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8명의 여인들>의 배우 뤼디빈 사니에르
2003-01-08
글 : 심지현 (객원기자)
프랑스에서 온 연기의 요정

성탄절 아침, 늦잠에서 깨어나 눈을 비비던 막내딸은 아버지가 살해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그래서 슬퍼했냐고 재기발랄하고 다분히 엽기적인 상상력을 가진 그녀는 슬픔은 잠시 접어두고 범인 잡기에 돌입한다. 막내 카트린의 용의자 리스트에 오른 엄마, 외할머니, 고모, 가정부, 이모, 언니, 하녀 중 범인은 도대체 누굴까. 애거사 크리스티식 음모를 고전적 범죄스릴러에 결합시킨 뮤지컬코미디 에서 탐정 소녀의 역할을 맡은 뤼디빈 사니에르(25)는 카트린 드뇌브, 이자벨 위페르, 에마뉘엘 베아르, 파니 아르당 등 이름만 들어도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대배우 사이에서 나이답지 않은 능청스런 연기를 선보인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오종 감독과 나란히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언니 역의 비르지니 르두아양이 잔뜩 피곤한 얼굴을 하고 카메라를 대할 때, 생글생글한 웃음과 발랄한 포즈로 사진기자들의 흥을 북돋워 ‘형보다 나은 아우’라는 칭찬을 담뿍 받기도. 양띠인 그녀의 해인 만큼 올해 2003년도 바쁜 스케줄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이미 촬영을 마친 오종 감독의 <수영장>이 자국에서 2월 개봉예정에 있으며, 지난해 9월부터 촬영에 들어간 P.J. 호건 감독의 미국영화 <피터팬>에서 팅커벨 역을 맡아 할리우드 입성과제도 단박에 해치웠다. 또한 클로드 밀러 감독의 <귀여운 릴리>에도 줄리 드파르디외 등과 함께 출연할 계획이다. 사리에르는 열살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으며, 영화뿐 아니라 연극과 음성 더빙작업에도 참여해왔는데, 특히 우리에게 잘 알려진 뤽 베송 감독의 <레옹>에서 꼬마소녀 마틸다의 목소리와 최근엔 월트 디즈니 만화영화 <방학 만세!>에서 ‘스피넬리’ 역을 연기한 바 있다.

오종 감독과는 묘한 인연의 고리가 맺어져 있다. 99년 기용 브레오 감독의 단편영화 <아미노산>으로 최고 여자 아역배우상인 ‘요정상’을 수상한 그녀에게 오종 감독이 직접 전화를 걸어 영화의 평과 연기 칭찬을 한 것. 그 이듬해 오종 감독과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워터 드롭스 온 버닝 락>을 찍으면서 꾸준한 인연이 시작된다. “오종 감독은 뭐랄까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각광받는 감독이긴 하지만, 배우들에겐 그렇게 편한 존재일 수 없어요. 영화의 홍보를 위해 아시아를 비롯한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감독님을 친오빠처럼 생각하게 됐어요.”그녀는 <8명의 여인들>로 최우수 여자연기상인 ‘소파르 트로피’를 수상한 데 이어, 2002년 12월7일 로마에서 개최된 15회 유럽영화상 수상식에서 유럽 최우수 여배우부문 수상 후보에 올랐다.

15년 연기경력 동안 엮어온 필모그래피가 무려 25편에 달하는 그녀는, 7살이 되던 해 세브르 연극학교에 입학, 8년간의 수업을 마치고, 94년 베르사유 극예술학교(콘세르바트와르)에 입학하여 고전극과 현대극 부문에서 각각 1위상을 수료한 바 있는 연기 신동이기도 하다. 첫 한국 방문지였던 지난해 부산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이 쇠고기 전골이라고 밝힌 그녀가 제안하는 감상법. “소파에 앉아 담요를 뒤집어쓰고, 팝콘을 즐기며 가족들과 편안한 기분으로 보세요!”

사진 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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