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살인의 추억>, 이 완벽한 영화의 문제점 하나
2003-05-06

1986년부터 1991년 사이에 일어난 10번의 살인 사건, 이름하여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다. 이 사건의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플란더스의 개>로 데뷔한 봉준호 감독의 두번째 작품인 <살인의 추억>은 바로 그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다룬다. 자막이나 내레이션을 통한 사건 설명이 없이도 사건은 충분히 설명될 정도로 영화는 능숙하게 구성되어 있다. 또 등장 인물들의 설정과 그들의 연기력, 일관된 톤을 유지하는 촬영과 치밀한 편집,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음악과 딱 꼬집어 말하기 힘든 음산한 분위기의 미장센 등 영화는 넘칠 정도로 완벽하다. 게다가 이 완벽한 영화는 시장에 대해 도전적이기도 하다.

육감과 완력을 믿는 박형사(송강호)와 ‘조지면 분다’는 신념을 가진 조형사(김뢰하)는 동네 양아치들부터 조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정신지체 장애자를 다그쳐서 범인 실토를 받게 되는데, 현장 검증에서 그것은 실수로 드러나고 만다. 영화의 첫 장면과 파란 논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 정교하고도 웅장한 군중 신은 수사가 패착으로 끝날 것이라는 것을 암암리에 예고한다.

첫 장면, 박형사가 논 배수로의 사체를 확인하는데 어떤 꼬마는 계속 박형사의 말을 따라한다. 그 불길한 우스꽝스러움! 영화는 계속 우스꽝스러움으로 미끄러진다. 살인 사건은 계속 일어나는데 형사들은 우스꽝스러운 짓만 계속할 뿐이다. 또 범인 체포를 위해 전경 병력 동원 요청을 하니, 모두가 수원의 시위 진압을 위해 나갔다고 한다. 공권력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쓰일 뿐 헌법에 규정된 권력의 원천 즉 국민을 위해 쓰여지지 않았다.

이렇게 영화는 사회적 허망함과 수사의 허망함 속에서 헤매는 형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대부분의 화면을 쓴다. 서울에서 파견된, 서류만을 믿는 서형사(김상경)와 새로운 수사반장(송재호) 역시 헤매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이 네 명의 수사관은 서서히 미쳐간다. 공권력의 폭력이 행해지는 사회의 외곽에서는 또 다른 폭력이 일어나고, 그 폭력을 중지하기 위해 형사들의 폭력은 남용된다. 마지막 범인으로 지목된 내성적인 청년 박현규(박해일), 영화는 그가 범인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처럼 전개된다.

하지만 증거는 없다. 이 영화의 유일한 문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범인은 있지만 잡지 못했다, 범인처럼 보이는 인물이 있다, 하지만 그 인물은 일부러 관객을 오도하는 장치(맥거핀)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증거는 없다, 그런데 그는 서형사로부터 죽음같은 폭력을 당한다. 맥거핀이 아니면서도 맥거핀이 되고 만 이 부조화와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박현규(혹은 그의 인권)의 입장을 섬세하게 밝히지 못한 것은 악수였다.

물론 감독은 사건에 빠져 감정적으로 허우적거리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인 체포’라는 유혹적인 결말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박현규는 무참하게 희생되었다. 영화가 완벽하기에 이 문제점은 우리를 더욱 갑갑하고 슬프게 만든다.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체포를 위한 범국민수사본부’라도 만들어야 되는 것 아닌가 이효인 영화평론가·경희대 교수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