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경남 사천 <살인의 추억> 촬영장에서 만난 김뢰하(38)는 배우가 아니었다. 제작부가 입는 ‘잠바때기’를 걸친 그는 부탄가스 통에 노즐을 연결한 ‘간이 화염방사기’를 들고 땅바닥의 얼음을 녹이고 있었다. “영화가 너무 궁금해서 촬영장을 찾았고, 가만히 불이나 쬐고 있자니 미안했다”는 그는 자신의 촬영분량이 없는데도 그 먼 곳까지 찾아가 궂은일을 자처했다.
어찌보면, <살인의 추억>에서 그의 역할인 조용구 형사 또한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인물이다. 조용구는 걸핏하면 용의자를 향해 군홧발을 날리고, 시위현장에서 대학생의 머리채를 질질 잡아끄는 전형적인 악질 경관이지만 낙후된 80년대라는 조건 속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하려 했던, 그러나 결국 그 시대에 의해 희생됐던 존재다. 범인을 잡기 위해 시대의 방조 속에서 그가 사용한 폭력은 결국 부메랑이 돼 그에게로 향했던 것이다. 죄없는 이를 고문했던 그의 오른쪽 다리가 절단되는 장면에서 군부독재의 환부가 제거되는 통쾌함과 함께 묘한 비애가 느껴지는 것은 비정한 시대에 의해 이용된 뒤 폐기처분되는 한 운명에 대한 연민 탓이리라. 그런 복잡한 감정은 “시나리오상에선 진짜 단순무식한 캐릭터인 용구지만, 그래도 왠지 상처가 있을 것 같아 그런 느낌을 부여하려” 했던 김뢰하의 열정이 없었다면 살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제가 한 군데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살인의 추억>도 그랬어요.” 김뢰하를 이 영화 속에 빠뜨린 장본인은 다름아닌 봉준호 감독이다. 김뢰하와 봉 감독은 일종의 동반자적 관계를 맺고 있다. 그는 봉 감독의 단편 데뷔작인 <백색인>을 통해 영화 데뷔를 했고, 이후 단편 <지리멸렬>과 장편영화 <플란다스의 개>에도 출연했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아파트 지하실에 기거하다 나중에 개 도둑으로 몰리는 부랑인이 바로 김뢰하다. “연우무대에 있을 당시인 93년 말에 봉 감독과 우연히 알게 돼 <백색인>에 출연하게 됐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친해져서 지금까지 온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사실, 그가 조 형사 역을 맡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연우 시절 <살인의 추억>의 원작인 연극 <날 보러 와요>에서 서울에서 온 김 형사를 연기하면서 봉 감독을 초대해 연극을 보여준 것도 다름아닌 김뢰하다. “공연 끝난 뒤 커피숍에서 봉 감독에게 ‘이 연극 판권 사서 영화로 만들라’고 제안했는데, 몇년 뒤에 진짜 ‘어떻게 하면 판권을 살 수 있냐’는 연락이 왔죠.”
어릴 때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입시에 실패해 도예로 전공을 바꿨고, 또다시 우연한 계기로 연극동아리에 가입해 연기의 세계에 빠지게 된 그는 90년대 중반 이후 연우무대를 대표하는 배우로 활약해왔다. <이>(爾)로는 2001년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퇴마록> <여고괴담> <송어> 등 영화에선 잘 드러나지 않다가 <살인의 추억>으로 비로소 관객과 인사를 나누게 된 김뢰하는 단단한 인상과 튼실한 연기력, 그리고 따뜻한 내면을 앞으로 더 자주 보여줄 게 틀림없다. 관객 또한 열정이라는 ‘화염방사기’에서 뿜어져나오는 그의 뜨거운 연기를 고대할 것이다.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