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말죽거리 잔혹사>의 배우 한가인
2003-07-02
글 : 문석
사진 : 이혜정
“1주일이 8일 같아요”

이제 알 만한 사람들은 알게 됐지만, 한가인(21)은 ‘박카스 걸’이란 칭호로 더 유명하다. 지금은 숱한 CF와 TV드라마 <노란 손수건>으로 스타덤을 향해 발돋움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박카스 CF에서 버스 안에 다소곳이 앉아 있던 깊은 눈망울의 여성으로 한가인을 기억한다. 아마도 그건 한 남자로 하여금 친구를 저버리는(?) 결정을 내리게 할 만큼 싱그러웠던 그녀의 모습이 인상적이라는 이야기.

어쩌면, 올해 하반기쯤 한가인의 별명은 바뀔지도 모른다. ‘말죽거리의 올리비아 핫세’로. 물론 영화 데뷔작인 <말죽거리 잔혹사>가 성공적이라면 말이다. 6월 말 크랭크인한 이 영화에서 그녀가 맡은 역할은 70년대 말죽거리 인근의 한 여고에 다니는 유진이다. 당대 최고의 스타 올리비아 핫세를 연상케 하는 외모 때문에 인근 학교 뭇 남학생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그녀는 현수(권상우)와 우식(이정진)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한가인에겐 좋은 징조인지, 묘하게도 <말죽거리…>에는 박카스 CF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현수와 유진의 인연이 만들어지는 공간은 통학길 시내버스이며, 현수와 우식의 우정도 유진이 등장하면서 금이 가기 시작하니까.

하지만, 영화에서까지 CF 이미지를 밀어붙일 수는 없는 탓에 한가인의 마음은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차라리 욕심을 부리지 말고 마음을 비워야겠다.” 스스로에 대한 목표치를 낮추면 실망감도 덜하지 않겠냐는 얘기다. 그래도 그녀가 신인 특유의 조바심보다는 차라리 여유라 할 만한 마음가짐을 갖게 된 데는 <노란 손수건> 출연이 큰 역할을 했다. “일일드라마다 보니 소화해야 할 분량이 많고, 감정을 이어나가기도 쉬우며, 쟁쟁한 선배 연기자들과 호흡을 맞출 수 있어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말죽거리…>의 유진이 “순수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면서도 당찬 구석이 있는 캐릭터라 꼭 맡고 싶었다”는 한가인은 이 선택에 대한 다소 부담스런 ‘책임’을 져야 한다. 1주일에 4일 동안 서울에서 드라마 촬영, 사흘은 군산과 전주 등에서 영화 촬영, 사이사이 CF 촬영, 토요일 저녁 <연예가중계> 생방송 진행 등 보는 것만으로도 숨가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1주일이 8일 같다”는 푸념섞인 비명도 이해가 된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재밌다. 아무래도 젊으니까 많은 걸 해보는 것도…”라고 말하는 데선 팔이 심하게 부러지면서도 스노보드를 탈 정도로 적극적인 성격이 드러난다.

그가 이처럼 정열을 불태우려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연기자라는 길이 일종의 운명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고3 때인 2000년까지만 해도 한가인의 꿈은 호텔리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찾은 방송기자와 고교 평준화에 관한 인터뷰를 했는데, 뉴스가 나가자마자 여러 매니지먼트사로부터 섭외가 쏟아졌다. 당시만 해도 별 관심이 없어 제안을 간신히 뿌리쳤지만, 몇 개월 뒤 어느 백화점 로비에서 우연히 마주친 현 소속사 직원의 설득으로 ‘자의 반 타의 반’ 연예계의 문지방을 넘게 됐다. 이후에도 “내 일이 아닌 것 같아” 많은 갈등을 했지만, 이상하게도 고비 때마다 우연한 일이 터져 서서히 연기자로서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쌓아가게 됐다. “그래도 아직은 미래에 어떻게 되겠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게, 그렇게 안 될 수도 있잖냐”고 말하는 한가인에게선 스타로서의 자의식보다 기초공사부터 차근차근 다져가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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