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소년을 냉동시키고 싶어한다. 열다섯살이 되고 열여섯살이 되어도, 홀마크 카드에 그려진 복숭아빛 뺨의 귀여운 꼬마 마법사로 머무르도록. 어른들이 소년의 굵어진 이목구비에 소스라치고, 한 옥타브 낮아진 음색에 펄쩍 뛰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러나 애초에 대니얼 래드클리프(13)에게 호그와트 입학 허가가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예쁘장한 얼굴이 아니었다. 사실 해리 포터 오디션 장만큼 미소년이 흔했던 장소가 지구상에 또 있었겠는가.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가 끝없이 끌어안고 싸워야 할 대상이 절대반지라면 해리 포터에게는 흉터가 있다. 해리의 번개모양 흉터는 아들 대신 죽어간 엄마의 축복인 동시에, 원수 볼드모트와 해리의 영혼이 하나였던 찰나의 흔적이고, 명성의 표지이며 저주의 낙인이다. 그런데 흉터는 언제나 소년의 앞머리에 가려져 있다. 누구도 정체를 알지 못하는 비범함은 평범 속에 은폐돼 있다. 평소의 해리는 시험을 지겨워하고 얄미운 상대가 나자빠지면 좋아라 웃어대는 철없는 틴에이저지만, 특별한 ‘때’가 오면 끝까지 피를 흘리며 가야 할 사람은 론도 헤르미온느도 아닌 자기라는 사실을 묵묵히 이해한다. 2편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의 클라이맥스에서 해리는 바실리스크의 독니에 물려 절명이 다가오자 회한의 표정도 없이 “그냥 내가 좀 느려서 그런 거야”라고 오히려 불사조를 달랜다. 아이는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해리는 때없이 찾아드는 흉터의 통증을 누구에게도 호소하지 못한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걱정시키기 싫으니까, 아무도 치유해줄 수 없음을 아니까.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문제를 생각하는 아이는 조숙하다. 그리고 남에게 말할 수 있는 문제에는 대범하다.
대니얼 래드클리프를 해리 포터의 분신으로 만드는 자질은, 천진한 품성에 감싸인 어른을 능가하는 신중함과 타인에 대한 꾸밈없는 배려다. 다만 대니얼의 조숙함은 불행과 폭력에 맞서 선한 본성을 지킨 해리의 경우와 달리 부모의 사려깊은 사랑 속에서 곧게 자란 아이의 덕성에 가깝다. 리브스덴 촬영현장에서 만난 <해리 포터> 제작 스탭들은 제작자 데이비드 헤이만부터 하얀 부엉이 기즈모(헤드윅)에 이르기까지 예외없이 대니얼에게 반한 상태였다. 세트에 머무르는 하루 9시간 동안 이 조그마한 스타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있었다. 할로윈날 가짜 피를 뒤집어쓰고 쓰러지는 척해 스탭들을 기절시킨 장난꾸러기, 장기 촬영으로 모두가 기진한 날에는 대연회장 테이블 위에서 춤을 춘 분위기 메이커,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아역스타임에도 10파운드 남짓한 플레이 스테이션 게임 선물에 하루종일 붕붕 떠다니는 이상한 아이. 게다가 열세살짜리 주인공은 촬영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의 행복을 책임지려는 애처로운 습관마저 어느새 키우고 있었다. “유난히 잘 웃는 루퍼트(론)가 어느 날 촬영 중 웃음을 멈추지 못해 주의를 들었어요. 그러자 댄이 손을 들더니 ‘제가 루퍼트를 웃겨서 그래요, 죄송해요’라고 사과를 하더군요. 늘 그런 식이에요.”
해리 포터는 이제 아서 왕, 로빈 후드, 셜록 홈스, 제임스 본드를 잇는 영국 출신 히어로다. 덩달아 런던 토박이 대니얼은 온 세상이 알아보는 명사가 됐다. 간혹 그를 할리 조엘 오스먼트라고 부르며 다가오는 정신산만한 팬들도 있긴 하지만. 겨우 생애 두 번째 영화에서 특급배우들을 서포터로 거느린 세계 최대 프로덕션의 타이틀 롤을 맡은 대니얼은, 말하자면 아이스크림의 초콜릿 소스를 끼얹은 부분부터 먹어치운 셈이다. 하지만 남들이 매컬리 컬킨의 비운을 들먹이며 수선을 피우는 그의 미래에 대해, 소년은 누구보다 냉정하다. 배우를 계속 할 것인지조차 정하지 않았다는 열세살다운 현실적인 답이 전부다. 매컬리 컬킨에 대해서도 정중히 덧붙인다. “요즘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연극을 하고 있는데 무척 훌륭하다고 들었어요.”
“<해리 포터>를 읽으면서 자꾸 내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돼요. 어디서 해리가 끝나고 내가 시작되는지 영화를 다 찍고 나면 심리상담을 받아봐야 할지도 몰라요.” (웃음) 물론, 우리는 안다. 스스로 그렇게 말하는 소년의 정신건강은 걱정할 필요없다는 걸. 훌륭한 배우가 되건 못 되건 대니얼은 분명 근사한 젊은이로 자랄 것이다. 딱히 불평할 건 아니다. 머글들이 살아가는 이 지상에서, 아름답고 현명한 청년만큼 눈부신 신의 마법은 없을 테니까.
대니엘 래드클리프
* 데뷔: <BBC1> 드라마에서 데이비드 카퍼필드 아역. 매기 스미스(해리를 그린핀도르 퀴디치팀 수색꾼으로 발탁한 바로 그 교수!)가 추천했다.
* 갖고 싶은 마법의 물건: 공짜로 영화랑 콘서트를 볼 수 있는 투명망토
* 좋아하는 축구 팀: 프리미어 리그의 풀햄 FC
* 좋아하는 음악: 클래시, 언더톤즈, 섹스피스톨즈 등 펑크록 밴드.
* 원하는 크리스마스 선물: <로얄 테넌바움> DVD
* 최고로 꼽는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