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사랑의 이름으로,<그녀에게> OST
2003-04-14
글 :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는 틀림없이 21세기를 여는 기념비적인 걸작 대열에 오를 만한 영화의 하나이다. 이 영화는 영상과 음악의 아름다움과 독특함, 형식의 신선함, 인간성의 깊은 통찰과 드러냄을 담아 알모도바르 영화의 한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알모도바르는 늘 정치적, 성적 도발성을 순진함과 통속성 속에 녹인다. 스페인 특유의 무엇이 아니면 이러한 혼융을 성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뜨거운 태양과 투우와 플라멩코의 나라는 또한 성모 마리아의 나라이기도 하다. 알모도바르에게 마리아는 종교적 이미지가 아니라 사랑 속에서 모든 것의 용서와 화해를 청하는 육신의 사랑의 화신으로 존재하며 창녀, 사기꾼, 불구자, 동성애자, 성적 도착자 등 모든 세속적인 사람들의 몸으로 육화되어 매순간 부활한다.

<그녀에게>는 여러모로 국제적인 영화라 할 수 있다. 오프닝과 엔딩은 독일의 저명한 현대 무용가인 피나 바우쉬의 무용 시퀀스가 인용된다. 주연 남자배우 한 사람(마르코 역의 다리오 그란디네티)은 아르헨티나 사람이고 무용 선생으로 등장하여 인상깊은 연기를 한 사람은 찰리 채플린의 딸인 제럴딘 채플린. 영화에서 중요하게 쓰이는 <쿠쿠루쿠쿠 팔로마>는 브라질의 국민가수 카에타노 벨로소의 대표적인 노래. 알모도바르를 축으로 세계의 내로라 하는 예술가들이 모여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필름을 돌린다. 그러나 역시 중심은 스페인적인 것. 우선은 리듬이 스페인적이다. 피나 바우쉬의 춤 역시 아름답고도 풍만한 룸바풍의 리듬을 배경에 깔고 펼쳐진다.

음악을 맡은 알베르토 이글레시아스는 알모도바르의 팬들에게는 낯익은 이름이다. 이미 <내 마음의 꽃> <라이브 플래쉬>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같은 영화에서 알모도바르와 함께했다. 그에게도 <그녀에게>는 필생의 역작이 아닐 수 없다. 정열적인 플라멩코 스텝과 호흡을 맞추는 멜로딕 단조의 스페인 음계를 중심으로 재즈, 유럽의 근대 실내음악, 통속적인 스페인 음악을 영화의 분위기와 잘 조화시키고 있는 그의 음악은 이번 영화에서 하나의 극점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무성영화 부분에 쓰인 현악 4중주곡은 압권의 하나. 그의 멜로디는 브람스의 현악 4중주를 연상케 할 만큼 품격이 있으면서도 멜랑콜리하고 처절하다.

알베르토 이글레시아스의 곁에서 영화를 빛나게 하는 또 한 사람의 뮤지션은 바로 카에타노 벨로소. 그의 <쿠쿠루쿠쿠 팔로마>는 왕가위의 영화 <해피 투게더>에서도 쓰였다. 그의 노래는 결정적인 대목에서 자기 영상을 고집하지 않고 이처럼 다른 사람의 공연장면을 직접 삽입시킴으로써 깊이를 더하는 알모도바르 특유의 포용력에 잘 포섭되고 있다.

알모도바르 영화의 키워드는 역시 ‘사랑’이다. 모든 음악이 사랑의 기쁨과 아픔을 찬양하거나 위로하고 있다. 격조의 차이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사랑의 이름으로 저속함과 성스러움을 뒤섞는 그의 방식은 영화라는 통속적인 장르 아니면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통속성을 들어올리거나 고양시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속에서만 그의 영화철학은 기능한다. 그는 어떤 의미로는 영화라는 장르의 구원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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