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위험해 보인다. 빈 디젤의 어깨 뒤로 슬쩍 얼굴을 내밀었을 뿐인데도, <트리플X>의 포스터에 전시된 아시아 아르젠토의 프로필에는 입체 스티커처럼 여러 가지 표정이 떠돈다. 음산하고 퇴폐적인 기운이 감도는 그 얼굴은 터프하면서도 가녀리고, 중성적이면서도 섹스어필하다. 그 느낌이 하도 묘해서, 눈길이 쉽게 거둬지지 않는다. <트리플X>에서 아시아 아르젠토는 그렇듯 관객의 시선을 결박시킨다. 그러니 스파이가 된 양아치 트리플X의 마음을 훔치는 건 일도 아니었을 터.
이제 <트리플X>로 할리우드 신고식을 치른 아시아 아르젠토는 아홉살에 연기를 시작해 서른편 가까운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한 베테랑 배우다. ‘스파게티 호러’의 대표주자인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과 배우 겸 작가 다리아 니콜로디 사이에서 태어난 아시아는 일찍부터 <서스피리아>나 <인페르노> 같은 아버지의 호러영화에 길이 들었다.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해” 배우의 길로 들어섰지만, 배우로서 아버지의 부름을 받은 건, <트라우마>(비디오 출시명 <헤드헌터>)에서 연쇄살인사건에 연루된 식욕부전 소녀를 연기하면서부터다. 협업은 <스탕달 신드롬> <오페라의 유령> 등으로 이어지며, “배우로 기용하기 위해 나를 낳은 것이 아닌가” 의심할 만큼 ‘아버지 영화의 주연 배우’로 총애받기 시작했다.
람베르토 바바, 아벨 페라라와의 작업을 통해서도 일관돼온 ‘호러 퀸’ 또는 ‘다크 레이디’의 이미지는 때로 그를 혐오와 불신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곤 했다. 악령 이야기에 경도됐던 아버지의 존재 때문에 공공연히 ‘악마의 씨’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아시아는 대인공포와 광장공포를 마약과 섹스로 해소하려 했지만, 그럴수록 수렁으로 빠져들 뿐이었다. <스칼렛 디바>라는 제목의 반자전적 포르노그라피를 연출한 것은 그런 아시아에게 ‘살풀이’와도 같은 작업이었다. “일종의 자기 해부다. 감독이 되고 싶었던 한 여배우의 역정이랄까.” 그리고는 지난해에 낳은 딸을 통해 열정과 자신감을 회복했고 <트리플 X>에 합류했다. “모든 걸 했던, 그러나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는 말에 담긴 진심을, 조만간 그가 저지를 프로젝트들에서 읽어낼 수 있으리라.
아버지사람들은 우리 가족을 무슨 괴물집단 내지는 ‘아담스 패밀리’라고 믿고 싶어하는 것 같다. 우린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아버지가 나를 위해 만든 캐릭터가 괴이하다고 한들, 어쩌란 말인가. 나는 아버지의 열렬한 팬이고,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게 좋다. 솔직히 아버지가 영화 속에서 왜 그렇게 날 강간하려 드는지 알 수 없다. 그렇게 치면 엄마가 더 안됐다. 아버지는 영화 속에서 매번 엄마를 죽였으니까. 아버지 말씀이, 살해당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쪽은 여성이라고 하더라. 비명도 더 잘 지르고, 몸부림도 더 잘 친다고. 고통을 더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탈리아모르긴 몰라도, 지금 이탈리아 영화계는 세계 최악을 달리고 있다. 나는 프랑스인이 되고 싶고, 프랑스에서 살고 싶다. 가스파 노에(<되돌릴 수 없는> 등 논란을 일으키는 문제작을 만드는 감독) 같은 사람이 감옥에 가지 않고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그런 나라에서 살고 싶다. 나는 이탈리아가 싫다. 심장이 살아 뛰어야 하는 가슴속에 냄새 나는 양파를 구겨넣은 채로 배우로서의 내 삶을 마감하고 싶진 않다.
포르노그라피네오리얼리즘 이후 이탈리아 영화사에서 전통을 거스른 영화인은 내 아버지 다리오 아르젠토와 세르지오 레오네, 둘뿐이었다. 내 스스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나서, 그들이 지나간 길, 호러와 웨스턴을 빼고 무엇이 남았는지를 생각해보니, 포르노가 남더라. 나는 ‘반역의 시네마’로서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의미로 포르노를 택했다. 포르노는 실재한다. 섹스는 실재한다. 나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포르노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