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영의 만화에는 힘이 있다. 비교하자면 나예리 만화와 닮아 있다. 나예리는 격주간 만화잡지 <윙크>에 박희정, 유시진과 함께
신인 3인방 중 한명으로 등장해 한순간에 독자를 사로잡은 작가다. 여성보다 남성을 매력적으로 그리는 나예리는 굵은 선과 거침없는 데생,
그리고 직사각형의 시원한 칸 분할을 선호한다. 김화영도 여성보다는 남성을 더 매력적으로 그린다. 섬세한 선보다는 굵고 힘있는 데생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특징은 흑백의 강렬한 대비와 극단적 앵글의 사용이다. 흑백의 강렬한 대비는 캐릭터의 카리스마를 강화한다. 패션잡지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보이는 좋은 스타일의 주인공들만으로도 김화영 만화는 독자를 사로잡을 만하다. 좋은 스타일도 힘이다.
하이앵글과 로앵글이 급격히 교차하는 앵글 테크닉은 CF나 뮤직비디오의 영상 문법을 보는 듯하다. 카메라는 위, 아래로 빠르게 움직인다.
클로즈업도 빈번히 사용된다. 프레임이 고정된 영상에서는 볼 수 없는 자유로운 칸의 사용은 더욱 급격한 리듬감을 제공한다. 칸이 바뀔 때마다
앵글이 변하고, 들고 찍는 것처럼 카메라는 격하게 움직인다. 화려하다. 영상문법을 이해하고 그것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작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연출이다. 그래서 김화영의 만화는 첫눈에 독특한 스타일을 느낄 수 있다.
<핑크 플라밍고>, 10대를 매료시킨 러브스토리
그 분화가 어떠게 이루어지는가를 보여준다. 먼저 <핑크 플라밍고>. 이 작품집에는 표제작 <핑크 플라밍고>와 함께
<탱고맨과 로빈>이 수록되어 있다. 이 두 작품은 각 100쪽 내외로 잡지에 보통 4회 정도 나뉘어 연재되었다. 이 만화가 연재된
잡지가 주로 10대 독자에게 팔리던 잡지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10대 독자들의 취향이 반영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탱고맨과 로빈>은 오랜 우정이 사랑으로 바뀐다는 익숙한 이야기다. 어린 시절부터 여장에 관심이 많았던 크리스는 이웃에 사는
여자친구 로빈에게 약점을 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악연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 크리스의 삶은 늘 로빈에 의해 간섭받게 된다. 로빈에게서
탈출하고 싶어하던 크리스는 밀라노로 연수를 떠난다. 그러던 어느 날 로빈은 크리스 앞에 다시 나타나고 크리스는 자신이 로빈에게 기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함께 수록된 <핑크 플라밍고> 역시 기억상실증과 엇갈린 약속이라는 익숙한 이야기다. 말랑한 10대 취향의 러브스토리는
김화영 만화의 매력을 희석시킨다. 특유의 현란한 연출은 오히려 산만하게 읽힌다.
<롱베케이션>, 가족의 부재에 대한 이야기
어머니의 외도에서 비롯된 근친살해의 비극은 상반된 성격의 쌍둥이 형제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이야기의 줄거리를 따라가는 것보다 분열된 자아를
은유하는 두 형제의 비극에 주목하자. 데뷔작 원고의 미숙한 선과 최근에 수정된 원고의 부조화조차도 애초부터 의도된 것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분열된 자아 혹은 페르소나 탐구는 <그림자 사나이>로 이어진다. 눈앞에서 살해당한 엄마의 시신을 본 소년은 자신의 그림자와 처음으로
조우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그림자 사나이는 제이크의 실체를 닮아간다. 그림자는 점차 빛을 얻어가고 제이크는 그림자가 되어간다. <롱베케이션>은
가족의 부재를 그린 작품이다. 하드보일드한 분위기에서 형제애를 드러낸다. 초기작 나 <시간도둑> <첫키스의
경험을 찾아드립니다>와 비교하면 <롱베케이션>은 현란한 앵글이 겉돌지 않고 작품에 안착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롱베케이션>에
수록된 5편의 단편들은 <핑크 플라밍고>나 <탱고맨과 로빈>에 비해 작가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초기작과 최근작도
고루 수록되어 있으며, 초기작을 작가가 직접 수정한 부분들도 있어 한 작가의 발전 맥락을 훔쳐보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가능성 있는 작가, 이제 첫걸음이다김화영의 만화는 캐릭터의 표현, 앵글의 구성, 칸 나눔이 모여 독특한 페이지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시각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거기에 현란한
영상 테크닉이 접목되는 최근의 경향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두권의 단편집에서 느낄 수 있는 점은 김화영 만화가 아직까지는 가능성으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시각적인 측면에서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잡아가고 있지만, 서사적인 측면에서는 편집자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만화에서 실험적인
단편까지 극심한 편차를 보인다. 두편의 단편집에서 발견한 것은 ‘김화영’이라는 작가의 가능성이다. 이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작가의 ‘중심’이다. 작가의 중심이 있어야만 흔들리지 않고 독자와 교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이제
첫걸음이다. 두 번째, 세 번째 걸음을 기대해보자.
박인하/ 만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