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상우는 은수를 왜 보냈을까, <봄날은 간다>
2002-11-06

얼마 전 씨네21 부록으로 나온 <봄날은 간다>의 시나리오를 읽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영화를 봤다. 이 영화가 개봉될 당시에도 시나리오를 읽은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비디오와 함께 시나리오를 읽으니 색다른 느낌이다. “아! 이 장면들은 생략했구나.”시나리오에는 아버지가 많이 등장하는 데 영화에는 많이 생략되었다. 할머니, 아버지, 상우로 이어지는 대물림이 영화를 찍으면서 할머니와 상우로 압축되었고 시나리오와 영화를 합쳐서 보니 은수의 사랑이 눈에 보인다. “이 장면 생각난다. 다시 보아도 가슴을 아리게 하는….” 영화가 끝나는 시점에서 은수가 상우를 찾아온다. 화사한 벚꽃을 배경으로 그들의 만남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런데 상우는 왜 은수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일까 은수가 “우리 같이 있을까” 하는 말에“그래”라는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몇번을 뒤돌아보는 은수에게 오라는 손짓만 하면 되는데 상우는 잘 가라는 손짓을 보낸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다. 보리밭 한가운데 서서 소리를 따며 미소짓는 상우의 모습.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포함한 영상적 표현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왜 이들이 결합하지 못했지” 일반적으로 영화 속에서는 특별한 사랑을 한다. 주인공들의 사랑 앞에는 많은 장애물들로 가로막혀 있고 그 장애물들을 극복하면서 그들은 사랑을 이룬다. 이 영화에서는 장애물이 그렇게 높지 않다. 결혼한 경험이 있는 은수, 경제적으로 약간 취약한 상수 그리고 할머니와 아버지를 모셔야 하는 부담 그것마저도 재결합 시점에서는 할머니가 돌아가심으로 해서 상당 부분 덜어진다. 이 정도 장벽 때문에 결합을 못한다는 것이 영화에서는 일반적이지 않다. 그런데도 그들은 결합을 못한다. 어찌 생각하면 심심하고 싱거울 것 같은데 한참을 보다보면 가슴이 아파진다. 이런 점이 허진호 감독의 매력이다.

내가 이 영화를 특별히 좋아하게 된 이유는 ‘봄날'에 대한 토론 때문이다. 이 영화가 개봉된 당시에 시나리오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의견을 주고받았다. 나는 상우와 은수가 겪었던 사랑의 기억이 ‘인생에 있어 봄날’임을 동감했다.

하지만 나의 관심은 ‘봄날’ 이후의 그들의 삶이었다. 모인 사람들은 ‘아름다운 봄날’을 본 것에 대한 감상과 ‘아름다운 봄날’을 어떻게 창조할지 아름다운 소재에 대한 관심으로 이야기가 분분했다. 직업의 신선함. 소리를 채취하는 남자와 소리를 소비하는 여자의 만남. 아주 잘 맞는 관계이거나 한 사람은 계속 희생만 하는 일방적인 관계. 독특한 소재와 아이템은 많은 방향성을 갖고 모인 사람들을 자극했다. 하지만 나는 토론중에도 한가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상우가 은수와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상우의 할머니가 딴 살림을 차린 할아버지의 기억을 가지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상우의 삶은 겉으로 보면 변한 것이 없다. 은수가 떠났어도 은수에게 돈을 사기당했거나 은수 때문에 누가 죽거나 하는 경제적 혹은 육체적 상황이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 은수와 함께 소리를 채집하던 상우와 마지막 장면인 보리밭 한가운데 혼자 서서 소리를 채집하는 상우는 다른 사람이다. 그뒤 상우의 삶이 어떨지에 대한 대답은 “상우는 은수를 왜 보냈을까”이다. 이 영화의 초점은 “사랑이 어떻게 변해”가 아니라 20대 한번쯤 깨질 수 있는 사랑의 통과의례에 초점을 맞춘 성장영화이다. 상수와 은수의 헤어짐은 통과의례의 상징으로 받아들일 때 풀린다. 이후 그들의 삶은 20대 사랑의 통과의례를 거쳐 사랑의 실체를 경험하고 일과 사랑 그리고 현실의 문제와 부딪치며 다양한 삶을 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 유광/ 계간 <시나리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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