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갱스 오브 뉴욕> 뉴욕시사기
2003-02-04
글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믿거나 말거나. 2002년 12월 뉴욕에서 벌어진 이상한 이야기. 며칠 전 내린 함박눈에, 눈부시게 반짝이는 장식들로 도시 전체가 성탄절 트리 같은 뉴욕. 갑자기 그 화려한 지상이 싫어져 지린내가 난동하는 어두운 지하철역으로 터벅터벅 내려갔다. 마치 스파이더 맨 그물처럼 사방으로 뻗어 있는 노선도를 보자니 머리가 아파왔다. 그냥 무조건 1달러50센트짜리 메트로카드를 사서 E선의 다운타운행을 타고 종착역에서 내렸다. 역을 빠져나오자 순간, 매캐한 공기가 엄습해온다. 역이름을 보자. ‘World Trade Center.’ 더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름을 보는 건 마치 묘비명을 읽는 것과도 같다. 주변이 철창으로 에워싸인 이곳은 1년 전만 해도 110층짜리 쌍둥이빌딩이 서 있었던 곳이다. 위풍당당한 모습은 한순간에 사라져버리고 이제 이 공간은 마치 묘비없는 공동묘지 같다.

갑자기 한 소년이 내 손을 잡아끈다. 그의 손을 잡고 달려간다.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는다. 얼마 안 가 로어맨해튼의 리틀이탈리아가 보인다. 비싼 가격의 고급 이탈리아음식점들이 촘촘히 들어선 이곳, 모트가와 멀베리가 사이 올드 세인트 패트릭 성당 주변에 이르자 마티라는 이탈리아계 소년은 자신이 이곳에서 나고 자랐었노라고 한다. 그리고 흥미진진한 얼굴로 이곳이 160년 전에는 낡은 이발소와 작은 광장 그리고 허름한 술집들로 채워졌던 곳이라고, 도끼와 칼이 삶의 도구였던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공간인 ‘파이브 포인트’였다고 말한다. 물론 그것은 110층짜리 건물의 붕괴보다는 훨씬 상상하기 수월한 것이었다.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것은 소년이 아버지로부터, 그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였다. “와이 낫.” 순간, 시계는 1844년으로 돌아가버렸고 내 눈앞에는 출정준비를 하는 아버지를 두려운 눈망울로 쳐다보고 있는 꼬마아이가 서 있었다.디카프리오가 맞으면서 연기를 배운다고?25년을 기다린 프로젝트, 2년6개월에 걸친 제작기간, 1억300만달러가 넘는 제작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카메론 디아즈, 대니얼 데이 루이스, 그리고 마틴 스코시즈. <갱스 오브 뉴욕>을 수식하는 것들은 어느 하나 대단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그 명성만큼이나 이 영화는 “프로듀서인 하비 웨이스타인과 스코시즈가 로마 세트에서 격렬하게 싸웠다더라”, “디카프리오가 마틴 스코시즈에게 맞으면서 연기를 배운다더라” 식의 수많은 악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p>

게다가 원래 지난해 12월 개봉예정에서 갑작스럽게 9·11 테러가 터졌고 소방관이 폭동에 가담하는 장면이 국민정서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개봉이 1년 연기되기도 했다. 결국 스코시즈는 20분짜리 데모테이프를 들고 칸영화제에 날아가는 것으로 그간의 의심쩍은 소문들을 잠시나마 잠재우기도 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갱스 오브 뉴욕>이 12월20일 미국 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국내개봉 2003년 2월14일).

지난 12월5일, 브로드웨이 극장가에 자리한 로이스 시네플렉스에서 세계 기자들을 대상으로 시사회를 개최한 <갱스 오브 뉴욕>은 비교적 단순한 이야기 구조와 2시간44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영화다. 25년의 긴시간 동안 유예되었지만, 자신이 나고 자란 공간에 대한 근원적 호기심과 사랑으로 충만한 감독의 심장은 사반세기 동안 마치 얼음주머니 속에 보관된 듯 젊은이의 그것처럼 힘차게 박동한다. 이미 반백의 환갑이 넘은 감독을 회춘시킨 이 이야기는 뉴욕에서 자란 스코시즈가 평생의 숙제처럼 품고 있었던 것이었다.

꼬마 암스테르담 발론은 아버지가 어디로 떠나는지 알고 있다. 켈트족의 철십자가를 손에 들고 벌집 같은 삶의 공간을 박차고 전장에 나서는 데드 래빗파의 보스 프리스트 발론은 네이티브(WASP)의 보스이자 잔인한 성품으로 ‘도살자’ 빌이라고 불리는 ‘빌 더 부처’에 맞서 파이브 포인트 한 판에서 죽고 죽이는 한판 대결을 벌인다. 처절한 싸움 끝에 흰 눈밭은 선혈이 낭자하고 발론은 빌의 칼에 끝내 숨을 거둔다. “아이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보게 해. 좋은 교육이 될 걸세.” 하지만 암스테르담은 아버지를 죽인 칼로 빌을 찌르고 도망친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지하에 그 칼을 묻는다.

16년 뒤, 헬게이트 교도소에서 풀려난 암스테르담은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하고 다시 파이브 포인트를 찾는다. “사실 이곳은 도시가 아니었다. 이곳은 장차 도시가 될 곳을 만드는 용광로 같았다.” 파이브 포인트는 중국, 아일랜드, 프랑스, 독일(유대계)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과 그런 이들을 경멸하는 백인우월주의자들이 한데 뒤섞인 인종의 전시장이자 1천개의 다른 악센트들이 난무하는 그런 곳이었다. 어린 시절 묻어두었던 아버지의 칼을 찾은 암스테르담은 거리의 도둑으로 자라난 옛 친구 조니를 우연히 만난다.

그리고 조니로부터 빌이 발론을 죽음으로 이끈 1844년의 ‘위대한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스패로즈 차이니스 파고다에서 축배를 든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곳을 향해 발을 디디는 암스테르담의 의지는 결연하다. ‘왕을 죽일 때는 어둠 속에서 그를 찔러서는 안 된다.모든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지켜볼 수 있는 곳에서 그를 죽여야 한다.’ 암스테르담은 자신의 존재를 속이고 빌의 휘하에 들어가 그의 신임을 얻기에 이른다. 한편 거리의 소매치기로 거친 삶을 살아가는 제니(카메론 디아즈)와 암스테르담은 묘한 긴장 속에 사랑에 빠진다. 암스테르담은 16주년 기념식장에서 빌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지만 제니와의 사랑을 시샘한 조니가 암스테르담이 프리스트 발론의 아들임을 고자질하면서 계획은 수표로 돌아가고 만다.

결국 암스테르담은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세를 규합하여 데드 레빗파의 부활을 도모한다. 그리고 파라다이스 스퀘어 한가운데 ‘죽은 토끼’를 내걸면서 빌과의 전쟁을 선포한다.미국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시기어린 시절 스코시즈는 리틀이탈리아에 있는 올드 세인트 패트릭 성당에 다녔고 그곳의 이웃들에게 전설로 남아 있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것은 이 성당 앞에서 아일랜드 이민자들로 구성된 갱들과 자신들이 진짜 미국인이라고 주장하는 ‘네이티브’간의 최후의 대결이었다. 아일랜드 이민자들은 서로 단결했고 그들이 구할 수 있는 모든 무기들을 구했으며 그들의 교회를 ‘네이티브’ 패거리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성스러운 전투를 벌였다.

1844년에 일어났다는 이 사건은 몇년 동안 어린 마티를 사로잡았다. 19세기 중반, 뉴욕은 도시로서의 정체성을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에 있었다. 1945년 아일랜드 감자기근에 이어 대규모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일주일에 1만5천명 넘게 뉴욕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하지만 그들에겐 일자리도 살 집도 없었다. 나라는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도 그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주어야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당시 가난한 이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더럽고 복잡한 공간인 ‘파이브 포인트’에서 살았다. 정치계의 부패는 만연했고 경제사다리의 하위단계에 있는 갱들은 끊임없이 경제적이고 신체적인 생존을 위해 자신들의 조그만 땅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그 이름도 찬란한 플러그 어글리즈(불량배)파, 로치 가드(바퀴수호대), 데드 레빗(죽은 토끼)파, 셔츠 테일(셔츠 자락)파, 바워리 보이즈(술집소년들)파 등의 아일랜드갱들은 그들이 컨트롤 할 수 있는 많은 수의 유권자들 때문에 가장 힘있는 태머니당의 머리 수를 채워주는 것으로 실질적인 정치파워를 얻었다. 그러나 1861년 발발한 남북전쟁의 압력으로 1863년 뉴욕에서는 강제징집폭동이 일어났다. 화약고의 불씨는 댕겨진 것이다. 300달러를 내면 징집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는 가난한 이들은 군대로 가서 총알받이가 되라는 말과 같았다. 의지할 데 없는 이들이 선택할 방법은 폭동밖에 없었다. 4일간의 징병폭동 끝에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그러나 미국 역사상 가장 참혹했다는 이 시기는 포연 속에 사라지고 잊혀져갔다.

1970년 크리스마스 이브, 스코시즈는 우연히 허버트 J. 애스버리가 쓴 <갱스 오브 뉴욕>이란 책을 친구의 서재에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18세기 초부터 1928년까지 뉴욕 거리갱들에 대한 연대기였다. 그는 즉각 애스버리의 책이 기술한 세계를 자신이 어린 시절 들었던 이야기와 연결시켰고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비슷한 시각 그의 오랜 친구이자 시나리오 작가였던 제이 콕스 역시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제이 콕스가 리서치를 시작하기 이전에 많은 것들이 이미 조사되어 있었다. 뤽 산테의 책 <로 라이프>를 비롯해 <뉴욕의 빛과 그림자> 등은 당시 이민자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의 가장 많은 부분을 따온 것은 허버트 애스버리의 <갱스 오브 뉴욕>이었다. 또한 최초의 시나리오는 브루스 스프링스턴의 한 노래에서 시작되어 역시 그의 노래인 <아담은 카인을 키웠다>(Adam raised a Cain)의 가사를 인용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꿈의 어두운 심연에서 사라졌지만 잊혀지지 않은”(Lost but not forgotten from the dark heart of a dream).

스코시즈는 1977년 <버라이어티>에 광고를 게재함으로써 마침내 자신의 프로젝트를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그 프로젝트는 곧 유보되고 말았다. 1980년의 도래와 함께 감독들이 대규모의 예산으로 개인적인 영화를 만드는 시대는 끝이 난 것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제작상황은 나빠졌을 뿐 아니라 뉴욕은 이미 1860년대의 뉴욕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다.

결국 그 시절의 동네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마을 전체가 새로 만들어져야 할 판이었다. 제작사가 바뀌고 프로듀서가 바뀌는 힘든 시기를 지나 1990년대 초반 마침내 미라맥스의 하비 웨인스타인은 해외판권을 가지게 될 이니셜의 그레이엄 킹과 함께 이 영화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카메론 디아즈 그리고 대니얼 데이 루이스라는 놀라운 주연급 연기자들과 함께 캐스팅되었다. 단테 페레티가 로마의 세트를 디자인 했고 샌디 파웰이 의상을 창조했다. 마침내 2000년 9월, 스코시즈는 단테와 그의 놀라운 스탭들의 손에 의해 빚어진 로마 치네치타 스튜디오의 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곳에 19세기의 뉴욕이, 그가 그토록 담고 싶었던 공간이 그대로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갱 오브 뉴욕>은 뉴욕이란 도시의 창세기에 가까운 영화다. 하지만 그들의 역사를 속속들이 모른다고 해도 상관은 없다. 아비를 죽인 원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수하로 들어간 아들이 그로부터 아이로니컬하게 아버지를 느끼지만 결국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밖에 없는 얄궂은 운명에 빠져들어간다는 이 고전적인 서사극은 그 자체로도 묵직한 감동을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이 영화는 쟁쟁한 주연배우들을 제외하고도 내실있는 조연들의 면면으로 더욱 풍부한 입체감을 지닌다.

극의 초반부에 잠시 등장하지만 인상적인 연기를 남기는 프리스트 발론 역의 리암 니슨을 비롯해 태머니당의 보스이자 부패정치인 트위드로 등장하는 짐 브로드벤트가 있고, <E.T.>의 엘리엇으로 등장했던 헨리 토머스는 암스테르담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가 제니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그를 배신하는 조니로 출연해 장성한 모습을 선보인다. 또한 <빌리 엘리어트>의 아버지였던 게리 루이스는 “태어나서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뉴욕”의 과거를 연기하기에 이르렀다. 스코시즈는 제니가 도둑질을 위해 하녀로 위장해 들어가는 업타운의 부잣집 주인으로 잠시 등장한다.

게다가 살인마의 골목에서 갱들이 의대생들과 시체를 흥정하는 모습이라든지 <뉴욕 트리뷴>의 당시 기사스크랩 등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세밀한 고증(몇몇 날짜는 ‘영화적 허용’에 의해 바뀌었다)을 통해 그 시절의 복장, 수백개의 다른 악센트, 세트의 질감까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재현해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묻어나는 <갱스 오브 뉴욕>은 세기에 남을 대작으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얼마나 많은 뉴요커들이 그 주에 죽어나갔는지 우리는 모른다. 마침내 싸움이 끝났을 때, 모든 영토의 경계는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얼마나 많은 피들이 이 도시를 다시 세우기 위해 뿌려졌던지 간에, 한때나마 우리가 여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 4일낮 4일밤의 처절한 전투가 끝나고 포타스 필드 공동묘지의 아버지 무덤 옆에 빌을 묻은 뒤 울려퍼지는 암스테르담의 마지막 되뇌임은 화려함 속에 가려진 미국이란 나라가, 뉴욕이란 도시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단련되어왔는지를 새삼스럽게 일깨워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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