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젤 워싱턴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고나서 “흑인 배우들에게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아카데미는 어디까지나 하룻밤 이벤트”라는 말로 섣부른 희망을 경계했다. 워싱턴은 시드니 포이티어 이후 38년 만에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쥔 흑인배우였고, 그 기다림이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위기 혹은 환호의 순간 앞에서도 냉정한 남자. 줄리아 로버츠가 “일종의 존재론적 초월”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 워싱턴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자연석으로 쌓아올린 고대 마야의 성벽처럼, 온기가 느껴지면서도 견고하다. 그는 영화 속에서나 현실로 돌아와서나 기대고 싶은 어른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는 “누군가의 삶의 근거가 된다는 것, 당신들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결코 알지 못할 거다”라고 백인 기자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워싱턴이 처음으로 연출한 <앤트원 피셔>는 이런 점에서 그 자신과 떼어놓을 수 없는 영화다. 그는 빠듯한 제작비와 카메라 뒤에 섰다는 불안에 시달렸지만, 단 한 가지 목적만은 잊지 않았다. “<앤트원 피셔>는 나를 위한 영화가 아니었다. 나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어린 소년 앤트원, 그를 돌봐주고 싶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수없는 상처 속에서 홀로 성장한 앤트원은 나이를 먹고나서 자신의 과거를 시나리오로 썼다. “한장한장마다 눈물이 배어나왔다”고 회상하는 워싱턴은 앤트원에게 아버지처럼 다가가는 제롬을 어떻게 연기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카메라를 움직이고 어떻게 감정을 전달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를 찾는 전화가 한통도 오지 않는다면, 영화를 만드는 것말고 무얼 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해왔던 워싱턴은 예상보다 빨리 감독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20년 동안 준비를 해온 사람이었다. “촬영하면서 날마다 ‘오마주의 날’을 정했다. 오늘은 스파이크 리, 오늘은 스티븐 스필버그… 이런 식으로. 나는 함께 일했던 감독들의 재능을 몽땅 도둑질한 것이다!”
그러나 감독들이 그를 탓할 리 없다. 편견 때문에 억울한 옥살이를 했지만 벽 속에 갇혀 증오를 털어낸 <허리케인 카터>를, 셰익스피어 원작에 흑인 왕자를 끼워넣은 위험한 시도를 범접 못할 위엄으로 다진 <헛소동>을, 불굴의 영혼을 가진 위대한 선동가 <말콤X>를 , 그가 아니었다면 누가 대신할 수 있었을까. <영광의 깃발>의 감독 에드워드 즈윅은 “카메라가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덴젤 워싱턴은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배우다”라고 말했다. 한때 저널리스트가 되려 했던, <뉴스위크>가 완벽한 유전자가 구축한 외모의 표본으로 지명했던 이 잘생긴 배우는 틈새를 허용하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운 완력으로 카메라와 관객을 끌어들인다. 그 때문에 어떤 흑인들은 백인보다 우월한 그 품위를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워싱턴은 인종차별을 희화화한다며 쿠엔틴 타란티노와 설전을 벌였고, “나는 흑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앤트원 피셔>를 연출했다. 남부지방을 여행하면서 받은 차별을 아직도 기억하는 워싱턴은 흑인으로서 흑인의 영화를 만들었고, 자리찾기가 힘든 흑인배우들을 다독이며 재능을 키워나갔다. 그는 토니 스콧과 함께하는 <맨 온 파이어>에서 어린 소년을 보호하는 전직 군인으로, 인종과는 상관없는 영역으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자신을 잊지 않는 지도자다. <앤트원 피셔>의 프로듀서 토드 블랙은 “덴젤 워싱턴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워싱턴은 침묵하는 순간에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