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처음부터, 그것도 맨 처음부터. 이 단순한 이야기가 이상해지는 것은 서로 사랑한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홍종두와 한공주가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이 말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누구라도 홍종두라는 인물을 거리에서 만나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공주를 거리에서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두 사람을 만나게 해야 한다. 어떻게? 그러기 위해서 홍종두는 이 집을 찾아가야 할 이유가 필요해진다. 그는 2년6개월 전에 택시운전을 하다가 밤길에 환경미화원을 치어 죽였고, 그래서 감옥에 갔다(그런데 정말 친 사람은 홍종두의 형 홍종일이다. 영화의 절반쯤 지난 93신 홍종두 모친 생일잔치를 하는 호텔 복도에서 동생 종세의 말에 의하면 홍종두는 집안의 가장인 형 대신 이미 별 둘을 달았기 때문에 스스로 대신 간 것이다). 아마도 홍종두는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그 환경미화원의 집에 갈 작정을 한 것 같다(18신 공주의 아파트에서 그 오빠에게 종두는 말한다. “그저께 교도소에서 나왔걸랑요, 그래서 어저께 제가 바로 올려고 그랬는데 주소를 몰라서요”). 말하자면 <오아시스>는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이미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는 운명과 같은 것이 있다. 하지만 홍종두가 그 환경미화원의 자녀들의 집을 왜 찾아갔는지는 끝내 알 수 없다. 그는 자기 운명처럼 그 집에 찾아간다. 운명이라고? 홍종두와 한공주는 오고가다 그냥 만난 사이가 아니다.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그렇다. 그 둘 사이에는 피할 수 없는 절대성이 드리워진다. 이 장면이 운명적인 (인상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 한공주의 오빠 내외는 마치 홍종두가 찾아오기를 기다린 것처럼 그날 이사를 간다. 홍종두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제 시간에 도착한 것이다. 이 아이러니를 받아들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 자신도 알지 못하는 더 큰 질서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건 물론 이 영화가 세상을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동화로 각색하는 그 과정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공주를 구하기 위해 장군은 제 시간에 도착한다. 이미 이 순간 이 영화는 로맨스의 구조를 떠안는 것이다. 또는 타락한 현실을 버텨내야 하는 멜로드라마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그 무언가가 홍종두를 그 시간에 그 장소로 부른다. 신18 이사가는 아파트에서 공주가 보여질 때 먼저 보는 것은 그녀의 거울에 반사하는 빛으로 만들어낸 환상 속의 비둘기이다. 그 비둘기가 방 안을 날아다니다가 홍종두가 이사가는 그 집안으로 들어오자 비둘기는 다시 빛으로 변한다(홍종두의 머리 위를 난 다음에야 비로소 비둘기는 빛으로 돌아간다). 거기에는 대상의 바꿔치기, 좀더 정확하게 공주의 환상의 자리에 정확하게 홍종두가 들어선다. 그것은 일종의 신호이자 계시이다. 이 무시무시한 목적론의 세계. 또는 그들도 알지 못하는 거대한 계획의 실행에 동원된 아무 힘없는 가여운 두 사람. 이 장면은 이중적인데, 홍종두는 공주의 환상을 깨트리고 그 안에 들어서지만 동시에 그것은 그 자리에 홍종두가 도착한 것을 알리는 순간이다.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홍종두는 한공주의 비둘기의 자리를 차지하는 환상의 대리물이다. 또는 공주의 현실 속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나타난 대답이다. 하지만 우리는 공주의 결핍이 무엇인지 (아직은) 알지 못한다. 영화는 ‘그 다음부터’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 온전히 바쳐진다. 여기서 중요한 점. 그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은 홍종두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사실이다. 이 장면은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온몸을 비틀며 고통스럽게 앉아 있는 한공주의 환상이 만들어내는 그 비둘기의 자리에 홍종두가 대신할 만한가, 라는 질문 대신 우리에게 던져진 것은 홍종두의 미래에 한공주라는 뇌성마비 장애자가 들어설 때 그는 정말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누구라도 올 수 있었던 그 자리에 홍종두가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도록 이끈 것은 다름 아닌 이 영화의 순서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한공주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홍종두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 우리는 홍종두에 이끌려 한공주의 시민 아파트에 도착한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불현듯 한공주와 마주친 것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내내 홍종두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제 몸 하나 가눌 만하지 못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보았다. 그런데 여기에 한공주가 들어설 만한 자리가 있는가, 라는 질문과 마주할 때 당신은 이미 그들의 운명을 근심하는 그 자리에 불려가는 것이다. 거기 그 자리에서 가장 괴로운 사람은 당신이다. 왜냐하면 아직 한공주는 자기의 운명을 알지 못한다. 또는 홍종두는 이제부터 벌어질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당신만이 그 장면의 의미를 알아차린다. 무능력한 구경꾼인 당신만이 신18에서 왜 비둘기가 날아가는 그 장면 안으로 홍종두가 들어왔는지를 이해한다. 저 전지전능의 자리, 그러나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는 그 모든 것을 보는 사람은 당신뿐이다.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환상을 당신이 보는 순간 이미 당신은 이 영화의 보이지 않는 등장인물이 된 것이다. 당신이 없다면 한공주의 환상은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이 운명적인 질서를 꼼짝없이 보아야 하는 무력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뿐이다. 그건 홍종두와 한공주를 이해하는 것뿐이다. 당신이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놀라운 일. 이 영화에는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그런데 이 등장인물 중에서 홍종두와 한공주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놀랍게도 오직 무기력한 구경꾼인 당신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무기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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