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따뜻한 나라에서 온 구원의 여인, <파이란>의 장백지
2001-04-17
글 : 최수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장난감 같은 경비행기가 여기저기에 흩트러져 있는 시화호 벌 한자락. 아침바람을 맞으며 맨얼굴의 장백지가 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함께 온 세명의 친구들. 차에서 내리자마자 기념촬영을 하는 이들은 꼭 쌈짓돈 모아 오늘 막 한국관광을 온 동네친구들 같다. 조그만 자동카메라를 든 사진사가 장백지다. 언덕배기에 올라 일행이 든 곳은 식당 뒤켠의 민박시설. 알고보니 매니저, 코디, 헤어디자이너인 세 친구들은 허름한 방 하나를 차지하고는 덜썩 맨발의 장백지를 거울 앞에 앉힌다. 그리고 스물한살 말괄량이를 금세 매만져 단장한다. “파이란, 너무 고생해요.” 얇고 고운 그녀의 입이 조잘조잘거리는 사이 입술이 칠해지고 머리가 올라가고… 빨간 플라스틱 쓰레받기에는 톡톡 담뱃재가 떨어진다. 파이란, 그녀의 슬픔을 연기했다고는 믿기지 않는 통통 튀는 웃음소리와 허스키한 수다가 장백지에게서 나와 좁은 방안을 가득 채운다. “파이란을 보세요. 보시고나서 또 보세요. 요즘 세상, 모든 것이 넘쳐납니다. 돈도 남자친구도 건강도… 파이란은 아무것도 없어도 희망이 있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거예요. 그걸 한번 보세요.”

파이란 이야기를 하는 장백지는 가벼우면서도 깊다. 2년 전 주성치의 <희극지왕>에서 클럽 댄서 역을 맡으며 데뷔해 같은해 <성원>에서는 깜찍하고도 성숙한 간호사로, 그리고 지난해 <십이야>에서는 다사다난한 연애를 겪는 지니로 분한 장백지. 한국에 와 나이 많은 깡패와 위장결혼을 하고 힘들게 일하는 중국 광둥성의 처녀 파이란은 그녀에게 여러모로 낯선 캐릭터다. 홍콩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학교를 다니고 열아홉살에 첫 영화로 인기를 얻은 장백지는 “그런 고생 안 하고” 곱게 자랐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파이란을 연기하기 위해 이국땅에 오래 머물며 “하하하” 웃던 습관도 숨죽이고 워낙에 빠른 말씨도 느릿하게 바꾸는 것은 몸에 맞지 않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겨울 촬영 내내 한국은 그녀에게 너무 추웠고, 장백지의 감기는 스탭들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촬영이 끝나고 숙소에 돌아오면 장백지는 엄마에게 전화해 “외롭다”고 투정하기를 밥먹듯 했다.

화이트데이, <파이란>의 모든 촬영을 마치고 포스터 촬영만 남겨두고 있는 장백지는 그날 밤, 아니면 다음날 엄마와 남자친구가 있는 홍콩으로 돌아간다며 조금 들떠 있었다. “아, 그렇게는 못살아요. 저는 원래 굉장히 활발한 성격이거든요. 제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야만 살 수 있어요.”, “다시는 추운 곳에서 영화 안 찍을 것”이라고 장난스럽게 몸서리치며,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추운 벌판의 카메라 앞에 몸을 옮겼다.

가족 | 전 엄마랑 사이가 굉장히 좋아요. 연말연초를 홍콩에서 보내고 1월에 다시 한국에 올 때는 엄마랑 함께 왔었죠. 원래 가족이랑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겁도 많고 추운 것도 못 참죠.

오빠(최민식) | 스탭들이 ‘오빠’라 부르라 해서 계속 그렇게 불렀어요. 오빠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잘 챙겨줘요. 하지만 같이 있는 장면이 거의 없어서 함께 오래 있지는 못했어요.

한국에서 홍콩으로 | 인삼하고 된장하고 김을 가져가요. 홍콩 가서는 여명하고 영화를 찍고요 또 라스베이거스에 가서는 정이건하고, 그 다음엔 일본에 가서 곽부성하고 일을 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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