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본 얼굴인데,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것처럼 친근한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계성용도 그렇다. 일주일 간격으로 극장에 걸리는 두편의 영화 <밀애>와 <하얀방>에서 만나는 그의 얼굴, 목소리, 연기는 낯설지가 않다. 단순히 튀지 않는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적어도 극이 진행되는 동안은 캐릭터로 살아내는 듯 자연스러운 연기 때문이다. 아내와의 신의를 저버린 ‘실수’를 만회하고, 어떻게든 가정을 지켜보려 안간힘을 쓰는 <밀애>의 젊은 가장, 자신의 출세가도에 거치적거리는 장애물은 눈 뜨고 못 보는 <하얀방>의 비뚤어진 야심가는 모두 계성용을 통해 생명을, 그리고 자연스러움을 얻었다. “잘한다는 칭찬까지는 안 바라고요. 저 배우 누구지, 누굴까, 궁금해 하신다면, 그걸로 족해요.” 그것이 그의 바람이라면, 그는 ‘소원 성취’한 셈이다. 그것도 너/끈/하/게!
계성용은 늦깎이 배우다. 스물이 훌쩍 넘어서도, 연기를 하고 싶다거나 연기를 해야겠다거나 하는 생각이 그에게 없었다. 대학 때 그는 건축을 전공했고, 나름대로 그 공부를 즐겼다. 어느 날 밤 TV에서 본 현대무용 공연이 새삼스런 충격으로 다가오기 전까지. “몸으로 표현한다는 게 저런 거구나. 사람의 몸이 표현의 도구가 될 수도 있는 거구나. 재밌겠다, 나도 해보고 싶다, 그런 충동이 강하게 들었어요.” 뒤늦게 연기로 선회한 계성용의 전략은 ‘정공법’이었다. 드라마와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하기도 하고, 연기 기법에 관한 책을 탐독하면서 연기의 ABC를 깨우쳤고, 서울예대 영화과에 진학해 본격적인 연기 수업을 받았다. “제가 잘생긴 외모는 아니잖아요. 그랬으면 프로필 사진을 찍어 돌렸겠죠. 대신에 전 졸업작품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돌렸어요. 그 효과가 1년 넘게 나타나더라구요” 그 졸업작품 <구타 유발자…잠들다>가 독립단편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주목을 받으면서, 충무로의 호출이 이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피도 눈물도 없이> <하얀방> <밀애>. 아직 필모그래피가 짧은 계성용의 꿈은 특이하게도 “원로 배우가 되는 것”이다. 젊어서 잠깐, 바짝 활동하다 단명하는 배우는 되지 않겠다는 것이다. 욕심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뜨문뜨문 좋은 작품과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 오랫동안 그럴 수 있길 바라는 것이다. “연기의 목표는 배역의 목표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말이 있거든요. 목표가 확실하고 변화가 있는 역할을 만나고 싶어요. 예를 들면 독립 운동가나 혁명가나 데모 주동자, 그런 캐릭터들.” 남들보다 늦게, 혼자 힘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섰기 때문일까. 계성용은 자신의 오늘과 내일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신인답지 않은, 여유와 강단을 보인다. “인터뷰에선 미팅이나 소개팅처럼 나를 포장하고 검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안 그러고 싶은데… 기분이 이상해요.” 너무 솔직해서 귀엽기까지 한, 이 인터뷰 후기만 제외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