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집주인*
제목: 요즘 기다리는 것
날짜: 2003년 4월19일
단연 <살인의 추억>
영화가 개봉되길 기다려본 건 처음이 아닌가 싶다(휘발성 기억인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안 믿겠지만). 예전에 <지리멸렬> <플란다스의 개>를 워낙 재밌게 본데다, 송강호도 막 좋아하는데다(박찬욱 감독의 그에 대한 마지막 한마디, “지능이 높은 사람인 것 같다”), 시나리오에 대한 소문(베스트 오브 베스트네, 충무로의 젊은 감독들이 봉준호 타도를 외치며 분발을 결의했네 뭐네, ‘치밀한’, ‘꽉 짜여진’- 우린 이런 단어 들어가면 흥분하기 시작함), 몇주 전 나붙기 시작한 포스터(송강호의 때묻은 운동화, 아저씨 허리띠, 기지바지, 꼬질한 잠바때기, 결정적으로 두 사람의 표정과 분위기…)도 좋아지고, 시사회 다녀온 사람들의 일갈, ‘맘껏 기대해도 괜찮아’.
Red Block**: 살인의 추억은 나두 볼까 생각 중임. 씨네에 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 억지로라도 영화를 자주 보게 되지 않을까 했는데, 결국 다른 걸로 땜빵하는 게 영 민망. 쩝….
글쓴이: 집주인
제목: 살인의 추억
날짜: 2003년 4월27일
언제나 그렇지만 정리할 시간이 없으니 단편적인 것들부터 나열하면….
- 강 박사님, 송강호가 강 박사님 따라다니면서 캐릭터 연구했나 의문스러웠습니다. 고대로 스크린 속으로 걸어들어가시면 되겠습니다. 특히 초창기에 뵈었던 모습 그대로.
-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영화감독, 할 만한 일이구나’를 아주 오랜만에 다시 느낌.
- 머리가 좋은 사람이 만든 걸 감상하는 일은 정말 흐뭇하다.
- 봉준호, 송강호, 김상경, 박해일, 이름 순서대로 할말없음.
- 여기 읽으러 오시는 분들 기대만 잔뜩 부풀려도 되나 싶지만(아직까지 본인만큼 오버해서 기대하는 인간들을 본 적이 없는데) 여긴 개인 홈페이지니, 알아서들 하시길. 사실, 보증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흥행보증’이란 단어 어감이 갖다쓸 만큼 좋진 않아서… 그리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보는 건 왠지… 약간 짜증남.
- 나도 범인이 무지하게 궁금한데다 무지하게 잡고 싶어졌음.
- 지나간 시대를 상품화한 것 중 가장 세련됐고, 가장 거부감 없음. 심지어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지기까지.
Red Block: 기어이 봐야겠네. Han***님이 모니카 나오는 영화를 배신 때리시는 바람에 이번엔 내가 배신 때릴까 궁리 중. ㅋㅋ.
글쓴이: 강유원
제목: 살인의 추억
날짜: 2003년 6월1일
송강호가 날 닮았다고.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송강호와 전미선, 잘 어울린다. 그들의 주고받음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남녀는 그렇게 사는 거다.봉준호(맞나?), 뭘 아는 거 같다.
영화의 나머지들은 생각 안 남. 신경 써서 안 봤음.
9****: 미국 전쟁영화 같지 않나요? 남성들의 시선에 의한, 남성들을 위한, 남성들의 영화인 듯.
강유원: 글쎄요. 누구의 시선인지는 모르겠군요. 무슨 영화든 그걸 보면서 ‘시선’에 신경을 써본 적이 없어서. 단지 영화의 한컷 같은 것만 볼 뿐이어서. 한마디로 영화는 총체적으로, ‘역사철학적으로’ 보지 못하니까요. 비디오나 디브이디로 되풀이해서 본다면 모를까. 책을 읽을 때는 앞뒤로 뒤적이거나, 다 읽은 다음 곧바로 또 볼 수 있어서 그런 ‘시선’을 잡아낼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워낙 찰나적 텍스트라서 단 한번 보고 그 영화 전체에 대해서 뭐라고 쓰는 게 위험한 짓 같기도 하고. 그래서 영화평론가들은 용감한 듯합니다. 그것도 대개 공짜로 시사회에서 보면서 말이죠.
* 집주인: 최근 사랑에 관한 죽이는 소네트로써 강유원의 가슴을 찢은 적 있음. 퇴근 뒤 박물관 등지에서 공부를 함.
** Red Block: 강유원의 별명. 우리말로 ‘빨간벽돌’. 줄여서 R.B. ‘R.B.’라 쓸 경우 다양한 상상이 가능함. 예를 들면 Rolling Bed 등.
*** Han: 강유원의 연상 친구. 험악하게 생겨서 택시운전사도 얼굴을 기억할 정도지만, 심성테스트에서는 여성지수가 가장 높음.
**** 9: 가끔 우주인적 통찰력을 발휘해 상대를 한방에 보냄.강유원/ 회사원·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