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개봉될 <살인의 추억>(제작 싸이더스)에서 시골형사와 서울형사로 짝을 이루는 송강호(36)와 김상경(31)은 다소 무거운 마음으로 촬영을 시작했다. 화성 연쇄살인이라는 실화를 소재로 삼고 있어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의 심기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데다가 연기 이력으로 보아도 부담감이 적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이다.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 <복수는 나의 것>과 의 흥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송강호는 관객 동원에 대한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을 때였고 <생활의 발견>으로 성공적인 스크린 데뷔전을 치른 김상경은 연기 변신을 모색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들은 과연 무슨 생각으로 이 작품을 선택했을까. "이 작품의 원안이 된 연극 「날 보러 와요」는 여러 차례 봤기 때문에 영화화된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더욱이 내가 영화를 보며 잘 웃지 않는 편인데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는 데굴데굴 구르다시피 하며 봤거든요. 봉감독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관심을 표시하니 열정을 높이 사 캐스팅해주더라구요."(송강호)
"저는 영화화된 장면을 상상하며 시나리오를 읽기 때문에 오래 걸립니다. <살인의 추억>은 연거푸 두번을 읽다보니 새벽 3시가 넘었더라구요. 당장 감독에게 출연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은데 시간은 너무 늦었고, 아직도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어 잠은 오지 않고… 아침이 되자마자 전화를 걸어 `감독님, 너무 화나요'라며 당장 하겠다고 말했지요."(김상경)
촬영에 들어가면서 두 배우는 마음 고생 못지않게 몸 고생도 많이 했다. 김상경은 늘 술병을 끼고 <생활의 발견>을 찍다가 몸무게가 94㎏까지 불어나 10여㎏이나 줄인 반면 송강호는 시골형사의 넉넉한 몸집을 만드느라 8㎏ 가량을 살을 찌웠다.
영화 전반부에서 돋보이는 것은 송강호의 코믹 연기. <넘버3>식 과장이 없으면서도 연신 폭소를 자아낸다.
"감독이 애드리브(즉흥대사)를 많이 하라고 주문하더라구요. 그런데 재미있는 대목은 모두 편집에서 잘려나갔어요. 시사회 때 보니 범인을 찾기 위해 대중목욕탕에서 죽치거나 무당을 찾아가는 대목에서 많이들 웃으시는데 실제로는 더한 일도 많았답니다. 그분들의 심정을 떠올리면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어 마음 편하게 웃을 수도 없지요."
영화 후반부에서는 김상경의 집중력이 살아난다. "자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박두만(송강호)의 수사방식을 비웃지만 거듭된 실패 끝에 점점 광기에 휩싸여간다.
"범인이 틀림없다는 확신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증거가 나오지 않으니 미칠 지경이었을 거예요. 두들겨패거나 총부리를 들이대서라도 자백을 받고 싶었겠지요. 제가 연기한 서태윤 형사는 아마 영화가 끝난 뒤에도 지금까지 범인을 잡으려고 헤매고 다닐 것 같아요."
충무로 최고의 연기력을 자랑하는 송강호와 연기 맞대결을 해본 소감을 묻자 "대결이라니 어림없어요, 많이 배울 수 있어 소중한 경험이 됐지요"라고 겸손하게 대답한다.
송강호도 김상경을 `대성할 배우'라고 치켜세운 뒤 한국영화계의 대표배우답게 관객에게 폭넓은 애정과 지지를 호소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한다. "<지구를 지켜라>가 모든 영화인의 호평을 받으면서 흥행에 참패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어떤 영화가 꼭 관객이 많이 들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런 일이 계속되면 소신을 갖고 열심히 해보려는 감독, 배우, 작가, 스태프 등의 의욕이 꺾일까봐 걱정이 앞섭니다. 이런 영화인들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지 못하면 결국 피해는 관객 여러분이 입게 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