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동승> 주경중 감독 인터뷰
2003-04-01

"촬영만 3년‥돈이 웬수 였어요"

인터뷰를 하기 전 <동승>을 만든 주경중 감독(44)을 만나는 게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책 한권 두께의 보도자료에는 영화를 완성하기까지의 기나긴 시간 동안 겪은 감독의 마음고생, 스탭들의 몸고생이 절절하게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동승역의 김태진(14)군과 함께 만난 주 감독은 보도자료의 ‘집념의 사나이’라는 표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농담 잘하고 여유있어 보이는 인상이었다. “어휴, 그거 너무 궁상스러워 보여서 영 남사스럽더만요.” 홍보팀과 술마시며, 밥먹으며 했던 이야기가 욕 빼고 다 활자화될 줄은 자신도 몰랐다고.

계획까지 치면 7년이지만 찍은 날수는 겨우 27일

"촬영직전 투자사 무너져 아버지 집 판 돈 3천만원 들고 무작정 들어갔습니다"

촬영만 3년, 기획까지 치면 7년이 들어간 <동승>은 실은 고생 빼고 이야기하기 힘든 영화다. 돈이 ‘웬수’였다. “촬영 직전에 투자사가 무너졌어요. 아이엠에프 사태가 터지기 직전이었죠. 주인공이 세번이나 바뀌고 엎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이러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아 99년 여름 아버지 집 판 돈 3천만원을 들고 무작정 촬영에 들어갔습니다.” 그때부터 게릴라식 촬영행군이 시작됐다. “한 일주일 찍고 나면 돈이 떨어져요. 그러면 돈 구해서 일주일 다시 찍자고 약속했다가, 일주일이 한 달 되고 한 달이 1년 되는 식이었죠.” 찍은 날수를 합하면 27일에 불과하지만 촬영 시작할 때 초등학교 4학년이던 태진이는 마지막 촬영으로 중학생이 됐다. 그렇게 질색하던 까까머리를 7번이나 깎아야 했다. 아이가 크는 바람에 51일간의 기록이었던 본래 내용도 3년으로 고쳐졌다.

외국어대 영화동아리 ‘울림’의 창립멤버로 91년 <부활의 노래>를 제작했던 주 감독이 <동승>을 기획하게 된 건 위암 말기인 어머니를 지켜보면서다. “8대 종손으로 영화 한답시고 아들 구실도 변변히 하지 못하면서 몸져 누우신 어머니를 보니까 별 생각이 다 나더군요. 그때 연극 <동승>이 문득 떠올랐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큰 뼈대는 원작에서 빌려왔지만 장소 헌팅을 핑계삼아 전국의 절을 떠돌며 스님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로 살을 붙였다. 정심의 포경수술 에피소드와 큰스님이 동승, 도념에게 던지는 화두 등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감독이 직접 모은 ‘실화’들이다. “워낙 급박하게 촬영을 해서 아쉬움도 많지만 첫 연출작으로 이 정도 재미있고 이 정도 지루하면 된 것 같아요. 만족스럽습니다.” 지난해 완성 뒤 다섯벌의 프린트가 모자랄 만큼 쏟아진 국제영화제의 초청이 7년 동안의 집념에 대한 어느 정도의 보답이 되고 있다.

인터뷰 하는 동안 동네 가게에서 사온 풍선껌을 쭉쭉 빨면서 감독에게 장난을 치던 태진군에게 가장 좋았던 장면을 물었더니 예상 밖의 대답이 나왔다. “막대기 들고 나(도념) 괴롭히던 아이들 쫓아가던 장면이요. 쫓아가서 때려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동승>으로 해외영화제에서 붉은 카펫을 밟는 주연급 배우가 됐지만 변함없는 그의 꿈은 훌륭한 과학자란다.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동승' 어떤 영화?

엄마는 언제 찾아와? 애기·총각·큰스님 살가운 이야기

아홉살짜리 애기스님 도념과 이제 막 청년기에 들어선 총각스님 정심, 그리고 나이 지긋한 큰스님이 살고 있는 작은 산사. 아랫마을 사는 초부 아저씨가 지난해 도념에게 “이만큼 자라면 엄마가 찾아올 거야”라며 표시해둔 나무줄기의 생채기 높이보다 훌쩍 커도 엄마는 찾아오지 않고 외로운 도념은 속만 탄다.

“돈 좀 달라”며 큰스님을 쫓아다니는 정심과 큰스님의 실랑이 사이에서 하루하루를 하릴없이 보내던 도념에게 예쁜 아줌마가 나타나 가슴 설레게 한다. 도념만한 아들을 잃은 아줌마에게서 도념은 오래 전 기억에서 사라진 엄마의 모습을 본다.

<동승>은 묵직한 화두를 던지는 구도영화라기보다는 엄마에 대한 동승의 애틋한 그리움을 담은 서정적인 작품이다. 부모가 궁금하고 세상이 궁금한 꼬마스님과 보살 앞에서 멋있게 보이고 싶어하는 총각스님, 그리고 엄하면서도 살가운 큰스님의 일상사가 정겹게 그려진다. 산사를 둘러싼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시종 은근한 미소를 짓게 만들면서도 도념이 엄마를 찾기 위해 눈밭을 헤치며 절을 떠나는 마지막 장면은 코끝 찡한 여운을 남긴다. 11일 개봉. 김은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