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알아봤을 수도 있겠지만, 레이 리오타가 맞다. 유난히 짙은 눈매가 그대로다. 살이 쪄서 덩치는 커졌고 못 보던 수염을 기른데다 머리도 벗겨졌지만. 10년은 더 늙어 보이고 그의 나이를 착각했었나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13년 전 마틴 스코시즈의 <좋은 친구들>에서 마약밀매로 잘 나갔던 갱조직원 헨리 힐, 레이 리오타가 맞다. 어둡고 거친 범죄스릴러 <나크>에서, 정신병적일 만큼 과격한 다혈질이며 오랜 형사생활에 닳고 닳은 인간 헨리 오크는 레이 리오타이다.
시각적 자극에 민감한 이 업계에서 여러 인터뷰들이 가장 먼저 다룬 이야기는 리오타의 외적 변신이다. “부인을 잃고 성격이 험한 사람은 스테이크보다 햄버거나 피자가 어울린다. 그래서 11kg을 찌우고도 옷 안에 패드를 덧대서 몸집을 크게 불렸다. 집착이 강한 인물이라 늘 수면부족일 테고. 눈가의 분장은 그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크는 리오타보다 열살 정도 많은 인물이라서 “머리 위쪽을 일부러 밀어버렸다”. 그러나 레이 리오타와의 재회로 가슴이 울렁이는 진짜 까닭은, 선악의 구분이 불명확한 이 캐릭터를 더욱 복잡하고 인상적이게 한 그의 연기 때문이다. 리오타는 커다랗고 쉰 목소리로 욕설과 악다구니를 후렴구치듯 반복한다. 사건 현장에서 만난 여자아이에게 부성애를 보일 만큼 인간적이면서도 일단 한번 ‘돌아버리면’ 눈에 뵈는 게 없는 난폭한 인간. 여기에 늙고 거대한 외모가 더해졌으니, 감독 조 카나한의 말처럼 “레이 리오타의 본래 흔적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배우가 각인된 이미지를 운명으로 짊어진다면, 86년 조너선 드미의 우울한 코미디 <섬씽 와일드>에서 마음이 떠난 아내에게 강하게 집착하는 남편이 리오타에겐 운명적 역할이었는지 모른다. 생애 최고의 배역을 맡은 <좋은 친구들>을 계기로 크게 약진할 듯했던 그는 도리어 초라해져갔다. 눈가에 그늘을 드리우고 광기를 드러내는 인간형은 타락한 경찰(<무단침입>)이나 연쇄살인범(<터뷸런스>)으로 단순 반복됐고, 우피 골드버그의 상냥한 애인(<코리나, 코리나>) 혹은 전설적인 야구선수(<꿈의 구장>) 같은 ‘외도’도 그를 빛나게 하진 못했다. “바쁘게 살아오긴 했어도 좋은 시나리오를 받아보진 못했다. 정말 하고 싶었던 영화 <L.A.컨피덴셜>은 러셀 크로에게 갔고, 난 능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좋은 기회들을 놓쳤다.”
영화 <나크>의 시나리오를 만난 계기도 이런 상태에서 비롯됐다. “좀더 적극적으로 일하고 싶어져서 아내(배우 겸 프로듀서 미셸 그레이스)와 프로듀서인 다이앤 나바토프와 함께 제작사 티아라 블루 필름즈(Tiara Blu Films)를 차렸다. 이 대본은 그때 받았다.” 그를 끌리게 한 이 영화는,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진 해크먼이 전성기를 누리던 70년대의 안티히어로영화들을 닮아 있었다. 어렵게 투자를 받아 제작된 <나크>는 2002년 선댄스영화제에서 평단과 관객의 관심을 모았고, 카나한의 연출력과 리오타의 열연에 대한 호평은 톰 크루즈와 폴라 와그너에게까지 흘러들어갔다. 자금사정 때문에 배급을 걱정하던 이들에게 톰 크루즈는 총제작지휘 타이틀에 자기 이름을 걸고 해외배급을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흥미로운 스릴러’라는 칭찬과 함께 그가 자발적으로 내놓은 제안이었다.
붙임성 있고 긍정적인 리오타는 지난 몇년간의 슬럼프를 솔직유쾌하게 받아넘긴다. “기복이 심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런 건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없는 사람이 드물 거다. 다시 상황이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 좋은 시나리오도 들어오고 있고, 사람들도 나에 대해 이야기한다.” <좋은 친구들>의 ‘언덕(힐)’에서 자란 <나크>의 ‘떡갈나무(오크)’는 이제 그 언덕만큼 당분간 특별한 기억이 될 것이다. “거칠게 폭발하는 감정 연기는 매너좋은 신사 연기보다야 당연히 쉽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에겐 상처받고 엇나간 캐릭터들이 더 쉽게 기억된다.” 그리고 덧붙였다. “이쪽 일이 좋은 이유는, 나한테 절대 올 것 같지 않은 순간이라는 게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정말 할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