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태양도 그 미소를 당하지 못하리, 줄리아 로버츠
2001-05-01
글 : 위정훈

어쩌면 그녀의 아버지는 태양신 아폴론이고, 어머니는 활짝 핀 키 큰 해바라기가 아니었을까. 그토록 빛나는 머리카락, 눈부신 웃음. 그러나 줄리아 로버츠에겐 요정이나 여신보다는 인간의 느낌이 묻어난다. 화사하고, 매끈하지만 바로 이웃에서도 볼 수 있는 여인 같다. 커다란 입을 한껏 벌려 하하하 웃고, 어디서나 긴 다리를 쭉쭉 뻗으며 거침없이 활보한다. 불같이 화를 낼 때는 손에 잡히는 건 무엇이든 내동댕이치고, 기쁠 땐 보거나 말거나 고무공처럼 팔짝팔짝 뛰어오르는 <멕시칸>의 샘은 줄리아 로버츠가 자신의 진짜 모습을 관객 앞에 드러낸 것일 뿐, 연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을 인질로 삼은 킬러에게 속깊은 조언을 건네며,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는 온정까지도.

현대판 신데렐라 <귀여운 여인>(1990)은 현실의 줄리아 로버츠에게도 유리구두를 신겨주었다. 그러나 이후의 출연작들은 실망스러웠다. <펠리칸 브리프>(1993)에서 <컨스피러시>(1997)에 이르기까지의 줄리아 로버츠는, 또 하나의 할리우드 여배우였을 뿐이다. <메리 라일리>(1996) 같은 영화는, 그녀와 전혀 궁합이 맞지 않았다. 짙은 안개와 고딕풍의 음험한 세팅, 인간 심성의 밑바닥을 파헤치는 어두운 통찰은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다. 태양이 내리쬐는 카리브 해변의 말괄량이가 어울리는 그녀에게 눈썹 위에서 가지런히 자른 헤어스타일에 하얀 린넨 앞치마를 입히다니. 사생활도 평탄치 않았다. 91년 키퍼 서덜런드와 헤어지고, 93년 결혼했던 가수 라일 로벳과는 95년 이혼했고, 리암 니슨, 딜런 맥더못, 에단 호크, 대니얼 데이 루이스 등이 스쳐 지나갔다. 언론의 집요한 사생활 물고늘어지기에도 지겹도록 시달렸다. 벤자민 브랫을 만나기 전까지는, 여전히 시린 가슴이었다.

그러나, 영원한 동화 <신데델라>처럼 ‘귀여운 여인’도 살아 있었다. 며칠 뒤면 결혼하는 남자친구를 사랑하고 있음을 뒤늦게 깨닫고는 그를 되찾으려 해프닝을 벌이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1997)의 좌충우돌하는 커리어우먼 줄스로 그녀는 돌아왔다. 그리고 반란이 시작됐다. 레오나오도 디카프리오, 애덤 샌들러보다 흥행작이 많았지만 <런어웨이 브라이드>까지 1700만달러의 출연료에 만족해야 했던 그녀가 <에린 브로코비치>(2000)에서 여배우로서 처음 2천만달러의 출연료를 관철시킨 것이다. 능력만큼 일하고 일한 만큼 받는 곳일 것 같은 할리우드에도 엄연히 존재했던 성차별을 처음으로 깬 것이다.

지금 그녀는 톰 행크스, 멜 깁슨, 해리슨 포드와 2천만달러짜리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유일한 여배우다. 그녀는 기네스 팰트로만큼 기품이 있지도, 멕 라이언만큼 깜찍하지도 않다. 그러나 미국은 그녀를 연인으로 택했다. 그녀가 미국을 사로잡은 ‘귀여운 여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진실과 대담, 혹은 격정과 솔직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줄리아 로버츠는 미국이 이상적인 고향으로 생각하는 서부개척시대의 억척스러운 여인으로도 딱 들어맞는다. 그녀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이미지로 승부했고 그것은 대중에게 파고들었다. 최고의 스타였던 그녀를 박대해온 아카데미도 이제는 그녀를 인정했다. 줄리아 로버츠는 이제 ‘미국의 연인’으로 돈과 명예 모두를 거머쥔 것이다. ‘귀여운 여인’에서 ‘미국의 연인’으로 성장한 줄리아 로버츠의 경쾌한 활보는 다시 브래드 피트와 공연하는 스티븐 소더버그의 신작 <오션스 일레븐>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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