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쿨한 여전사 재장전,<매트릭스2>의 캐리 앤 모스
2003-05-29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에이리언>의 시고니 위버가 똑똑하고 끈질긴 여전사였다는 것에 토를 달기 어려우나 그는 늘 공포감을 달고 지냈다. <터미네이터>의 린다 해밀턴은 근육질의 터프함까지 갖췄으나 그 역시 좌불안석이긴 마찬가지였다. 이들에 비하면 캐리 앤 모스의 트리니티는 너무나 ‘쿨’한 파이터다. 네오와 모피어스에 대한 신뢰, 게릴라라는 초라한 처지에 아랑곳하지 않는 의지는 굳게 다문 입과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증명된다. <매트릭스>와 <매트릭스2 리로디드>를 통틀어 딱 한번 흔들렸던 것 같다. <매트릭스> 오프닝 시퀀스에서 요원을 피해 건물 창으로 날아든 다음, 총을 겨누며 잠시 꿈쩍도 안 한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일어나자고 혼잣말로 용기를 내더니 그제야 트리니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가 처음부터 돌처럼 단단했을 리 없다. 캐나다 밴쿠버의 소녀 시절, 그는 평범한 옷을 입지 않으려고 ‘투쟁’하기 일쑤였다. “늘 드레스를 입었다. 심지어 고등학생 때도.” 그랬던 그녀가…. 여행다닐 때 단출한 가방 하나면 그만이고, 컬러풀한 립스틱 대신 체리 챕스틱을 가지고 다닌다. “난 화장을 증오(hate)한다. 아름다움은 깨끗하고 건강한 얼굴에서 나오는 것이지 화장으로 감추는 데서 오는 게 아니다.”

자신을 스타덤에 올려준 트리니티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써먹으려는 속보이는 전략은 아닌 것 같다. 배우 이전에 그는 모델이었고 그 시절부터 이미 마스카라를 하거나 컬러풀한 립스틱을 바른 적이 없다.

강해 보이기만 하면 전부냐고, 그건 마초 이미지의 역발상이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겠다. <메멘토>에서 바텐더이자 마약딜러를 남자친구로 둔 ‘나탈리’를 보자. 그는 10분 이상 기억을 못하는 딱한 남자를 돕는 듯 이용한다. 그 이미지는 단조로움과 거리가 멀었다. “나탈리는 흑인도 백인도 아니며,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다만 아주 빌어먹을 상황에 처한 인간이다. 길을 잃어버린 처지인데 난 그게 좋았다.”

<…리로디드>에서 특유의 쿨한 표정이 액션만큼이나 멋져 보이는 순간은 모터사이클에 키메이커를 태우고 고속도로를 역주행할 때다. 워쇼스키 형제가 몰랐을 리 없다. 그가 세 주연 중에 모터사이클에 대한 공포가 가장 심했다는 걸. 모스는 몇 개월 동안이나 모터사이클을 연습했지만 촬영에 들어가자마자 극도의 공포에 시달렸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몇번이고 멈춰서야 했다. 어쨌든 난 해내야 했다. ‘오…, 난 이거 할 수 없어’ 했다가 ‘빌어먹을, 좋아, 난 할 수 있어. 캐리 앤, 넌 오늘 네가 누군지 따위의 신경증에 빠져들어선 안 돼. 이건 아주아주 중요한 장면이라구’라고 다짐하면서.”

사실 2편의 ‘고난’은 훨씬 일찍 시작됐다. “트레이닝을 시작하자마자 내 다리는 부러졌고, 두 배우가 죽었다. 갑자기 혼란스러워지지 않겠는가. 하지만 제작에 참여한 모든 친구들이 다 그랬듯 무언가에 도전받았을 때, 그것이 육체적인 것이든 감정적인 것이든 이겨냈고 새로운 뭔가로 바꿔냈다.” 그의 친구들은 모스를 가리켜 ‘돌파 걸’로 부른다. 또 미국의 미디어는 그를 ‘액션 걸’로 부른다.

‘액션 걸’이 36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올누드 러브신(물론 키아누 리브스와)을 했다. 그의 어머니가 영국 록그룹 ‘더 홀리즈’(The Hollies)의 히트곡 <Carrie Anne>을 듣고 그대로 이름에 갖다붙였을 때, 딸의 극적인 인생을 예감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매트릭스> 이후 나는 선글라스를 쓸 수 없게 됐다. 선글라스를 쓰는 순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날 알아본다.” 매트릭스 바깥의 현실에서도 ‘쿨’한 그가 이런 것에 너무 기뻐하지도 불편해하지도 않을 것 같다.

“20대 후반에 나이가 드는 것에 겁을 먹은 적이 있다. 그때 결심했다. 젊음에 집착하는 비극적인 여배우는 되지 않겠다고. 난 나이에 대해 거짓말한 적이 한번도 없다. 난 지금이 더 아름답다고 느끼는데 예전보다 더 확신에 차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수억달러를 준다 해도 20대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사진제공 SYG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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