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만큼 못 날아? 호랑이만큼 안 세? 그럼 넌 아무것도 아니야.” <파이란>이 극장에 걸린 거리를 지나며, 요즘 그는 비로소 ‘첫걸음을 떼었다’라고 생각한다. 연기경력 12년째. 방송, 연극, 영화를 두루 오고간 그이지만, ‘빠떼루’ 자세 잘도 취하는 양아치 경수와 더불어, 그는 비로소 배우다운 표정을 제 얼굴에 담아냈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 영화, 흥행이 잘되니까 가슴이 후벼파지대요.” 인정받지 못하면 전의를 불태우는 공형진. <쉬리>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나서, 나락까지 내려가 “바닥을 쳤다”는 그는 자학일 수도 있는 혹독한 시선 하나를 스스로를 향해 품고 사는 인물이었다.
스스로가 맘에 안 들면 스스로를 가차없이 다루는 버릇으로, 공형진은 때때로 자기자신에게 이야기하며 살았던 것이다. 독수리만큼 높이 날아야 한다고, 호랑이만큼 세야 한다고. <파이란>에서 경수를 연기하면서 그는 “깡패 같은 것을 배제하려고” 애를 썼다. 너무 힘을 줘 ‘오버’가 되지 않도록 하면서 적절히 힘을 빼 ‘리얼리즘’을 살릴 수 있는 경계를 찾고자 했던 것이다. 최민식은 그런 그에게 ‘독수리’, 혹은 ‘호랑이’였다. “너 잘만 노력하면 숀 펜 같은 배우 될 수 있겠다.”
언젠가 낙원동 국밥집에서 최민식이 그에게 했던 말. <에쿠우스> 때부터 좋아했던 최민식과 함께 연기하면서 그는 독수리가, 호랑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했고 자신 안에 있는 연기의 본능을 조금씩 일깨웠다. “그때, 형, 왜 그런 말을 했던 건가요.” “순 양아친줄 알았는데 아닌것 같아서.” 그는 대학 2학년 때 하이틴영화 <그래, 가끔은 하늘을 보자>로 영화데뷔를 했다. 이듬해에는 SBS 공채 1기 탤런트로 방송사에 들어갔고, <사랑하는 당신> <사랑의 조건> <사랑의 생방송> 등 드라마를 했다. 영화도 계속해 <신장개업> <박하사탕>에 출연했다. 영화출연과 함께 그는 유시어터에 정식 단원으로 들어갔다.
그냥 들어갈 수 있었지만 오디션을 봐서 들어갔다고. “연극만큼 하는 순간 짜릿한 건 없다”는 그는 <택시드리벌> 무대에 섰고, 영화와 함께 연극연기를 계속할 생각이다.웃기기 위해 웃기는 코믹연기, 지금도 3편의 시나리오가 그런 연기를 원하며 그의 손에 놓여 있지만, 공형진은 신중하게 “사람냄새” 나는 캐릭터만을 받아들일 태세다. 경수를 통해 끄집어낸 사람냄새를 그는 당분간 계속 지우지 않고 싶은 것이다.
<파이란>의 전작인 <선물>은 코믹연기를 많이 해온 그에게 조금은 묘한 영화였다. 3류 개그맨이라니. 웃기려고 노력을 하는데 못 웃겨야 하겠지, 생각은 했으나 정말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개그가 안 웃기는 거였다. “가열차게 살면서 벌어지는 상황은 웃길 수 있겠죠. 하지만 웃기려고 일부러 하는 대사는 아닌 것 같아요.” ‘빠떼루’ 자세를 취하며 슬플 수 있었고, 숏트랙 동작을 애드리브로 집어넣으면서도 경박하지 않을 수 있었던 <파이란>은 그래서 그에게 소중한 작품이다. 그런 게 정말 코미디가 아닌가. 공형진은 인터뷰 내내 자세를 흐트러트리지 않으며 진지한 ‘자기점검’을 하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