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살인의 추억> 음악감독,이와시로 다로
2003-05-07
글 : 심지현 (객원기자)

끊어지는 듯 이어지는 리듬의 기억

봉준호 감독은 배우에게서건 스탭에게서건 100% 신뢰를 이끌어내는 데 탁월한 사람이다. 그것은 제3자가 감히 이해하기 힘든 경지다. 지난 겨울 경남 사천의 굴다리 위에서 하이라이트신을 찍을 때, 입김이 그대로 얼음이 될 것 같은 혹한 속에서도 송강호, 김상경, 박해일은 마치 “내 몸의 주인은 (봉준호) 당신이요”라고 외치듯이 몸을 돌보지 않은 연기를 펼쳤다. 음악감독 이와시로 다로(39) 역시 ‘봉 마니아’가 되어 있는 듯했다. 넉넉한 레코딩 기간 동안 그가 봉 감독에게 매료된 것은 다름 아니라 그의 확신에 찬 태도 때문이었다. 머릿속에 음악과 영상의 완성된 조합본을 가진 사람마냥 봉 감독의 어투는 상세하면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이와시로가 주문받은 것은 두 가지였다. ‘시대’와 ‘살인’(혹은 살인자)에 대한 기억일 것, 사실적인 음악일 것.

80년대에 실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을 조금은 시니컬하게 풀어가지 않겠냐(이와시로는 봉 감독의 전작 <플란다스의 개>를 “온통 시니컬함으로 가득 찬 영화”라 평했다)는 음악감독의 의도와는 달리 영화는 (조롱과 오해와는 뉘앙스가 다른) ‘폭소’와 ‘분노’ 사이를 오가며 관객의 호흡을 무서운 속도로 몰아붙였다. <살인의 추억>을 맡기 전, 일본에서 서스펜스물인 <어나더 헤븐>(조지 이다 감독)을 맡은 바 있는 이와시로는 암울하고 스산한 80년대 중반 한국의 농촌마을로 별 준비과정 없이 곧바로 미끄러져 들어올 수 있었다.

바쁜 스케줄을 쪼개 한국에서, 일본에서 각각 두번씩 조우한 봉 감독과 이와시로는, 10시간 이상의 미팅에도 전혀 지치는 기색없이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데 몰두했다. 이미 일어로 완역된 시나리오를 받은 바 있는 이와시로는 20개가 넘는 데모 테이프를 한국으로 보냈고, 봉 감독은 모든 곡을 일일이 감상하며 제작된 영상과 짜맞추기를 시도했다. 드디어 그들이 최종 녹음을 위해 이와시로의 스튜디오에서 만난 날, 감독이 준비해온 비디오 자료를 감상하며, 중간중간 봉 감독이 음악의 수정이 필요하겠다고 말하면 그 즉시 이와시로가 일어나서 키보드로 수정본을 들려주는 식의 과정이 계속됐다. 갈대밭에서의 시체 수색장면에서는 음악을 넣을 것인가에 대해 봉 감독이 고민이 많았다. 이와시로에게 ‘여백’을 설명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새 이와시로는 끊어지는 듯 이어지는 리듬의 곡을 들고와 감독의 고민을 말끔히 해결했다. 그렇게 완성된 음악은 <제비처럼>과 <빗속의 여인> <우울한 편지>를 제외하고 29곡의 오리지널 스코어에 달한다.

이와시로를 만나기 전 히사이시 조 등 일본의 유명 음악감독과도 접촉한 바 있는 제작팀은, 혹여 음악이 영상을 지나치게 압도하게 될까봐 망설이던 중이었다. 그러다 이미 애니메이션과 영화음악으로 입지를 굳힌 이와시로를 알게 됐고, 지금은 나중 선택에 100% 만족한다고. 현재 이와시로는 <아마데우스>의 제작자 마이클 하우스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중이다. 4집 싱글 앨범의 녹음이 끝나는 대로 결정할 예정이라고. 글 심지현·사진 조석환

프로필1965년생도쿄예술대학, 동대학원 졸업일본의 각종 TV드라마, CF, 애니메이션, 영화 등의 사운드트랙 작곡알려진 작품은 <바람의 검심>(애니메이션), <11.9.01>(옴니버스 미국영화), <살인의 추억> 등91년부터 지금껏 모두 세편의 싱글 앨범(피아노소곡)을 냈으며, 현재 4집 녹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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