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웃기는 게 다는 아니지, <브루스 올마이티>의 짐 캐리
2003-07-24
글 : 박혜명

98년 <트루먼 쇼> 개봉 뒤 미국 평론가들은 짐 캐리에 대한 배우론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기괴한 표정과 과장된 몸짓이 전부인 줄 알았던 코미디언이 알고보니 진지한 연기세계를 갖추고 있다더라 하는 것은 말 그대로 드라마틱했다. 클럽 출신의 3만5천달러짜리 스탠드업 코미디언에서 단 세편의 영화(<에이스 벤츄라> <마스크> <덤 앤 더머>)로 2년 만에 2천만달러짜리 A급 스타가 된 배우. 진지한 연기자로 인정받고 싶은 욕심 때문에 개런티를 8백만달러나 깎아가며 도전했던 <트루먼 쇼>가 제몫을 다한 셈이었다. 그뒤 짐 캐리는 <맨 온 더 문>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 <그린치> <마제스틱> 등 코미디와 드라마를 좀더 편하게 오갈 수 있었다. 그러나 <맨 온 더 문>과 <마제스틱>은 이전만큼 감동적이지 못했고, 한동안 모습이 뜸했던 그의 컴백 자리엔 특유의 코믹한 자세와 표정을 담은 포스터가 놓여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브루스 올마이티>는 ‘코미디언 짐 캐리’의 귀향처럼 보인다. 그는 이 영화에서 <에이스 벤츄라> <라이어 라이어>의 감독 톰 섀디악, <인 리빙 컬러> <에이스 벤츄라2>의 작가 스티브 오데커크와 재회했다. 말할 필요조차 없는 <에이스 벤츄라> 시리즈를 제외하더라도, 90∼93년에 걸쳐 방영됐던 <인 리빙 컬러>는 캐나다 출신의 무명 연기자 짐 캐리를 미국의 인기 코미디언으로 단숨에 띄워버린 케이블TV 쇼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고향 친구들’과 함께 자신의 뿌리로 돌아온 그의 진짜 이유를 말이다.

그건 <트루먼 쇼>의 트루먼 버뱅크가 그랬던 것처럼 <브루스 올마이티>의 주인공 브루스 놀란이 짐 캐리의 현재 삶과 묘한 대구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웃기는 일만 취재하러 다니는 ‘웃기는 리포터’ 브루스 놀란은 사람들이 자신을 진지하게 봐주지 않는 게 불만이었지만 그토록 원했던 뉴스 앵커도 맞는 자리는 아니었다. 브루스는 결국 ‘웃기는’ 곳으로 되돌아갔고, 그건 짐 캐리의 선택인 듯도 했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지만, 나에게는 항상 다양한 기회가 있었던 것뿐이다. 나한테 별로 안 어울려 뵈는 영화에 개런티 좀 적게 받고 출연했을 때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걸 할 수 있다고 믿을 것인지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모든 건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버스터 키튼이나 찰리 채플린이 존재하는 할리우드 정통 코미디언 계보 속에 끼워넣기에 그는 모양이 조금 다른 퍼즐 조각이었던 것이다. “난 그런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창조적인 일을 해온 사람들의 틈에 끼워준다면 고맙겠지만 솔직히 내 커리어는 그런 종류의 레이더망 아래에 있었다.” 그의 동료들이 한번씩은 출연했던 미국의 쇼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에도 그는 출연한 적이 없고, ‘코미디 스토어’라는 유명한 클럽 무대에서 활동했어도 커다랗게 그의 사진이 걸린 적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사람들이 코미디언 백서를 펼쳤을 때 내 이름은 거기 없겠지만, 그렇게 규정되고 나면 당사자는 그 안에서 같은 일을 어느 정도 반복하게 된다. 그러다 지치는 것보다는 지금처럼 애매하게 남아 있는 것이 좋다.”

오래된 젓가락이 집기 편한 건 당연하다. <마제스틱>을 개봉하면서 앞으로 또 다른 괴짜 코미디를 하겠냐는 질문에 그는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했고 자기 자신의 일부와도 같은 코미디를 외면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브루스가 받은 신의 능력보단 못해도, 짐 캐리에게 코미디에 관한 독보적인 연기 재능이 있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스스로를 애매한 위치에 놓는 그의 태도 역시 갈수록 더해가는 듯하다. 최근 촬영을 마친 <이터널 선샤인 오브 더 스팟리스 마인드>는 또다시 드라마이다. 게다가 <존 말코비치 되기> <어댑테이션>의 작가 찰리 카우프만이 각본을 썼다. “맛있는 과자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사람들이 항상 좋아할 수 있는.” 그것이 꼭 코미디언일 필요는 없다는 걸 우리만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사진제공 브에나비스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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