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 적잖은 영화인들이 욕심냈지만, 시대는 감히 이 사건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 어렵게 했었다. 31명의 부대원 가운데 단 한명의 생존자도 남지 않은 특수부대. 인천에서 남서쪽 20㎞ 떨어진 무인도에서의 3년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존재했지만, 역사 속에선 지워졌던 공간. 한국현대사의 아픈 기억 ‘실미도’가 2003년 영화를 통해 베일을 벗는다.
2002년의 끝에 서서야 강우석 감독은 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지난해 3월 미국 메이저 콜럼비아 트라이스타의 투자계획을 발표한 뒤 9개월 넘게 촬영준비를 하며 지켜온 침묵이었다.
“어렸을 때 대방동 근처에 살아서 71년 8월 사건이 어렴풋이 기억이 나요. 그때는 진짜 무장공비가 온 줄 알았어요. 밤에 나가질 못하게 했으니까. 충무로에서 실미도 영화화 계획이 떠돌때도 막연하게 ‘저건 내 건데, 내가 하면 잘할 것 같은데’라 생각했었어요. 그때 콜럼비아가 투자하고 한맥이 제작을 맡으며 내게 감독제의가 들어온 거지.”
현재 <실미도>의 시나리오는 13고까지 나온 상태. 알려졌던 대로 설경구씨가 부대원으로 캐스팅 된 이외에 강 감독은 또 하나의 주요인물로 정진영씨의 캐스팅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완벽하게 돼 있어요. 문제는 여자주인공을 등장시키려고 하니까 자꾸 이야기가 가다가 서는 느낌이라서…. 폐쇄된 실미도 공간에서 3년이란 시간으로 집중할 생각이니까, 최종에는 여자는 어머니 정도 나오게 될 것 같아요. 아마 <공공의 적>보다 여자가 더 안나오지 않을까.”
좋든 싫든 <실미도>는 “한국사와 꽉 물린 영화”가 될 수밖에 없다. 프롤로그는 1968년 김신조 부대로부터 시작한다. 극중 설경구씨가 실미도 부대원으로 가게 되는 과정과 김신조 재판이 엇갈리게 된다. “김신조가 기자회견에서 ‘박정희 목 따러 왔수다’라 말한게 생방송으로 나왔죠. 그래 그럼 우리도 김일성 목을 따야지. 그렇게 출발한 실미도 부대는 모든 기준이 김신조 부대였어요. 31명 인원도 똑같고 달리기도 그들보다 빠르고 총쏘기도 그들보다 잘하고….” 영화를 준비하며 만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부대창설뒤 1년동안은 대우가 좋았다고 한다. “실제 평양으로 가려고 했어요. 그때 7.4 남북공동선언이 나오며 작전이 취소되고, 훈련강도는 약해졌는데 공급도 끊기고 뭔가 나른해진 분위기가 된 거지. 그렇게 시간이 가다가 상부에선 부대‘해체’ 명령이 내려온 거에요.” 해체란 바로 전원사살을 의미했다. <실미도>엔 선·악이 없다. 마지막 순간 ‘해체’명령을 받은 교관은 거꾸로 총을 겨눈다. 부대원들의 버스 자폭으로 드라마는 끝나지만, 시대상황을 그릴 에필로그가 비추는 ‘관’(官)이야말로 강감독이 보기엔 “진짜 악”이다.
시작과 결말이 알려진 실화에서 이야기의 강도는 ‘드라마’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지옥훈련한다고 밧줄 타고 곤봉 맞고 그런 식은 아니에요. 바닷속에 들어가 1분 이내에 한 놈이라도 떠오르면 모두 죽는다 하고 계속 기관총을 갈겨댄다면 반드시 그 안에서 떠오르려는 놈 발목을 잡는 놈도 있을 거란 말이지.” 매 장면을 ‘관객의 반응’을 떠올리며 찍는다는 강감독의 스타일이 <실미도>라고 예외일 순 없다.
제작진이 무엇보다 고민하는 건 실미도 재현. 교관들 가운데 생존자(그것도 당시 휴가자를 포함해 5명밖에 없다)들로부터 구한 빛바랜 사진이 출발점이다. 이들 사진 가운데는 실제 부대원들의 사진도 있었다. 진짜 해골로 만들어진 부대 마크 옆에 서 있는 이들은 웃고 있었다. “생존자들은 모두 부대원들이 착한 사람들이었다고 해요.” 섬에 있는 부대치곤 특이하게 곳곳에 서 있는 망루는 부대원 감시용이다. “실제 실미도에 가봤더니 ‘무슨 일이 있어도 모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화성 앞바다에 있는 입하도라는 데가 실미도보다 규모는 크면서 비슷한 느낌인데. 물이 들어오면 고립되고 빠지면 백사장이 훈련장처럼 펼쳐지거든. 근데 산림청에서 보호지역이라고 안된다 했어요. 당장 입하도를 포함해 새해 첫날부터 헌팅에 나설 예정이에요.”지자체 협조를 얻는다 해도 예상되는 미술비는 15~20억원 규모, 5천~1만평 세트 짓는데만 2달은 족히 걸릴 예정이다.
<실미도>의 촬영시작은 3월1일 또는 4월1일이 될 예정이다. “외국인들은 <더 록>처럼 재미있는 상업영화로 볼지 몰라도, 이곳을 사는 사람들에겐 다른 여운을 줄 것”이라며 “부대원들이 아무리 범죄자라 하더라도 그들 생명과 인권 하나하나는 중요하다는 느낌정도”라 말했지만, 2003년 관객들은 가슴을 짓누르는 한국의 현대사를 대면하게 될 듯 했다. 몇해째 ‘한국영화계 파워 1인다’로 불려온 강우석 감독이지만, 그의 어깨도 무거워보였다.
실미도 사건은
1971년 8월23일 낮 신원을 알 수 없는 23명의 특수부대원들이 인천 송도에서 버스를 탈취해 서울 진입을 시도했다. 수류탄과 카빈총, 권총 등으로 무장한 이들은 총을 난사하며 오다가 서울 대방동에서 긴급출동한 군·경과의 교전끝에 버스 안에서 수류탄으로 자폭했다. 이 가운데 살아남은 4명은 군사재판을 거쳐 총살됐다. 이들의 난동은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보도됐고 오랫동안 ‘실미도 사건’의 진실은 우리 현대사의 오점으로 숨겨져왔다. 실미도 특수부대는 1968년 김신조 일행의 청와대 습격에 자극받아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대북첩보·타격부대로 창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과자 등 사회적응이 어려운 민간인으로 꾸려진 실미도 부대는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3년여 동안 가혹한 훈련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