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오해도 실수도, 내 웃음의 재료, 마틴 로렌스
2003-08-12
글 : 박은영

<You So Crazy>는 외설스런 농담 때문에 NC-17 등급을 받은 전설적인(?) 작품으로, 마틴 로렌스가 <빅 마마 하우스> 등에서 화장실 유머를 천연덕스럽게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이 우연이 아님을 일러준다. ‘판에 박혔다’거나 ‘경박하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후 미국 극장가에서 ‘마틴 로렌스 효과’는 만만찮은 흥행으로 이어져왔다.

95년 풋내기 감독 마이클 베이와 가수로 더 유명했던 윌 스미스의 <나쁜 녀석들> 팀에 힘을 실어준 이는 자신의 이름을 건 코미디쇼에 출연 중이던 마틴 로렌스였다. 친근한 용모에 걸쭉한 입담을 자랑하던 마틴 로렌스는 여러모로 위험한 프로젝트였던 <나쁜 녀석들>의 유일한 안전판이었다. 8년 뒤, 이들이 속편으로 돌아왔을 때 상황은 달라진 듯 보였다. 편리하게도 언론은, 마이클 베이와 윌 스미스는 할리우드의 특급 스타가 됐고 마틴 로렌스는 그간 제자리걸음만 했다는 ‘상대 비교’ 평가를 앞다퉈 내놓았다.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보자. 그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굳이 지난 8년을 짚어올라가지 않더라도, <나쁜 녀석들 2>의 마틴 로렌스는 조금도 녹슬지 않았으니까.

폼생폼사 사고뭉치인 파트너 어르고 달래서 사건도 해결해야 하고, 아내와 아이들, 말만한 여동생까지 바람 잘 날 없는 가정도 돌봐야 하고…. 돌아온 ‘나쁜 녀석’ 마틴 로렌스는 각양각색의 정신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패닉상태에 빠져 있다. 시종일관 쿨한 파트너 옆에서 주절대고 방방 뛰는 그의 모습은, 숨가빠진 <나쁜 녀석들2>의 유쾌한 쉼표다. 살짝 내려온 눈꼬리, 동그란 콧구멍, 뾰족 솟아나온 귀마저 저마다 익살을 떨어보이지만, 마틴 로렌스의 무기는 외모가 아니라 입담이다. 신경쇠약 직전의 수다쟁이. 경찰이든(<나쁜 녀석들>), FBI든(<빅 마마 하우스>), 강도든(<경찰서를 털어라>), 건달이든(<내쇼날 시큐리티>), 역할은 상관없다. 마틴 로렌스의 분신들은 언제나 원치 않은 소동에 휘말리고, 때마다 너무 뻔뻔해지거나 소심해져서, 보는 사람의 정신을 홀딱 빼놓는다. 그런 순발력과 ‘말발’로 치면, 그는 파트너인 윌 스미스보다 서너수 위일 것이다.

마틴 로렌스의 ‘입심’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80년대 중반. 돈도 연줄도 없던 그는 TV 코미디 경연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몇편의 시트콤에 조단 역으로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그의 코미디 감각이 진가를 발휘한 것은 TV시리즈 <마틴>과 콘서트영화 <You So Crazy>를 통해서였다. 특히 <You So Crazy>는 외설스런 농담 때문에 NC-17 등급을 받은 전설적인(?) 작품으로, 마틴 로렌스가 <빅 마마 하우스> 등에서 화장실 유머를 천연덕스럽게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이 우연이 아님을 일러준다. ‘판에 박혔다’거나 ‘경박하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후 미국 극장가에서 ‘마틴 로렌스 효과’는 만만찮은 흥행으로 이어져왔다.

늘 같은 것을 보여줘야 하는 데 대한 갑갑증 때문이었을까. 마틴 로렌스는 지난 8년 사이 수렁에 빠졌다 나오길 반복했다. 마약과 총기를 소지해 구설수에 올랐고, 폭행과 성추행 의혹을 받았다. 한여름 무더위 속을 겨울 옷차림으로 달리다가 쓰러져 사흘간 코마에 빠지기도 했다. 긴 무의식 뒤에, 그는 ‘새 삶’을 얻었다고 믿었고, 달라졌다. 지난해 마틴 로렌스는 “마음속의 악마를 몰아내기 위해” 자기 고백적인 라이브코미디 <마틴 로렌스 라이브:런텔댓>을 내놓았다. 그가 저지른 실수, 세상의 오해마저도 코미디의 재료로 둔갑시키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이제 그의 남은 야심은, 짐 캐리와 로빈 윌리엄스의 뒤를 따르는 일이다.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그 하나를 즐기기 위해서는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울리는 것보다 웃기는 게 바람직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스마트 머니’를 베팅한 누군가는, 나의 변신을 목도하게 될지도 그럴지도 모른다.” 웃기지 않는 마틴 로렌스. 상상하긴 힘들지만, 불가능할 것 같진 않다.

사진제공 콜롬비아 트라이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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