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올드보이>의 박찬욱,최민식,유지태
2003-05-08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글 : 박혜명
사진 : 정진환

“미스터리 액션 스릴러 에로 코미디를 기대하시라.”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다기에 그럼 하겠다고 했죠.” “전 최민식 선배가 출연한다기에 그럼 내가 감독하겠다고 했어요.” 박찬욱 감독과 배우 최민식은 이렇게 만났다. 지난 4월29일 열린 <올드 보이> 제작발표회에서 털어놓은 이야기는 마치 신혼부부가 언제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됐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상대방 몰래 서로 사랑하던 이들이 마침내 약혼발표를 하며 그들의 만남을 추억하는 듯한. 듣기에 따라 낯간지러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감독과 배우의 친밀감이 관객에게 나쁠 것은 하나도 없다. 박찬욱 감독과 배우 송강호의 찰떡궁합이 입증한 대로다. <올드 보이>는 여기에 한 사람을 더한다. 최근 캐스팅이 확정된 유지태, 그는 최민식과 대결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유지태의 마음이 <올드 보이>에 끌린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박찬욱, 최민식이라는 이름이 주는 두터운 신뢰감을 따라 한자리에 앉은 그는 여전히 맑은 얼굴로 “이런 기회가 연기생활에 흔하겠나”고 반문한다.

널리 알려진 대로 <올드 보이>는 동명 일본 만화를 원작삼은 영화다. 만화는, 영문도 모른 채 사설 감금시설에 10년간 갇혀 있던 남자가 세상에 나와 누가 왜 자신을 감금했는지를 추적하는 내용이었다. 영화는 남자의 수감기간을 15년으로 늘렸고 남자를 감금한 의뢰인의 정체를 바꾸었다. 만화와 영화의 차이에 대해 박찬욱 감독은 “사설 감금시설에 갇혀 있다 복수를 계획한다는 설정만 같고 나머지는 전부 다르다”고 말한다. 여기서 최민식은 15년간 갇혀 있다 나온 오대수로 등장하고, 유지태는 오대수를 감금시킨 이우진이 된다. 처음부터 ‘누가’ 범인인지 밝히고 들어가는 이 영화는 이우진이 ‘왜’ 오대수를 감금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이 정도 정보만으로 <올드 보이>에 대한 궁금증을 일소하기는 불가능하다. 영화가 숨기고 있는 카드가 ‘왜’라면, 최민식과 유지태가 숨기고 있는 카드는 무엇일까? 그리고 박찬욱 감독이 최민식과 유지태의 내면에서 꺼내 보이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4월29일, 제작발표회가 끝나고 <올드 보이>의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

-박찬욱 감독은 최민식씨가 한다더라는 얘기를 듣고 그럼 내가 연출하겠다고 했다는데, 최민식씨와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나.

박 | 몇달 전 영화잡지 <키노>에서 최민식 선배 인터뷰 요청이 들어와서 한번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인터뷰 끝나고선 왠지 하게 될 것 같다는 감이 왔다. 예감.

-그런 예감이 든 이유는.

박 | 글쎄, 뭐 구체적인 이유가 없으니까 감이지. (웃음)

-그때 최민식씨도 그런 예감이 들었나.

최 | 인터뷰한 그날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편집이 안 된다. (웃음) 나도 감으로 <복수는 나의 것>을 보고 언젠간 우리가 만나리라… 내가 졸라야겠다! 그런 생각했었다. (웃음)

박 | 그때 인터뷰 기사는 특별했던 것이, 질문도 내가 했지만 원고도 내가 썼다. 그래서 그 기사 쓰느라고 녹취한 내용을 다시 듣게 됐는데, 현장에서 들었던 말을 다시 들으니까 더 깊은 뜻을 알게 되더라. 그런 점에 매료됐던 것 같다.

-최민식씨는, 이 작품에서 감독과 마찬가지로 ‘패키지’ 제안을 받고 준비과정부터 함께했던 걸로 알고 있다. 시나리오가 완성된 상태에서 일한 것과는 분명 다른 식으로 작품에 접근했을 것 같다.

최 | 물론 그렇다. 그리고 배우로선 그 과정이 좋고, 매우 중요하고, 고맙고,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어차피 각본은 작가와 감독이 쓰는 것이지만 중간중간에 토론하면서 배우나 PD, 작가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는 과정이 좋았다.

-최민식씨는 <올드 보이>의 오대수란 인물이 어떤 매력으로 다가왔나.

최 | 사람에 대한 연민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아, 이 자식 진짜 멋진 놈이다, 아니면 나쁜 놈이다, 그런 게 아니라. 오대수는, 결함을 가진 인물이고, 그저 세치 혀 잘못 놀렸다가 그 놀린 것에 비해 너무나 큰 피해와 고통을 당한다. 이 작품에선 그 피해와 고통이 극대화되고 영화적으로 표현됐지만 누구나 그런 경험은 있다. 뻐꾸기 잘못 날리다가 개박살난 경험. (웃음) 이 친구는 좀 심하게 당한 경우다. 대수는 감금 시설에서 나올 때도 그렇지만 들어갈 때도 자기 의지로 들어간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망가진 인간이 돼서는 터미네이터 같은 복수심을 품고 나온다. 그렇지만 복수하는 모습을 보면 서투르고 여리다. 끝까지 평범한 사람이다. 상황은 드라마틱하지만 인물은 현실적이다.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의 원작을 대할 때와 막상 작업할 때 받은 매력이 다르다고 했는데, 본인도 그랬나.

최 | 별로 그렇진 않았다. 원작만화를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3권까지만 딱 재미있고 나중엔 지루해서 안 봤다. (웃음) 그래도 더 읽으려고 했는데 PD도 재미없다고 보지 말라더라. 어차피 결말도 달라진다고. 만화에서 설정만 따오긴 했지만, 출발도 거기서 한 거니까 크게 달라진 느낌은 없었다.

-유지태씨는 상대적으로 늦게 이 작품에 합류했는데 어떻게 출연을 결정하게 됐나?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는지 궁금하다. 최민식 선배와 박찬욱 감독이 하는 작업이다, 라는 점도 있을 테고, 극중 우진이란 인물이 악역이고 강한 남자의 모습이라는 점도 있을 텐데.

유 | 지금 말한 그런 점들이 이유가 됐다. 그러나 ‘악역’이란 표현에서, 이 영화의 악역은 기존 영화들이 보여주던 악역과는 분명히 다르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모습들을 신마다 진정 어리게 하고 싶다. 화낼 땐 정말 내가 화가 나고, 슬퍼할 땐 정말 내가 슬프고. 꾸민 듯한 느낌으로는 그 캐릭터가 가진, 복수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나오지 않는다.

-박찬욱 감독은 두 배우의 앙상블에 대한 생각을 언제쯤, 어떻게 떠올리게 됐나.

박 | 원래 캐스팅할 땐 여러 사람들과 상의를 많이 하는 편이다. 그만큼 갈등과 고민이 많은 작업인데, 처음에 유지태는 실제 나이가 극중 나이보다 어리다는 점 때문에, 안타깝지만 안 되겠다, 포기하자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곧 그게 중요하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정말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면 나이가 뭐 그렇게 문제가 되나, 하는 깨달음이 온 거다. 극중에서 오대수의 캐릭터가 원한에 가득 차서 아주 공격적이고 저돌적이라면, 우진은 태풍의 핵처럼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오대수를 약올리고 조종하는 인물인데, 이런 콘트라스트를 이루는 데에 유지태가 최민식의 상대 역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유지태가 그동안 부드럽고 섬세한 역할들을 주로 해왔다면, 이번 역할은 그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정반대의 모습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이 보기에 흥미로울 것 같다. 어쨌든 근본적으로 뛰어난 배우라면 뭘 해도 잘한다. 그런 점에서 두 배우의 역할을 바꿀 수도 있는 거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엉뚱하게 나가는 게 더 재밌기도 하다. 한때 최민식 선배가 자기가 우진을 하겠다고, 역할 바꿔 달라고 어찌나 조르던지. (웃음)

유 | 우진 역은 나에게 정말 중요한 역이 될 거 같고, 이 영화는 내가 배우로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작품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잘해야지.

-유지태에 대해 칭찬을 좀 하자면, 본인도 아는 사실이긴 한데, 우진 역을 캐스팅하는 과정에서 다른 몇몇 배우들에게도 시나리오가 갔다. 원래 배우들은 배역이나 작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기준이 참 다양한데, 그 기준이라는 게 예를 들면, 제작사가 어디고, 개런티는 얼마고, 감독은 누구고, 상대역은 누구고, 대사는 얼마나 되고, 등장횟수는 몇번이고….

박 | 배급이 어디냐, 이런 것도 따지지, 요즘은. (웃음)

최 | 하여튼 뭐, 그런 것들을 따지게 된다. 그런데 이 양반은 그런 사심이 전혀 없이 날것 그대로 ‘작품과 나’를 고민한다.

박 | 유지태가 만든 단편영화도 봤다. 잘 만들었다.

최 | 마인드가 순수하다. 그건 바람직한 거다. 나도 젊었을 적엔 그랬었나 하는 걸, 이 친구 보면서 돌아보게 됐다. 많은 점을 배운다. 고맙다.

유 | 칭찬해주셔서 감사하다. (웃음) 개인적으로 지금 이때가 정말 행복하다. 존경하는 선배와 감독을 만나 함께 작업하는 이런 기회가 연기생활 하면서 흔하겠나. 이 시간들을 잘게 쪼개서 하나하나 다 먹고 싶은 심정이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떨린다. 첫 리딩 전날엔 잠도 못 잤다. 그래서 리딩을 잘 못했다. (웃음) 지금 이 떨림과 긴장이 영화에 잘 반영됐으면 한다. 내가 있어서 좋은 앙상블이 나왔으면 좋겠다. 선배님과 감독님께 누가 안 되게.

-박찬욱 감독은, 최민식과 유지태씨에 대해 그냥 이전에 느낌으로만 알았던 모습과 직접 작품을 하면서 느끼는 차이가 있나. 아니면 이번 영화에서 이 배우를 어떻게 해봐야겠다, 라고 염두에 두고 있는 점은.

박 | 다른 거 못 느끼겠다. 오히려 일하기 전에 생각했던 것과 비슷하다고 느낀다. 좋은 배우들이 가진 공통점이랄까, 그런 걸 느꼈는데, 말하자면 작품에 대한 탁월한 해석력이나 작품에 대해 보이는 성의, 독창성, 그런 것들. 실은 어제도 콘티작업 하다가 최민식 선배한테 어떤 얘기를 듣고 오늘 아침에 그 말대로 콘티를 고쳤는데 결과적으로 더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감독들은 항상 좀더 새로운 표현을 위해서 고민하고 대본과 콘티를 수정하지만 보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다. 좋은 배우들은 그 지점들을 발견한다. 각본에 대한 집중력을 갖고 단 한줄에 담긴 표현이나 의미까지 생각하면서 독창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훌륭한 배우들의 공통점인 것 같다.

-전에 했던 인터뷰에서 최민식을 송강호와 비교하면서 온도 차이, 즉 송강호가 차갑다면 최민식은 뜨겁다고 표현을 했는데,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박 | 그거는 그냥 재밌으라고 한 건데. (웃음) 그렇게 정확히 나뉘는 건 아니지만 굳이 비교를 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당연히 송강호에게도 열정적인 면이 있고 최민식에게도 냉정함이 드러나는 순간이 있지만, 내가 송강호에게서 매력을 느꼈던 순간을 생각하자면 그런 냉정한 모습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일단 그 생김새가…. (웃음) 그, 특히 눈… 최민식은 눈이 귀엽잖나. 근데 송강호는 눈이…. (웃음)

최 | 일전에 차 타고 지나가다가 <살인의 추억> 버스 광고를 봤는데 송강호랑 김상경이 이렇게 딱 노려보고 있는 거라. 놀라 갖고, <조용한 가족>에서 나오는 송강호 대사 ‘뭘 그렇게 무섭게 쳐다보나?’ 이 말이 딱 생각나더라니까. (웃음)

-작품 성격도 그렇게 대비되는 것 같다. <복수는 나의 것>이 차갑고 건조하다면, <올드 보이>는 뜨겁고 격렬할 것 같다는.

박 | 뜨겁다. 뜨겁고, 표현이 풍성하다.

-그럼에도 닮은 듯하다. <복수는 나의 것>을 만들면서 하드보일드란 장르를 취했었는데, 이 영화도 외적으로 봐서는 하드보일드의 느낌이 있다.

박 | <복수는 나의 것>이 ‘하드’에 강세를 두고 있다면, <올드 보이>는 ‘보일드’에 강세를 두고 있을 거다. 그렇지만 내가 만약 평론가로서 이 영화를 객관적으로 말한다면 하드보일드 장르로 분류할 것 같진 않다.

-주인공이, 누가,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지를 추적해가는 내러티브 구조가 탐정 이야기 같다는 인상을 줘서 그런 거 같다.

박 | 하지만 표현 양식은 다르니까.

-그건 아까 말한 스타일면에서 풍부하다는 얘기인 것 같은데, 어떤 점들이 그러한가.

박 | 일단 대사가 <복수는 나의 것>보다 50배는 많을 거다. 음악도 많이 사용할 생각이고, 멜로디도 선명히 들리게 할 거다. 그래서 짧게 들어도 쉽게 기억할 수 있게. 악기 음색도 잘 드러나도록 할 생각이고. 숏 수도 900개 정도 될 것 같다. 카메라 움직임도 많다. 색깔도 강렬하게 간다. 미술팀이 당황할 정도로. 연기도 모노톤이 아니라 진폭이 크고 변화가 많은 쪽에 초점을 둔다. 한신 안에서도 그런 변화들이 뚜렷이 보일 거다. 특히 우진의 캐릭터는 분노와 조롱과 상대에 대한 연민이 복합적으로 섞여서 순간순간 드러난다. 실내세트 촬영도 훨씬 많다.

-그래도 여전히 <복수는 나의 것>과 연장선상에 있어 보인다. 복수가 생존의 이유가 되는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 비클처럼 강박관념을 지닌 인물이다. 작업을 준비하면서 똑같은 이야기를 다시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순간이 있었을 것 같은데.

박 | 전혀 아니다. 오히려 완전히 딴 영화 하는 기분이었다. 물론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이해는 한다. 겉을 보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영화를 보여줘야 설명이 되겠지만 아주 반대다. <복수는 나의 것>은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보는 영화다. 하지만 <올드 보이>는 밀착해서 보는 영화다. 그리고 난 영화를 선택할 때 이번 영화는 전 영화와 분위기와 얼마나 다른가, 하는 걸 기준으로 삼는다. 했던 거 또 하면 재미없다. 난 싫증을 잘 내는 편이고, 그런 반작용선에 있어 왔다.

최 | 진짜 다르다.

박 | 이번 영화의 스토리보드 아티스트가 <복수는 나의 것>을 작업했던 사람인데 그 사람조차 당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수의 바스트숏을 간다고 하면 그 사람은 나랑 한번 작업해본 경험이 있으니까 나름대로 생각해서 뭔가를 그린다. 그럼 내가 그게 아니라 이렇게 갈 거다, 라고 말하고 그 사람은 무척 당황한다.

-지난번 인터뷰에서 <올드 보이>의 최민식씨에 대해 ‘<파이란>의 강재로 등장해서 <쉬리>의 박무영으로 퇴장한다’로 표현한 적이 있다.

박 | 그거 웃자고 한 소린데. (웃음)

최 | 아니 사실은, 강재로 등장했다가 그냥 강재로 나간다. (웃음) 중간에 <조용한 가족>의 삼촌으로 잠깐 가고, 다시 강재로 돌아오고. 완전히 망가져가지고는.(웃음)

-대수는 포스터에 나온 저 헤어스타일(흑인처럼 위로 잔뜩 부풀린 헤어스타일)로 가나.

박 | 저게 포스터로 보니까 저렇게 멋진데, 실제로 보면 되게 웃긴다. (웃음)

-포스터로 봐도 웃기다. (웃음)

최 | 처음에 저 머리 스타일 제안받고, 야, 내가 무슨 양동근이냐, 그랬다.(웃음) 저건 요즘 젊은이 컨셉인데, 난 염색도 안 해본 사람이다. 너무 작위적인 거 같기도 하고. 근데 막상 해보니까 우리 작품 스타일과 크게 다르지 않더라. 실제 영화에 들어가면 좀더 다듬고 자연스럽게 하긴 할 거다. 15년 동안 감금당한 사람이 그 사이에 미용실 가서 단장할 것도 아니고. (웃음)

박 | 머리만 봐도 캐릭터가 변화하는 걸 알게 된다. 네번 정도 바뀐다.

-체중 감량도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영화 끝까지 유지되나.

최 | 감금 시설에 들어가기 전엔 그저 퉁퉁하고 평범한 인물인데 15년 동안 감금당해 있으면서 변화가 생기는 거다. 처음엔 더 살이 쪘다가 그 생활에 적응하면서 정신도 차리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복수를 결심하면서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신체를 단련한다. ‘어느 놈인지 몰라도 느그들은 다 죽었다’ 이러는 거지. (웃음) 가능한 한 대본이 원하는 선에 맞추려고 노력 중이다.

박 | 의상, 헤어스타일, 특수분장… 어쨌든 여러 가지를 동원해서 인물의 변화를 보여주게 될 거다.

-체중은 진짜 많이 줄였나보다.

최 | 안 그러면 명백한 계약 위반이 돼버리니까. (웃음)

-이번에 <지구를 지켜라>에 관한 대담을 할 때, 투자사에서 전작이 흥행 안 됐던 감독들이니까 이번엔 될 거라고 말한다고 했는데….

박 | 그것도 웃자고 한 소린데. (웃음) 농담을 심각히 받아들이는 통에…. 그건 공교롭게도, 쇼이스트에서 작품 준비 중인 나, 곽경택 감독, 박기형 감독이 모두 그런 케이스라 그런 거였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내가 크게 충격을 받아서 대단한 결심을 했다, 그런 얘기는 아니다.

최 | 하지만 개인적으로 <올드 보이>가 대박났음 좋겠다. 진짜로, 절실하게 바라고 있다. 물론 어떤 배우도 본인이 하는 영화를 ‘망해라’ 이러지는 않겠지만, 박찬욱 감독뿐 아니라 곽경택, 허진호, 그리고 <장화, 홍련> 준비 중인 김지운까지 이른바 모두 선수들이잖나. 선수들 작품은 다 대박났음 좋겠다. 그게 우리가 같이 먹고살 수 있는 공생의 길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대박을 위해 우리가 의도적으로 특별한 버전을 준비한다는 건 아니다.

박 | 몇년 사이, 인터뷰를 당하면서 영화가 잘되든 못 되든 흥행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그런 걸 왜 물을까, 하고 감독들끼리 얘기하다 보니 우리도 어느새 흥행에 관심이 많아져 있었다. 시사회 갔다와서는 그거 몇만이나 들 거 같냐, 이러고, 개봉할 때쯤 되면 그거 예매 얼마나 됐냐, 그러고.

최 | 제작사와 투자, 배급사 그리고 작가(감독) 사이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결정적인 지점이 흥행인 것 같다. 냉정한 현실이다. 좋은 작가들이 단순히 흥행이 안 된다는 이유로 자본이나 기회에서 멀어지고, 배우들도 대박이 나야 좋은 캐스팅 제안이 들어오는 상황이 안타깝다. 그러니까 선수들 작품이 대박나야 더 좋은 의사소통을 유지할 수 있다.

-<올드 보이>는 장르로 정의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박 | 홍보하는 쪽에선 ‘미스터리 액션 드라마’라고 하긴 했는데, 그것도 틀리진 않은 것 같다. 근데 스토리보드를 만들면서 뜻밖에 만화적인 면들이 보이긴 했다.

최 | 미스터리 액션 스릴러 에로 코미디. (웃음)

-에로가 있나.

박 | 있다.

최 | 당연히 있다.

박 | 포스터 보고 느껴지는 거 없나? (모두 웃음) 우진이가 오대수만 만나면 벗어, 아주….

유 | 아, 진짜네. (웃음)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완성됐을 때 어떤 모습이었으면 하는지, 세분의 바람을 말해달라.

박 | 이 영화가 가진 독특한 세계가 잘 반영됐음 좋겠다. 우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렇게 오랜 세월 갇혀 있었다는 건 겪어보지 않은 사람으로선 그 심정을 모른다. 그건 누구도 경험하기 힘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대수가 조금 심하게 극단적인 행동들을 많이 보여도 그런 걸 관객이 보면서, 아, 저런 경험을 한 자라면 저러고도 남음이 있어, 라는 마음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우진도 마찬가지다. 우진은 어릴 때 받은 상처가 평생 지속되고 그것에 집착하고 그것으로부터 고통받는 캐릭터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보여주는 이해 안 가는 행동들도, 같은 식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유 | 영화를 하는 맛은, 고정관념과 선입견이 깨질 때 온다. 인생도 그렇듯이. 고여 있는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 흘러가 있는. 지금은 정확하게 형용할 수 없지만 그런 느낌이 있다.

최 | 이번 작품에도, 감독 전작들이 그랬듯이 박찬욱 특유의 유머가 있다, 아주 기기묘묘하고 포복절도할 만한. 그런 유머가 이 영화의 전부가 아니지만, 어쨌든 재미있게 봐줬으면 좋겠다. 아주 재미있게. 정말 재미있고 스타일리시한 영화가 될 거다. 정신없이 웃다가, 어느 순간 욱, 하다가, 결국 다 보고 극장을 나가면서 ‘아, 정말 인생 똑바로 살아야 되겠다’ 하는. (웃음) 가슴속에 뭔가 생각할 여지를 남겼으면 좋겠다.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잔인한 복수극이 될 거다. 여기서 잔인하다는 건, 골이 쪼개지고 내장이 나오고 사방에 피가 튀고 하는 차원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극한의 심리가 드러난다는 의미다. 물론 그것이 극대화되고 영화적으로 표현되긴 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결함과 감정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무섭고 슬픈 것인가가 보여진다. 그런 점들을 재미있게 봐주고 또 연민을 품어주길 바란다. 그리고나서 아, 이 영화가 장난이 아니구나, 이 영화가 말하고 있는 이야기에 뭔가 있구나, 하는 점을 느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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