매, 다스베이더처럼 신비로운 저음을 지닌 빈 디젤은, 겉모습과 달리, 호기심과 에너지를 주체 못하는 개구장이 소년 같았다.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실베스터 스탤론이 환갑을 바라보는 이즈음, <분노의 질주> <트리플X>의 빈 디젤이 할리우드의 차세대 액션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어려서부터 극단에서 활동한 ‘준비된 배우’ 빈 디젤은 그의 표현에 따르면 ‘오프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 시절을 오래 거쳤다. 직접 제작하고 연출하고 출연한 단편영화 <멀티 페이셜>이 스필버그의 눈에 들어,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출연하면서 할리우드의 영토를 밟았지만, 그때만 해도 ‘액션’배우는 아니었다. SF액션 <에일리언 2020>에서 선보인 ‘안티 히어로’의 이미지가 <분노의 질주>로 <트리플X>로 이어지게 된 것. 무슨 계시라도 있었던 것인지, 열여덟에 이름을 빈 디젤(연료 디젤과 스펠링이 같다)로 바꾼 그는, ‘이름 따라’ 할리우드의 폭주기관차가 됐다.

<트리플X> 포스터를 가리켜 ‘이건 선전 포고다’라고 했다는데, 그 전쟁에서 잘 싸웠다고 생각하나.

→ 이 포스터는 영화를, 캐릭터를 자축하고 있다. 아이러니인 것은, 난 늘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편이다. ‘이 자리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렇지 않더라도, ‘무비스타’가 된다는 건 얼마나 부자연스럽고 비현실적인 일인가. 영화 제목보다 내 이름이 위에 놓이고, 포스터 가득 내 어깨와 삼두박근과 거대한 코가 나와 있는 걸 보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50피트짜리 대형 광고판으로 보면 더하다. (웃음) 그래서 ‘괜찮다’, ‘잘하자’는 의미로 한 얘기다.

당신에게 이 영화의 가장 도전적이고 매력적인 요소는 무엇인가.

→ 롭 코언과 나는 <분노의 질주>에서 함께했고, 호흡이 꽤 잘 맞는다. 우선은 그의 작품이라는 데 끌렸고, 다음은 캐릭터다. 대중이 바라는 영웅의 모습은 수시로 바뀐다. 요즘 미국 십대들은 자동차 절도를 소재로 한 비디오 게임에 열광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기존의 반듯한 영웅이 먹힐 리 없다. 자기 결함을 아는 인물,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꺼리는 인물이 바로 ‘트리플X’다. 영웅 캐릭터가 더 입체화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면에서 트리플X의 아웃사이더적이고 반항아적인 면모가 좋았다

주로 외강내유의 캐릭터를 연기해왔는데, 실제 당신과 얼마나 닮아 있다고 생각하나.

→ 우리 어머니가 그러셨다. 너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하기 때문에 그런 내면을 보호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더 강해지고 딱딱해진 것 같다고. 내가 연기한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 세상은 선하고 약하고 순수한 이들을 위악적으로 살게 만들지 않나. 그런 유약함과 강함이 결부된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것, 그리고 그들 안에서 나를 발견하는 일이 즐겁고 재밌다.

“액션배우들은 ‘연기’(acting)가 아닌 ‘액션’(action)을 한다”는 선입견과 어떻게 싸워나갈 작정인가.

→ 내 필모그래피는 액션영화에 치우치지 않았다. 단편으로 칸에도 갔고, 첫 장편으로 선댄스도 갔다. 최근 액션영화를 많이 한 탓에, 그런 선입견에 시달리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서사극인 <한니발>과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에 출연할 계획인 것도, 그런 이유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날 ‘배우’로 인정한다는 걸 알고, 고맙게 생각한다. 나는 액션을 위한 액션, 스토리를 희생시키는 액션엔 반대다. 관객이 얼마나 똑똑한가. 그들이 몰입할 수 있는 인물이 되려면, 연기는 필수다. 난 도전하는 게 좋다. 다음에 만나면, 나한테 ‘이런 예술영화에 출연하다니, 변신에 대한 강박은 없나요’ 하고 물어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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