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마루치 아라치> 배우 윤소이
2003-02-26
글 : 이영진
어느 날 고개를 돌렸을때… 칼이 있었다?

“틈만 나면 자요.” 나무늘보 못지않게 수면을 즐긴다는 윤소이(18)는 요즘 잠이 부족하다. 집에서 나와 서울 신대방동의 서울액션스쿨로 이동하는 시간에도 여차하면 잔다. “혹시 중병이 있는 것 아니냐”는 주위의 우려를 살 정도로 ‘잠’을 숭배하는 그녀다. 하지만 정두홍 무술감독이 버티고 있는 액션스쿨 근방에 차가 들어설 때쯤이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정신이 번쩍 든다. 벌써 한달째다. “촬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부담감을 몸도 느끼는 것일까. 도착하자마자 1km가량의 보라매 공원을 한 바퀴 ‘쌩’ 돌고, 줄넘기 200번으로 몸에 기운을 불어넣고, 윗몸 일으키기 100개로 복부를 단련하고 나서 기다리는 것은 엄한 ‘사부’의 지도 아래 오후 내내 계속되는 검술과 권법 수련. ‘아라치’로 거듭나기 위한 각고의 시간이다. 물론 아직까진 어림없다.

어쩜, ‘윤소이, 누구지?’ 하고 반문하는 이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준!’이라고 하면 이 ‘긴머리 소녀’의 정체를 파악하기가 좀더 쉬울까. 한 휴대폰 서비스 광고 모델로 방방곡곡에 얼굴을 알린 그녀는 얼마 전 류승완 감독의 신작 <마루치 아라치>(가제)에 캐스팅됐다. 그녀가 맡게 된 의진(아라치)은 평범한 순경 상환(류승범)을 최고의 자리인 ‘마루치’에 오르도록 이끄는 강한 무공의 소유자. 극중에선 상환을 ‘다루어야’ 하는데, 정작 연습할 땐 승범 ‘오빠’의 도움을 받는 처지라 “현장에서 연습할 때 버릇이 그대로 나오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선다. “오빠는 춤을 춰서 그런지 감각이 남달라요. 한번 보면 비슷하게 하는 건 물론이고 리듬까지 타는데, 저는 열번은 뚫어져라 봐야 겨우 흉내내거든요. 이럴 줄 알았으면 어렸을 때 칼싸움도 좀 하는 건데….”

하긴 고수의 자리에 단번에 뛰어오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제딴엔 죽어라 하는데 뜻대로 몸이 안 따라줄 때는 울화통이 치밀어오른다”는 그녀에게 유일한 보약은 간혹 ‘사부’가 내려주는 칭찬. “보통 집에 가면 곯아떨어지는데 칭찬받은 날은 잠이 안 와요. 아직 애라서 누가 잘한다고 해주면 정말 좋거든요.” 하긴 첫날 검을 받아들고서 뱅긋거리다 “자세가 돼먹지 못했다”며 정두홍 무술감독에게서 혼이 났던 그녀가 이젠 “평생 써도 검을 모른다는데 한두달 해서 뭘 알겠냐”며 “다만 촬영 때 카메라와 스탭들 고생시키지 않을 정도까진 어떻게든 해낼 것”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어느새 ‘철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첫 작품에서 잘못했다간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심적 압박만이 ‘잠순이’를 변화시킨 것만은 아닌 듯하다. 그러기에 그녀의 꿈은 일찌감치 연기를 택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TV드라마에 빠져들었던 그녀는 윤여정과 전도연이라는 우상을 찾은 이후부터 배우라면 누구나 그러듯 스스럼없이 거울 앞에서 옹알이를 시작했다. 넘치던 의욕이 물길을 잡은 것은 매니저 일을 하고 있던 사촌언니의 친구를 만나면서부터. “재능이 있나 한번 봐달라”는 테스트를 치렀지만, 그뒤로도 1년 동안 확답이 없었다. 독서실을 다니면서 욕구를 억누르던 무렵, 조규찬의 뮤직비디오 <무지개>에 출연하게 됐고, 비슷한 시기에 동덕여대 스포츠모델학과에도 특별전형으로 합격해서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얼마 전 같은 소속사에 있는 채정안 언니를 졸라 <저 푸른 초원 위에> 촬영장에 가서 윤여정 선생님을 멀리서나마 봐서 기쁘다”는 그녀, 캠퍼스의 봄을 맛보기 전에 냉혹한 현장수업부터 치러야 한다.

사진 조석환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