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8월10일(일) 밤 11시
김호선 감독의 <여자들만 사는 거리>는 70년대 중반 유행했던 이른바 ‘호스티스영화’에 속하는 작품이다. 1974년 최인호 원작, 이장호 연출의 <별들의 고향>이 서울관객 46만명의 대박을 터뜨린 뒤, 호스티스영화는 당시 한국 영화계의 새로운 물결(?)로 자리를 잡아간다. 당시 젊은 영화인들의 모임 ‘영상시대’의 동인들이었던 하길종, 이장호, 김호선 등이 만든 일련의 호스티스영화들- 조선작 원작, 김호선 연출의 <영자의 전성시대>(1975)나 조해일 원작, 김호선 연출의 <겨울여자>(1977), 하길종 연출의 <속 별들의 고향>(1978) 등- 은 호스티스영화들이 이상한 늪(?)으로 빠지기 전까지 암울했던 70년대 한국영화의 맥을 그런대로 이어가고 있었다.
순진하고 건실한 인텔리 남자와 온갖 인생유전을 다 겪은 술집 여자, 그리고 남자의 여자에 대한 연민에서 시작한 이들의 관계가 사랑으로 발전하고, 남자는 여자를 교화(?)시켜 수렁에서 건져내며, 마침내 새 사람으로 인도한다는 설정은 초기 호스티스영화들의 단골 메뉴였다. <영자…>에서 <겨울여자>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만들어진 <여자들만 사는 거리> 역시 이런 설정인데, 언급한 작품들보다 영화적 힘이 많이 떨어진다. 각본 김승옥, 촬영 장석준 등 호흡이 잘 맞는 스탭들과 만든 작품인데도 여러 군데 편집이 매끄럽지 못하거나, 이야기를 끌어가는 데에 대사와 연기보다 과도한 음악을 사용한 영상편집으로 처리하는 등 영화의 힘을 떨어뜨리는 연출이 너무 많다. <영자…>에서 보여준 밑바닥 인생들의 처절함이나 사실적인 다큐적 영상도 찾아보기 힘들고, <겨울여자>의 ‘이화’ 같은 욕망이나 연민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여자들만 사는 거리>는 70년대 당시 남자들이 의식, 무의식적으로 갈구했던 ‘욕망의 분출구’로도 ‘가학적 쾌락의 도구’로도 기능하지 못한 채 인텔리 남성들의 나약하고 못난 모습만 보여준 어중간한 호스티스영화가 되고 말았다.이승훈/EBS PD agonglee@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