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오피스에서도 천운이 필요한 것일까. 임권택 감독은 지난 2월 뉴욕에서 <취화선> 개봉과 회고전을 동시에 여는 행운을 얻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뉴욕의 영화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면서 그야말로 금쪽같은 기회를 잡아 기대가 컸었다. 하지만 하늘은 무심했다. 폭설과 폭우, 두달 가까이 계속된 영하 12도를 밑도는 날씨로 기대 이하의 성과를 거두었다.
지난 2월14일부터 3월6일까지 맨해튼에서 오픈한 <취화선>은 17일 미국의 국경일인 ‘프레지던트데이’(Presidents’ Day)를 낀 연휴에 개봉했으나, 폭설과 폭우, 영하 12도(화씨 10도)를 밑도는 날씨로 인해 기대 이하의 성과를 거두었다. 맨해튼을 비롯한 뉴욕시 인근지역에 <취화선> 개봉 주말인 16일 오후부터 24시간 이상 폭설이 지속됐다. 이날 맨해튼에는 96년 이후 최대 적설량인 19.8인치(50.29cm)의 눈이 내렸으며, 일부지역에서는 차량 운행이 통제돼, ‘잠을 자지 않는 도시’로 유명한 뉴욕시에서도 영화팬들의 발길이 묶였다. 이같은 상황은 <취화선>의 상영 마지막주까지도 폭우와 때아닌 혹한 때문에 지속됐다. 영화 흥행기록 전문 웹사이트 ‘박스오피스모조닷컴’ (www.boxofficemojo.com)에 따르면 <취화선>은 개봉 3주 동안 총수입 1만7700달러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취화선>의 미국 배급사 ‘키노인터내셔널’의 홍보 담당자 로드리고 브랜대오는 “이번 날씨의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면서 “<취화선>은 많은 뉴욕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아 큰 기대를 했었다”고 밝혔다. 평론 전문 웹사이트 ‘라튼토마토닷컴’ (www.rottentomatoes.com)에 따르면 <뉴욕타임스>와 <빌리지 보이스> <타임 아웃 뉴욕> <뉴스데이> 등의 뉴욕 평론가들이 <취화선>을 호평했으며, 전체 리뷰 평균도 85%를 기록했다. 특히 뉴욕시의 대표적인 주간지 중 하나인 <타임 아웃 뉴욕>은 임 감독의 영상미학을 높이 평가했고, <취화선>을 ‘추천영화’(Best Pick)로 선정하기도 했다.
<취화선>이 폭설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반면 임 감독의 회고전은 때아닌 폭우로 고전했다. 아시아 문화 홍보와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아시아 소사이어티’는 지난 2월21일과 22일 양일간 회고전 ‘한국의 거장: 임권택의 작품들’ (A Korean Master: The Films of Im Kwon-Taek)을 개최, <서편제>와 <장군의 아들> <아제아제 바라아제> <태백산맥> 등 4편을 상영했다. <서편제>가 무료 상영된 행사 첫날에는 약간의 비에도 불구하고 총250석에 100여명이 참석하는 등 비교적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22일에는 폭우가 쏟아져 임 감독의 대표작 3편이 상영됐지만 총관객 수가 100명에 그쳤다. 이는 행사기간 중 평균 관객점유율이 20%가량임을 뜻한다.
홍보 담당 아누라타 고시-매줌다는 “아시아 소사이어티와 함께 키노인터내셔널도 이번 행사 홍보에 만전을 기울여 회원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번 임 감독 회고전에 큰 관심을 보였고, 예약이 대부분 끝난 상태였지만, 궂은 날씨 때문에 행사장에 오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며 아쉬움을 보였다. 회고전은 일회 행사로 끝났고 <취화선>도 뉴욕 극장가에서 막을 내렸지만, 3월 중순부터 뉴욕 이외 다른 지역 극장에서 개봉될 예정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