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매력적인 육체의 다양한 액션,<툼 레이더2: 판도라의 상자>
2003-07-29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 Story

라라 크로프트(안젤리나 졸리)는 그리스 에게해 아래에 숨겨진 루나 신전에서 수수께끼의 검은 구슬을 발견한다. 그러나 라라를 쫓아온 첸 일당의 급습으로 구슬을 뺏겨버린다. 라라는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찾아냈고, 다시 세계의 끝에 숨겼음을 알게 된다. 알렉산더 대왕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자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다는 전설도 남아 있다. 검은 구슬은 그 판도라의 상자가 숨겨진 곳을 알려주는 물건이다. 생화학무기를 이용한 범죄를 일삼는 라이스 박사에게 구슬을 넘기려 한다는 정보를 들은 라라는 첸의 소굴로 가기 위하여, 전 특수부대 대장이며 반역자인 테리(제라드 버틀러)를 카자흐스탄의 감옥에서 빼내온다.

■ Review

<툼 레이더2: 판도라의 상자>(이하 <툼 레이더2>)에서 찾아야 할 보물은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제우스가 판도라에게 주었다는 ‘판도라의 상자’다. 영화 속 판도라의 상자는 신화에 근원을 두면서 새로운 해석을 덧붙인다. 판도라의 상자는 모든 고통의 근원인 동시에 생명의 샘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 생명이 태어났고, 죽음 역시 한짝으로 도래했다. 라이스 박사가 판도라의 상자를 찾는 이유는, 그 죽음이 일종의 바이러스이고, 생화학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디아나 존스가 찾아다니던 성궤나 성배보다도 황당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흥미롭기는 하다.

게임에서 스크린으로 향한 <툼 레이더> 시리즈의 매력 하나는, 우리가 쉽게 찾아갈 수 없는 혹은 보기 힘든 세계의 비경(秘境)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인디아나 존스처럼 전세계를 떠돌면서 보물찾기에 나서는 라라를 따라가면 갖가지 기묘한 풍경을 만나게 된다. 전편에 나온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과 아이슬란드의 설원에 이어 2편에서는 그리스의 에게해, 중국의 만리장성, 아프리카의 초원 등이 등장한다. 로케이션을 통해 잡아낸 멋진 풍경 위에서 제트스키와 스쿠버다이빙, 패러글라이딩과 스카이다이빙, 산악 오토바이의 질주 등이 연이어 펼쳐진다. <스피드>와 <트위스터>로 연타석 홈런을 날린 뒤 <스피드2>와 <헌팅>으로 침몰했던 얀 드봉은 어깨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툼 레이더2>를 연출했다. <툼 레이더2>는 특수효과보다는 안젤리나 졸리의 스턴트 연기에 비중을 둔다. 안젤리나 졸리의 튼튼한 육체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비록 게임처럼 노출이 심하지는 않지만. 전작의 액션은, 서재에서 고무줄을 이용하여 벌이는 싸움처럼 아름답고 우아함을 많이 강조했다. 2편에서는 속도감을 한껏 과장하면서, 장면마다 다양한 액션을 끌어낸다.

<툼 레이더2>는 다른 속편들에 비해 출발이 순조로웠다. 전편이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부담이 줄어든 것이다. 전편에서는 춤추는 빛의 사원이나 행성의 움직임을 묘사한 거대한 기계 같은 것들이 눈길을 끌었지만 드라마의 흡인력은 약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툼 레이더2>에 전작만큼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풍경이나 액션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알렉산더 대왕의 루나 신전이나 판도라의 상자를 지키는 어둠의 수호자가 출몰하는 최면의 숲도 잠깐 모습을 드러내고는 금방 다음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툼 레이더2>는 이야기의 흐름을 능숙하게 연결하는 능력은 전작보다 우월하다. 가끔 상어와의 싸움처럼 황당한 설정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대체로 설득력 있게 다음 장면이 이어진다. 에게해에서 영국으로, 카자흐스탄으로, 만리장성으로, 상하이로, 홍콩으로 각각의 액션을 보여주면서 빠르게 흘러간다.

인디아나 존스가 가는 곳마다 여성의 도움을 받는 것처럼, 라라 역시 특별한 재주를 지닌 전 애인과 함께 모험에 나선다. <툼 레이더2>에 등장하는 테리는 끊임없이 라라에게 구애한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여자가 남자에게 던질 법한, ‘내가 당신 인생에서 어떤 의미’냐는 대사를 남자인 테리가 한다. 라라는 테리를 미워하지 않지만, 사랑하지도 않는다. 테리는 4개월 동안 사귀었던 연인이고, 지금은 자신의 일을 도와주는 동료일 뿐이다. 라라는 남자에게 얽매이지 않는다. 자신의 길을 걸어가면서 남자들을 만나고, 헤어질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라라 크로프트의 전 애인들이 한결같이 적의 편에서 일하거나, 배신자라는 점이다. 테리 역시 조국과 부하들을 배신했던 치욕스런 과거를 지닌 인물이다. 라라는 ‘너를 죽이지 못해서가 아니라, 죽일 것 같기 때문에’ 떠나간다. 테리는 사랑 때문에 라라를 쫓아다니지만, 결코 자신의 욕망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그 욕망 때문에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는다. 그런 추태를 보고 있으면, 남자들의 사랑은 단지 소유욕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좋은 보물이나 권력이 주어진다면 언제든 버릴 수 있는 것, 사랑. 라라는 남녀관계의 무상함을 깨닫고 남자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은 없고 탐욕이 파멸을 불러온다는 인생의 법칙을 알고 있기에 떠난 것이다. 라라는 사랑을 버린 게 아니라, 그 남자들의 탐욕을 응징한 것이다. <툼 레이더>는 그런 점에서 온전히 라라 크로프트를 위한 영화다. 라라를 위한, 라라의 영화.

:: <툼 레이더2: 판도라의 상자>의 배우들

할리우드 기대주, 제라드 버틀러를 주목하세요

<툼 레이더> 시리즈는 라라 크로프트를 중심으로 모든 배우들이 위치한다. 모든 남자들은 라라 크로프트의 적이거나 동료, 그리고 옛 연인들이다. 과거의 연인은 <툼 레이더2>에서도 여지없이 등장한다. 끊임없이 라라에게 매달리는 테리를 연기한 배우는 <미세스 브라운>으로 데뷔한 제라드 버틀러다(사진의 오른쪽). <드라큐라 2000> <레인 오브 파이어> 등에 출연했고 <툼 레이더2> 이후 작품은 마이클 크라이튼 원작, 리처드 도너 감독의 <타임라인>과 조엘 슈마커가 연출하는 <오페라의 유령>에 출연한다. 최근 블록버스터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유망주다. 힐러리 역의 크리스 배리와 브라이스 역의 노아 테일러는 전편에 이어 2편에도 출연했다.

노벨상 수상자이지만 천하의 악당인 라이스 박사 역에는 키애런 하인즈가 열연했다. 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서 태어났고, 영국의 연극무대에서 활동했던 키애런 하인즈는 <엑스칼리버>에서 가브리엘 번, 리암 니슨, 패트릭 스튜어트 등과 공연하며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후 영국의 TV드라마와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 <메리 라일리> <웨이트 오브 워터> <썸 오브 올 피어스> <로드 투 퍼디션> 등에 출연했다. 라이스의 부하이며, 라라와 힘겨루기를 하는 션역의 틸 슈바이거는 <노킹 온 해븐스 도어>에 나왔던 독일의 인기배우다. 할리우드에서 진출하여 <드리븐> <인베스티게이팅 섹스> 등에 나왔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출연은 루나 신전에서 라라를 방해하는 중국 폭력집단의 두목 첸 역을 맡은 임달화다. <첩혈가두> <의불용정> <동방노호> <블랙 캣> <협도고비> 등 주역과 조역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홍콩영화에 출연했던 임달화는 90년대 이후 고혹자 시리즈인 <영 앤 데인저러스> <맹룡과강> 그리고 <극속전설>과 <더 미션> 등에서 여전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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